81개 PDF 파일에 '꽁꽁'..복잡한 재산공개, 알고도 놔둔다 왜[이슈추적]

허정원 2022. 4. 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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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적폐청산 시민행동 회원들이 지난해 5월31일 오전 서울 강남구 LH서울지역본부 앞에서 'LH 퇴출해 부동산투기공화국 해체하자 기자회견'을 연 뒤 LH 해체를 촉구하며 팻말을 발로 밟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부동산 투기 사건’ 등을 계기로 공직자의 재산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정부의 재산 공개방식은 여전히 검증하기 어려운 형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직자 재산, PDF 파일 81곳에 ‘꽁꽁’


31일 공개된 2022 정기재산변동 신고사항 공개 중 문재인 대통령의 재산 부분. 재산공개 양식은 2005년 이후 17년째 그대로다. [관보 캡처]

31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대한민국 전자관보에 게재한 ‘2022년도 정기재산변동 신고사항 공개’ 파일은 총 81개다. 이를 놓고 “기획재정부 등 중앙부처와 17개 시·도 등 기관마다 파일을 따로 내놓는 데다 파일 형식도 정렬·필터링 등 분석이 어려운 PDF 형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엑셀 분석을 위해선 PDF 파일을 csv 파일로 변환하고 다듬는 과정을 거쳐야 해서다. 관보 파일을 업로드 하는 주체도 정부공직자윤리위, 대법원공직자윤리위, 선거관리위원회공직자윤리위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산공개 방식은 더 복잡하다. 서울시의 경우 자치구 구의원이나 서울의료원·서울교통공사·120다산콜재단 등 투자·출연기관 대상자의 재산을 들여다보려면 서울시보 사이트에 접속해 다른 고시·공고 등과 섞여 있는 PDF 파일을 다운로드 받아야 한다. 31일 서울시보 사이트에 올라온 제3771호는 총 1440쪽으로 이 중 215~1366쪽이 재산변동 사항이다.


공직자윤리법, “관보·공보에만 게재해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간사인 연원정 인사혁신처 윤리복무국장이 지난 30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2년 고위공직자 1천978명에 대한 정기 재산등록 및 변동사항을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도 이 같은 불편을 알고는 있지만, 개선책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불편을) 십분 이해한다. 이미 많은 비판도 받았다”며 “그런데도 공개 방식을 못 바꾸는 건 법에 방식이 못 박혀 있어서”라고 말했다. 공직자윤리법 제10조(등록재산의 공개)에 따르면 ‘재산 등록사항과 변동사항 신고 내용은 관보 또는 공보에 게재해 공개해야 한다’고 돼 있다.

또다른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법에서 게재 방법까지 다루고 있다는 건 이를 엄격하게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라며 “애초부터 엑셀 파일 등으로 작성할 경우 수정·변형돼 유포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보기 어려워 ‘공직 투명성 제고’ 취지 무색


30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입간판이 건물 곳곳에 게시되어 있다. [뉴스1]

시민단체는 이런 상황이 자칫 부정한 재산 증식과 이해충돌 방지 등 공직자윤리법의 목적에 부합하지 못할 수 있다고 비판한다. ‘서울시 기초의원 재산분석’ 등의 자료를 공개해온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국장은 “사실상 관보 속에 재산이 숨겨져 있는 셈”이라며 “조금의 기술력과 노력만 있으면 해결될 문제인데 분석 업무를 해온 시민단체도 데이터화해 보여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공공데이터의 제공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 제24조(공공데이터의 제공기반 구축) 1조에 따르면 ‘공공기관의 장은 공공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기계 판독이 가능한 형태로 정비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이에 따라 공직자 재산공개와 취지가 비슷한 다른 공공데이터의 경우 보기 쉽게 정리된 것들도 많다. 세금을 내지 않은 상습·고액체납자 등 정보는 주소까지 지도에 표시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국세청, 체납자 주소까지 지도에 찍는데


31일 국세청 상습 고액체납자 명단공개 사이트에 서울시 관악구의 체납자를 검색하니 주소가 지도에 찍혀 나왔다. [국세청 홈페이지 캡처

국세청의 ‘고액 상습체납자 명단 공개’ 페이지는 연도별로 개인·법인 체납자를 구분해 공개하면서 실명과 주소, 납기일, 체납액과 체납자의 주소까지 지도에 표시해 제공한다. 통계청은 국가통계포털(KOSIS), 마이크로데이터통합서비스(MDIS), 통계지리정보서비스(SGIS) 등을 운영하면서 이를 통합·연계할 차세대 국가통계정보 플랫폼을 구축할 계획도 세웠다. MDIS엔 인공지능 기반 챗봇과 지능형 검색 기능도 있다.

공직자 재산공개를 놓고 ‘재산 축소 공개’라는 비판도 나온다. 산정된 공직자 재산이 실제보다 적게 신고된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경실련 관계자는 “(재산을) 사실대로 공개해야 하는데 부동산의 경우는 실거래가가 아닌 공시가 기준이 대부분”이라며 “시세반영률이 아파트는 60~70%밖에 안되는 등 괴리가 너무 크다”고 했다. 이어 “재산을 최초 신고할 때는 취득 경위를 알 수 없게 돼 있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실거래가·공시가 혼재…고지거부 등도 지적


2019년 2월 서울 삼성동에서 본 테헤란로 빌딩. [연합뉴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기존 보유한 부동산은 공시가를 기준으로 매년 가액변동을 공개하고, 매매 등으로 신규취득한 부동산은 실거래가로 신고하게 돼 있는 등 기준이 혼재돼있다. 이 외에도 ▶단독주택 세부 주소 미공개 ▶고지거부 ▶2005년부터 그대로인 재산공개 양식 ▶재산공개 대상 확대(1→4급) 필요성 등도 지적됐다.

특히 이 같은 내용 등을 담은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은 2020년 이후 현재까지 총 39건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김성달 국장은 “제도 개선이 지지부진한 건 국회가 이 같은 문제에 미온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며 “시민들이 공직자 재산을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 보기 쉽게 공개하는 게 맞다”고 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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