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개선 의지 강해도..日 안 바뀌면 尹 한 발짝도 못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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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수, 사도 광산…예정된 지뢰밭
그렇지 않아도 윤석열 정부 임기 초반에는 한ㆍ일 관계 관련 '폭탄'이 널려 있다. 매년 비슷한 시기 이뤄져 '캘린더성 도발'로 불리는 3~4월 일본 교과서 검정 심사, 4월 외교 청서 발간 등을 통한 역사 왜곡에 더해 내년 4월쯤에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예상된다. 이어 6월 쯤에는 사도 광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여부가 결정된다.
윤석열 정부 출범 약 1년 뒤 폭발력 큰 대형 악재들이 터질 게 이미 예정돼 있는 셈인데, 그 안에 관계 개선의 동력을 마련하지 못하면 악재가 터지는 대로 직격탄을 맞으며 한·일 관계 악화 일로의 흐름을 막기 어렵다.
게다가 일본 국내정치적 요인도 있다. 일본은 오는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다. 국내 우익 결집용으로 반한 여론을 계속 띄울 유인이 있는 셈이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받은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현금화 문제도 국내 법원의 절차가 진행되고 있어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이다.
그간 한국의 새 정부 출범은 한·일 관계 반전의 계기로 여겨지곤 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 5년 간 양국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기 때문에 정부 교체만으로도 일본 내부의 기대감이 큰 게 사실이다. 새 대통령 취임을 전후로 한 특사단 파견 등 고위급 교류가 이어질 좋은 기회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기회를 살리는 것도 일본이 먼저 한국이 움직일만한 최소한의 공간을 열어줘야 가능한 게 사실이다. 이번 교과서 도발처럼 일본이 기존의 태도를 고수할 경우 새 정부 초반부터 일본의 높아진 기대치를 충족하는 게 아니라 기대치를 하향 조정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아야 할 수도 있다.
특히 교과서에서 위안부 피해와 관련한 강제성을 지운 건 일본 역시 2015년 12·28 위안부 합의를 위반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본은 당시 합의에서 위안부 문제가 "당시 군의 관여 하에" 이뤄졌으며,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했다.
이를 내·외신 기자들 수백명 앞에서 직접 읽은 사람이 당시 외상이었던 지금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다. 일본은 그간 한국이 위안부 합의를 파기했다고 비판해왔으면서, 이번 교과서 왜곡을 통해 자신들도 정면으로 이를 위반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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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아이보시 면담 다음 날 한 방…
특히 일본의 교과서 도발은 지난 28일 윤석열 당선인과 아이보시 고이치(相星孝一) 주한일본대사가 대선 후 처음으로 만나 관계 개선과 협력을 약속한 바로 다음 날 이뤄졌다. 이날 윤 당선인은 "양국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밀어붙이면 다른 문제들이 어려울 것 같지만 대화를 통해서 잘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하루 만에 역사 문제에 발목을 잡힌 셈이 됐다.
특히 이날 회동의 주요 의제는 북핵 위협에 맞선 협력 강화였다. 윤 당선인은 "북한이 핵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한ㆍ미ㆍ일 3국 간 더욱 긴밀한 공조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아이보시 대사도 "북한의 핵ㆍ미사일 도발은 한ㆍ일 양국 간 안보에 지대한 위협이 됨은 물론 국제사회에 심각한 도전"이라며 긴밀히 협력하자고 호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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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론 설득, 日 변화 없인 불가
또 대일 외교는 외교의 영역이지만, 동시에 국내정치의 영역이기도 하다. 아무리 합리적인 정책을 펼쳐도 여론의 뒷받침 없이는 지속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과거 정부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한ㆍ일 관계의 늪'에 빠지곤 했던 이유다. 외교에만 무게 중심을 둘 경우 국내 반발에 직면했고, 국내 여론에 휘둘리거나 정치적 의도로 반일 감정을 활용하다 관계가 급전직하하곤 했다.
대일 외교의 복합적인 성격을 고려할 때 윤석열 정부에서의 한ㆍ일 관계 개선을 위한 여건은 일본이 먼저 어느 정도 마련해줘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문재인 정부 시기부터 사실상 '한국 때리기'를 일상화한 일본의 태도 변화 없이는 한국 정부의 의지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윤석열 정부는 한 편으로는 일본 정부 우익과 싸우고, 다른 한 편으론 보수 정부의 한ㆍ일 관계 개선 노력을 가로막는 국내 여론과 조화를 이뤄야 하는 '양면 게임' 과제를 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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