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핵실험 카드 만지작..미, 타격수단 강화 맞불 나설 듯

정영교 2022. 3. 28. 00: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25일(현지시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규탄하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대응 부족을 비판하는 한국·미국·일본 등 서방 측 유엔대사들. [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2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인 ‘화성-17형’을 발사한 데 이어 핵실험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모양새다. 미국은 북한의 도발에 대응해 강력한 대북 제재 체제를 유지하면서 군사적 억지력 강화로 북한을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2018년 5월 폭파 방식으로 폐쇄했던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의 복구작업에 속도를 높이고 있어 이르면 다음 달 중순 이후에라도 핵실험이 가능할 것으로 군과 정보 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27일 복수의 군 및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 3번 갱도를 단기간에 복구하고자 갱도 내부로 가는 통로를 새로 굴착하는 정황이 드러났다. 풍계리 핵실험장에는 4개의 주 갱도가 있는데 그간 한 번도 핵실험이 이뤄지지 않은 3번 갱도를 복구하고 있다.

“폭파 때 갱도 입구만 파괴된 듯”

익명을 요구한 소식통은 “초기 진행하던 3번 갱도 입구 복구공사를 돌연 중단하고 갱도의 옆구리를 뚫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방식이면 한 달이면 복구가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북한이 3번 갱도로 연결되는 새로운 통로를 뚫는다는 것은 폭파해 무너진 입구를 굴착하는 것보다 더 단기간에 복구가 가능한, 사실상의 지름길을 내는 셈이다.

앞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은 2020년 9월 보고서에 “갱도의 입구만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입구만 재건하는 식으로 손쉽게 복구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조셉 버뮤데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입구만 파괴되고 내부 손상이 심하지 않다면 3~6개월이면 갱도 복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북한이 국제사회의 관심을 풍계리에 집중시킨 뒤 다른 곳에서 핵 도발을 하는 방식으로 뒤통수를 치는 ‘빨치산 전술’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제프리 루이스 미 미들베리대 국제학연구소 동아시아 비확산프로그램 소장은 “북한이 핵실험을 재개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는 2018년 폭파한 갱도의 손상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아예 다른 장소에서 핵실험을 재개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복구 동향

김 위원장이 지난해 1월 8차 당 대회에서 직접 제시한 전략무기 개발과 관련해 일련의 도발이 이뤄질 수도 있다. 여기에는 소형·경량화된 전술무기 개발, 초대형 핵탄두 생산, 1만5000㎞ 사정거리 내 다양한 전략 대상에 대한 타격 능력 확보 등이 포함됐다. 북한은 지난해부터 핵 능력을 다층적으로 향상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에 따른 후속 조치를 빠르게 진행해 왔는데, ICBM 시험발사 재개는 그중 일부일 수 있다.

열병식을 열어 초대형 핵탄두를 공개하거나 1만5000㎞ 내에 있는 전략 대상에 대한 타격 능력 검증을 위한 ICBM 추가 발사도 가능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직접적 대미 위협이자 한반도 정세를 급속하게 악화시킬 카드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이 2017년 말처럼 긴장을 최대한 끌어올린 뒤 정세 전환 주도권을 쥐려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며 “새 정부 출범 이후 대북정책 수립 전까지의 정책적 공백 기간을 활용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음 달 김일성 주석 110번째 생일(태양절, 4월 15일), 한·미 연합훈련 등을 앞두고 있어 북한의 추가 도발 우려가 어느 때보다 큰 상황이다.

안보리, 북 CI BM 도발 규탄성명 불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북한의 도발을 강하게 규탄하면서도 예견된 일이라는 식의 침착한 태도를 보였다. 과거 북한의 고강도 도발에 대한 대응 공식이었던 유엔 안보리 차원의 추가 제재가 지금은 쉽지 않다. 북한의 ICBM 발사에 대한 대응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 25일(현지시간) 긴급 안보리 회의가 열렸지만, 이를 규탄하는 언론 성명조차 채택하지 못했다. 중국은 “북한의 합리적 우려를 중시해야 한다”며 북한 편을 들었고, 러시아는 “추가 제재는 용인하기 어려운 수준의 인도주의적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바이든 행정부가 최근 러시아에 했듯 자유주의 진영 국가들을 연합해 각기 독자 제재를 가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해서는 이미 최고 강도 수준의 제재가 가해지고 있어 각국이 추가로 취할 조치가 마땅치 않다. 남은 게 유류 공급을 더 조이는 것인데,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에 따르면 2018년 이후 북한에 유류를 공급하는 나라는 중국·러시아밖에 없다. 두 나라가 동참하지 않는 한 효과가 없다는 뜻이다.

향후 국제사회의 제재를 통한 대북 압박은 기존 제재 체제를 공고히 유지하는 방식으로 운용될 가능성이 크다. 안보리 차원의 추가 제재는 꾸준히 추진하면서, 현 제재 체제의 허점을 메우고 단속을 강화하는 식으로 촘촘한 독자 제재를 활용하는 방안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25일 “북한이 실험과 도발을 반복하는 양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바이든 행정부는 제재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미사일 공격 능력 차단을 위한 감시·정찰 체제 및 타격 수단을 강화하는 식으로 군사적 억지력 강화에 중점을 둘 것”이라며 “이는 북한과 중국을 한꺼번에 다루는 방식으로도 효과가 있을 수 있으며, 4월 한·미 연합훈련을 통해 이런 능력을 확실히 보여주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지혜·정영교 기자, 워싱턴=김필규 특파원 chung.yeonggyo@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