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 원칙 훼손, 결국 부자 감세..이상한 '보유세 완화'

안광호·이창준 기자 2022. 3. 27.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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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1주택자 보유세, 작년 수준 동결'에 비판 이어져

[경향신문]

당해 자산 증가분, 전년 기준 과세 ‘편법’…공시가격 조사 비용만 날려
고가 주택 소유자에 더 혜택…형평성 논란, 조세저항·시장 혼선 우려
새 정부 출범 후 더 낮아질 수도…전문가들 “보유세, 근본적 개편 필요”
사진은 이날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올해 1주택자 보유세를 지난해 수준으로 동결키로 한 것에 대해 ‘공평 과세 원칙 훼손’과 ‘부자 감세’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당해 소득과 자산에 세금을 매긴다는 조세의 기본원칙을 훼손할 뿐 아니라, 혜택도 고가주택 보유자에게 더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잦은 세법 개정에 따른 시장의 혼선과 조세 저항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보유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조치라면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조정하는 편이 과세체계상으로는 합리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27일 정부의 ‘보유세 부담 완화 방안’을 보면 1주택자는 올해 재산세·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과표 산정 때 2021년 공시가격을 적용한다. 올해 공시가격이 전국 기준으로 전년 대비 17.22% 올랐지만, 1년 전 공시가격을 적용해 보유세 부담을 지난해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공시가격이 유일하게 하락한 세종(-4.57%)처럼 올해 집값이 떨어진 경우엔 지난해가 아닌 올해 공시가격을 쓴다. 보유세 산출기준이 2개가 되는 셈이다.

■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 정부가 훼손”

전문가들은 1주택자 보유세 부담 완화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시장의 혼선이 불가피해지고 조세 원칙 훼손 논란이 커질 것으로 봤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집값 급등으로 세 부담이 커진 만큼 실수요자 부담 완화를 위한 논의는 필요한 상황”이라면서도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고 정책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발표해놓고 스스로 원칙을 깨버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2020년 발표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 로드맵에 따라 2035년까지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시세의 90.0%까지 올릴 계획이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도 “당해연도 세금을 부과하면서 단지 세 부담을 낮추기 위해 그 전년도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유례를 찾기 어렵고, 경제적 실질에 과세하라는 조세 원칙을 깨뜨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형평성 논란도 커질 수 있다. 예컨대 강남의 초고가 1주택자보다 주택가격이 낮은 일시적 2주택자가 세금을 더 많이 낼 수 있는 것이다.

이경민 참여연대 사회경제국 팀장은 “시세 16억원 수준의 아파트 소유자가 1년에 내는 종부세가 고작 20만원 수준”이라며 “이번 보유세 부담 완화 대책으로 전체의 절반에 해당하는 무주택자 청년이나 주거 취약계층에게는 어떤 혜택이 돌아가는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1주택자 종부세는 비과세 주택가격 기준이 기존 9억원에서 지난해 11억원으로 상향된 데 이어 고령자 공제와 장기보유 공제 등을 합쳐 최대 80%까지 세금을 공제받을 수 있다.

수백억원의 공시가격 조사 비용만 허공에 날렸다는 비판도 나온다. 공시가격 소급 적용에 따른 법률상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신중범 기획재정부 재산소비세국장은 “전례가 없는 것은 맞지만 공시가격 급등에 따른 세 부담 확대를 방지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특례법을 통해 조치하면 된다”고 말했다. 올해는 지난해 과표를 쓰더라도 내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도 있다.

■ 보유세, 법 개정 과정서 더 낮아질 수도

보유세 수준은 향후 국회의 법 개정 논의에 따라 정부안보다 더 낮아질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보유세를 2020년 수준으로 낮추고, 종부세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아예 재산세와 합치겠다는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1주택자 부동산 보유세 부담을 2020년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정부는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에 대해서도 수정할 수 있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및 국회 등과 협의해 세제 개편 방안을 다듬겠다는 계획이다.

근본적인 보유세 개편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소장은 “공시가격과 세율 조정은 세법을 바꿔야 하는 문제이면서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당장은 시행령으로 가능한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조정하는 게 합리적인 방안”이라며 “다만 국민 누구나 예측 가능하게 비율의 조정 폭과 시기 등에 대한 원칙을 세우고 유지해 나가면서 조세정책의 지속성이나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안광호·이창준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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