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오징어 쥐어짠다" 이런 사채업자가 피하는 고객 1순위

이영근 2022. 3. 2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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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사채의 세계

「 금융당국은 연간 50만명 이상이 불법 사채를 이용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중앙일보 탐사팀은 불법 사채의 세계를 심층 취재했다.

◇글 싣는 순서
①불법사채 해결사가 된 전직 보이스피싱 총책
②"섬에 애들 팔아버리겠다" 벼랑 끝에 몰린 불법 사채 이용자들
③"마른오징어도 끝까지 짜라" 사채업자의 세계
④이용자는 극단 선택, 업자들은 호화 생활…수사관들이 전하는 실태
⑤불법사채 악순환 막으려면?

"마른오징어도 끝까지 쥐어짠다."

5억원 규모 사채업을 하는 A(34)씨의 말이다. 그는 "돈 빌려 신나게 쓰고 '불법이라 못 갚겠다'는 경우도 많아 힘들다"면서 "무슨 수단을 쓰든 (빌려준 돈은) 받아내야 하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돈을 입금할 때까지 전화를 통한 회유와 독촉도 하지만, 집이나 회사에 찾아가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면서 "드물지만 채무자의 집에 들어가 돈 대신 명품 가방 등 고가의 물건들을 가져온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취재진은 미등록(불법) 사채업자들의 영업 방식, 회수 방법 등 그들만의 내밀한 세계를 들여다보기 위해 A씨 등 전·현직 사채업자 3명을 접촉했다.

길거리에 뿌려진 불법 사채 명함. 사채업자들은 이를 '부메랑'이라고 불렀다. 이영근 기자

A씨에 따르면 사채 영업 방식은 크게 온라인 대출 플랫폼을 통한 인터넷 영업, 지역 내 명함 뿌리기, 지인 영업 등 세 가지다. 보통 소상공인들은 큰 액수를 원하는 반면, 유흥업 종사자·대학생·직장인 등은 소액 대출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A씨는 "꼭 필요한 급전도 있겠지만, 회사 월급·상여금 들어 오기 전 유흥을 위해 대출받는 이들, 명품을 사고 싶은 대학생과 유흥업 종사자, 사설 도박에 빠져 돈을 빌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사채 업자도 꺼리는 '절박한 자영업자'


이 중 "소상공인·자영업자 고객은 최대한 피한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코로나 시국에 사업자 지원 대출을 더 받을 수 없는 절박한 자영업자들 문의가 많지만 이들한테는 돈 회수가 어려울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A씨는 "지역 유명 술집 주인에게 지난해 5000만원을 빌려준 뒤 이자도 못 받고 있다"고 했다.

원활한 사채 회수를 위해서는 "재직증명서, 차용증, 인감 등 서류를 완벽하게 받는 것이 중요한데 공무원, 대기업 등 안정적인 수입이 있는 이들을 선호한다"고도 했다. "이들은 회사에 찾아간다고 하거나, 채무 사실을 알린다고 하면 돈을 마련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법정 최고금리가 20%로 인하되며 금융권과 정식 대부업체의 대출은 훨씬 더 까다로워졌다. 신용불량 위기에 몰린 사람들은 물론이고, 번듯한 직장이 있더라도 기존 채무가 많아 이런 곳에서 추가 대출을 거절당하는 이들은 불법 대부업체를 찾는다. 미등록 사채업체는 기록이 남지 않아 찾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사채 이용자들이 자주 호소하는 업자들의 협박 행위에 대해서 A씨는 "가족들까지 협박하는 건 (내가 생각해도) 못 할 짓"이라면서도 "일부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오는 채무자를 상대하다 보면 화가 나 욕설이나 협박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사채업자가 사용한 대부거래 표준계약서. 법정 이자를 초과해 돈을 받기 때문에 이자율을 일부러 기입하지 않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영근 기자


'꺾기'와 '감기' 거치며 소액 대출이 눈덩이 빚으로


2020년 초까지 13년간 불법 사채업을 했다는 전직 사채업자 강모(40)씨는 취재진에게 단기간에 사채 이용자의 빚을 눈덩이처럼 불리는 그들만의 수법을 귀띔했다. 일명 '감기'와 '꺾기'가 대표적이다.

'한 바퀴 감는다'는 의미인 '감기'는 채무자가 변제를 제때 못하면 다른 업자를 소개해줘 다중 채무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꺾기'는 연체금을 원금으로 전환해 다시 이자를 붙이는 수법이다. 채무자가 100만원을 대출했는데 20만원을 못 갚았으면, 20만원을 차감한 80만원을 채무자에게 입금하고 100만원을 다시 갚게 한다. 이 외에도 '연장비'라는 명목으로 빚을 추가하기도 한다. 오후 12시까지 입금 시한을 정하고 그때까지 변제가 되지 않으면 기존 빚에 10만원을 더하는 식이다.

강씨는 "다른 업자를 소개하는 '감기'는 사실 한 팀끼리 짜고 치는 수법이다. 또 '꺾기'는 계좌에 순간적으로 목돈이 들어와 채무자 입장에선 순간을 모면하는 느낌을 줘 잘 통하는 수법"이라고 했다.

지난 2월, 부산에서 만난 전직 사채업자 강모(40)씨. 강씨는 2020년 초까지 25명 규모의 사채 사무소에서 사채업자로 13년간 활동했다. 이영근 기자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최근 사채업자들의 특징은 ▶소액대출 ▶초고금리 ▶온라인·비대면 ▶점조직화로 요약된다. 강씨는 소액 대출이 성행하는 이유로 "'전주'가 따로 있는 과거와 달리 요즘에는 적은 자본으로 사채에 뛰어든 업자들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사채 이용자가 업자가 된 사례도 있다. 취재진이 만난 다른 현직 사채 업자는 "고리로 돈을 빌렸다가 못 갚았더니 업자가 '차라리 와서 일하라'고 하더라"며 "어찌 보면 나도 불법 사채 피해자"란 웃지 못할 얘기도 했다.

강씨에 따르면 일부 업자는 3금융권에서 500만원 대출을 받아 사채 자금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열 명 넘게 사무실에서 작업하던 과거와 달리 최근엔 단속을 피하기 위해 2~3명씩 소규모로 팀을 이루고, PC방 등에서 일하는 업자들도 있다고 한다. 그는 "시대 흐름에 맞게 불법 사채 조직, 수법 등도 조금씩 진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직 업자 "실은 나도 사채 피해자"


지난 2월, 취재진은 불법 대출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한 온라인 대출플랫폼에 문의 글을 올렸다. 연락이 닿은 업자는 법정 최고이자를 초과한 조건으로 대출을 권유했다. 이영근 기자
취재진은 불법 업자로부터 돈을 빌리는 과정을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직접 대출을 받아보기로 했다. 온라인 대출 문의 게시판에 직접 "생활자금 50만원 구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10초쯤 지난 뒤 전화가 왔다. 통화 중에도 또 다른 업자들의 전화·문자가 쇄도했다. 상담사는 이름, 직업, 급여, 재직 기간, 대출 여부 등을 확인한 뒤 50만원을 빌리면 일주일 뒤 80만원을 갚는 조건(연이율 3128%)을 제시했다. "이자가 너무 높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타 업체도 다 마찬가지"라며 대면 대출 진행을 권유했다. 기자가 글을 올린 사이트는 정식 대부업체들이 등록된 온라인 대출 1위 업체였지만, 미등록 업체들은 이곳에 올라온 상담·요청 글을 토대로 대놓고 불법 영업을 했다.

다음 날 취재진은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업자 B씨를 만났다. 전화를 걸어 온 그는 "카페 밖 호텔 주차장에 OOO 차량으로 오라"고 했다. 차에서 만난 B씨는 20대 청년이었다. 그는 신분증과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증명서를 확인했다. 또 월세 등 고정 지출과 유흥, 주식이나 코인 투자, 사설 도박 여부 등을 물은 뒤 휴대전화 은행 앱을 통해 매달 급여가 제때 들어오는지 세세하게 확인했다.

지난 2월, 취재진이 직접 만난 사채업자가 작성한 상담 내용. 업자는 취재진의 직업, 월 수입, 기대출, 도박, 주식 등을 꼼꼼히 확인했다. 이영근 기자


마지막으로 B씨는 "변제가 늦어질 때 필요하다"라며 가족 3명과 직장 동료의 연락처를 요구했다. 채무 상환 독촉은 물론이고 여차하면 가족과 지인을 통한 협박 수단으로 이용될 것이 뻔했다. 얘기를 이어가던 취재진이 기자 신분을 밝히자 B씨는 당황했다. 설득 끝에 그는 취재에 응했다.

B씨는 "나는 사무실 위치도 모르고 대포폰을 쓴다"면서 "영업용 차는 매번 바뀌고, 상담사가 지정한 장소에 가면 열쇠 꽂힌 차가 있다. 상담사 이외 내게 지시하는 사람은 없고 누군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B씨는 지난해 7월 빌린 150만원이 5개월 뒤 500만원으로 불어났고, 변제를 할 수 없어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다 지난 1월부터 사채업자의 권유로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함부로 사채 쓰지 마라"


불법 사채 영업을 하는 이들이지만 정작 취재진에게는 "사채는 절대 쓸 게 아니다"고 털어놓았다. A씨는 "법정이자 이상의 돈을 챙겼으면서도 독촉하고 협박하는 건 중간에서 따로 돈을 챙기려는 경우가 많다"면서 "급전이 필요하다고 무턱대고 사채를 쓰면 패가망신은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힘들더라도 차라리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하라. 사업상 이유면 사채를 쓰는 대신 사업을 접는 게 낫다"고 했다.

이영근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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