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평화노력에 사망선고했다, 기어이 ICBM 손댄 김정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기어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손을 댔다. 임기 말까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되살리려 노력한 문재인 대통령 보란 듯 ‘레드 라인’을 넘어선 것이다.
24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군은 이날 오후 2시 34분쯤 평양 순안 일대에서 동해 상으로 발사된 ICBM 한 발을 포착했다. ICBM의 비행거리는 약 1080km, 고도는 약 6200km 이상이었다. 일본 방위성은 ICBM이 71분 동안 비행해 오후 3시 44분쯤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에 떨어졌다고 밝혔다.
레드라인 넘은 北, 외교적 파장은
다만 이날 쏜 ICBM은 화성-17형과는 다른 기종일 가능성이 있어 정밀 제원을 분석 중이다.
① ICBM 얼룩진 文 임기 시작과 끝
문 대통령은 또 “굳건한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유관국 및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하면서 모든 대응 조치를 철저히 강구하라”고도 지시했다. 북한이 선을 넘은 이상 문 대통령이 언급한 ‘모든 대응 조치’에는 강력한 제재도 포함될 수밖에 없다.
그간 북한의 숱한 미사일 도발도 “대화가 더 긴요해졌다는 신호”로 해석했던 문 정부가 이런 입장을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번 ICBM 발사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사망 선고’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남북 대화는 단절됐고 북한의 핵 무력 증강은 계속되는 상황에서 마지막 희망의 끈으로 평가됐던 모라토리엄마저 붕괴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평화 대통령’으로서의 업적 달성에 큰 중요성을 뒀던 문 대통령의 임기 초와 말이 모두 북한의 ICBM 도발로 얼룩진 것 역시 정부로선 뼈아픈 대목이다. 문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 5월 14일 북한은 중거리 탄도미사일인 화성-12형을 발사했고, 같은 해 7월엔 두 차례에 걸쳐 ICBM인 화성-14형을 발사했다. 11월엔 초대형 중량급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ICBM인 화성-15형을 발사하며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켰다.
문 대통령은 그럼에도 이를 남북 대화에 기반한 한반도 평화 정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원동력으로 삼으며, 평화 프로세스를 밀고 나갔다.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북한은 2018년 2월 평창 겨울 올림픽을 계기로 대화에 나서며 이에 호응했고, 이후 남북 및 북·미 간 연쇄 정상회담이 열리며 평화 국면이 정착되는 듯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이 2018년 4월 직접 약속한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은 문 대통령의 평화 업적 중에서도 핵심이었다. 2019년 2월 북·미 정상회담이 ‘하노이 노 딜’로 결렬되며 대화가 교착 국면에 접어들고, 북한이 올 들어 소나기 미사일 도발에 나설 때도 문 정부는 북한이 모라토리엄만은 지켜온 것을 희망의 신호로 읽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이날 ICBM을 발사하며 문 대통령이 공들였던 ‘평화의 2018년’은 모두 지워버린 것이나 다름없게 됐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어게인 2017년’, 즉 원점으로 회귀했고, 오히려 북한에 핵·미사일을 개발할 시간만 벌어줬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②尹 정부 ‘강대강’ 시작 불가피
이에 대북 강경 일변도식 접근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윤 당선인 측은 보다 정제된 언어를 쓰기 시작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지난 23일 통일부 업무보고를 받은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새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강경 정책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우려했던 통일부 폐지에 대해서도 선을 그으며 “(남북 교류협력 및 인도주의 지원은)윤석열 새 정부에서 오히려 강화되는 쪽으로 인수위원들이 안을 마련할 것”(원일희 인수위 수석부대변인)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은 바로 다음 날 ICBM으로 응수한 것이다. 문 정부의 대북 정책을 ‘굴종적’으로 비판하고, 대북 접근에서 원칙을 중시하겠다고 밝힌 윤 당선인으로서는 강경한 대응에 무게를 둘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김정은 위원장 역시 ICBM 발사를 정찰위성 개발로 포장하며 핵 무력 개발을 자신이 정한 시간표대로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결국 새 정부의 남북관계는 강대강 대치 국면으로 첫발을 뗄 가능성이 매우 커진 셈이다.
③우크라에 발목 잡힌 바이든, ‘한 방’ 맞았다
이날 북한의 ICBM 발사는 이처럼 제재를 수반한 바이든의 대화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아도 북한 문제가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는 가운데 바이든 행정부의 ‘원칙적 대화 의지’조차 한층 꺾일 가능성이 커졌다.
또 북한은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 대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력을 시험해보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가 러시아와 북한을 동시에 상대하며 전선을 다변화할 여력이 있는지 확인해보려는 것이다.
미국이 이런 두 개의 위협을 한꺼번에 다루는 과정에서 글로벌 리더십의 허점을 드러낸다면 북한으로서 손해 볼 것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당장 안보리 차원에서 또 다른 대북 제재 결의를 채택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2017년 12월 채택된 안보리 결의 2397호는 이른바 ‘유류 트리거’ 조항을 담고 있다. 북한이 ICBM을 발사할 경우 현재 상한선이 각기 50만 배럴과 400만 배럴인 정유제품과 원유의 대북 공급량을 더 줄이게 돼 있다. 북한이 ICBM 도발을 하면 자동으로 적용되는 조치이기에 트리거라 부른다.
다만 아무리 트리거라고 해도 추가 제재 결의안을 채택하는 형식을 거쳐야 한다.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결의안 채택이 불가능하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과 러시아가 극한 대립 중인 가운데 러시아가 순순히 미국이 주도할 안보리 차원의 제재 대응에 협력할 지는 미지수다.
앞서 미국은 지난달에도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북한 국적자들을 추가로 안보리 대북 제재 명단에 추가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됐다. 제재 명단 추가지정은 안보리 제재 조치 중에서도 낮은 수위에 속하는데도 협력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중국은 이날 북한의 ICBM 발사 뒤에도 직접적 규탄은 하지 않고 “대화를 통한 해결”을 강조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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