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 갚았는데 입금된 돈.."돈 받아라" 기막힌 협박 시작됐다

여성국 2022. 3. 2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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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 사채의 세계

「 금융당국은 연간 50만명 이상이 불법 사채를 이용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중앙일보 탐사팀은 불법 사채의 세계를 심층 취재했다.

◇글 싣는 순서
①불법사채 해결사가 된 전직 보이스피싱 총책
②"섬에 애들 팔아버리겠다" 벼랑 끝에 몰린 불법 사채 이용자들
③"마른오징어도 짜면 나온다" 사채업자의 세계
④이용자는 극단 선택, 업자들은 호화 생활…수사관들이 전하는 실태
⑤불법사채 악순환 막으려면?

탐사팀은 자영업자, 직장인, 주부, 무직자 등 불법 사채 이용자 10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이들 대부분은 업자로부터 수십만원의 소액을 빌린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짧은 기간 빚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돈 안 갚으면 당신 애들을 섬에 팔아버릴 수도 있다.”
아이 5명을 키우는 주부 유모(37)씨는 가슴이 철렁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자와 원금을 독촉하는 사채 업자들의 연락은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폭언과 협박에 시달리니 불법 사채를 쓴 게 후회스러웠다.

유씨 남편은 전통 시장 수산업체에서 일한다. 300만원대 월급은 코로나 19 타격으로 30만원 넘게 줄었다. 정부 양육수당 55만원이 나왔지만, 아이 5명을 키우기에는 빠듯했다고 한다. 엄마를 바라보며 방긋 웃는, 지난해 태어난 막내를 볼 때면 ‘형편도 안 되는데 괜히 낳았나’ 생각하는 자신이 미웠다.

불법 사채 이용자들이 받은 독촉·협박 문자. 당사자 제공

연이율 5214%...대포폰, 못 잡는다”


아끼려 노력해도 남편의 줄어든 월급, 딱 그만큼이 부족했다는 게 유씨의 입장이다. 유씨는 “건강검진비, 분윳값, 쌀값이 필요했다”고 했다. 2016년 투자 사기를 당해 2억3000만원에 집을 팔았지만 적지 않은 빚이 남았다. 사기 피해 이후 신용점수가 낮아 3~4금융권, 즉 대부업체의 대출도 막혀있었다고 한다.

결국 지난해 11월 남편 몰래 온라인 대출 중개 사이트를 통해 미등록 대부 업체를 통해 20만원을 빌린 게 화근이었다. 금방 갚을 수 있을 줄 알고 빌렸는데 1주일 안에 40만원을 갚아야 했다. 연이율 5214%. 빚을 갚기 위해 빚을 냈고 6곳에서 총 400만원(원금 기준)의 빚을 졌다.

사채업자들의 말말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자 상환이 늦어지면 채권자인 업자들은 유씨와 유씨 모친에게 전화해 독촉과 협박을 했다. 유씨는 정신적 스트레스로 이명과 우울증이 생겼다. 불법 사채를 손댄 잘못은 있지만, 협박은 범죄라 생각한 유씨는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협박 신고를 알리자 사채 업자들은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사용해 우릴 절대 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조롱했다. 현재 금융감독원에 채무자 대리 제도를 신청한 뒤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 타격, 살아보려다…. 후회중”


“절대 쓰지 말았어야 하는 돈을 쓴 게 후회스럽다. 다만, 살아보려고 그랬다.”
전남에서 건설업을 하는 김모(39)씨는 n차 하청 일을 한다. 어떤 일은 3차, 어떤 일은 몇 차 하청인지 헷갈릴 정도다. 코로나 19로 지역 건설업계 불황이 이어지며 제때 받지 못한 공사 대금이 늘었다. 지난해 2월 마친 공사 준공금은 12월에 겨우 받아냈다. 그 사이 일용직 인건비나 장비 비용 등을 챙겨주느라 기존 금융권 대출을 최대한 끌어썼고 더는 대출이 어려운 상황까지 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김씨는 현장 관리를 부실하게 한 자신의 책임이 크다고 했다. 김씨 역시 대출 사이트에서 미등록 대부업체를 통해 총 3곳에서 700만원을 빌렸다. 지인인 법무사는 회생과 파산 신청을 권유했지만, 그는 사채를 쓰며 버텼다. 파산할 경우 더는 사업을 이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만 바라보는 자녀 셋과 아내를 생각하며 버텼지만 빚은 3000만원, 5000만원으로 불어났다. 대출액은 늘었고, 법정이자율 제한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김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지난해 12월 서울 중구 명동거리의 텅 빈 상가들의 모습. [뉴스1]


깨어나니 아내 얼굴이 보였다. 아내가 그 시간에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그는 다시는 아이들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눈을 뜬 그에게 아내는 “애들은 모른다”고 말했다. 대출 상환이 늦어질 때면 하루 100통 이상의 전화를 받았던 그는 가족들에게 채무 사실을 알렸다. 주말에는 배달을 했고, 야간에는 24시간 현장에서 포크레인을 운행하며 종일 빚을 갚아나갔다.

그는 총 8000만원을 빌렸고 1억원 넘게 갚은 상태다. 하지만 사업자들은 ‘법정 이자까지만 갚는 건 계약에 어긋난다’며 수 천만원의 돈을 더 갚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씨는 “살아보려고, 버텨보려고, 절박하니까 사채를 쓰게 되는 마음은 너무 잘 안다. 하지만 절대 손대지 마라. 시작하면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강제 입금한 뒤 협박, 나체 사진 요구도


주요 인터뷰 대상자 불법 사채 이용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급전이 필요한 상황에서 30만원의 사채를 쓴 군인 박모(36)씨. 그는 원금과 이자를 모두 상환했지만, 의문의 돈을 입금받았다. 잠시 뒤 전화를 한 건 그에게 돈을 빌려줬던 사채업자였다.

박씨는 “돈이 필요 없다. 더는 안 쓴다”고 말했지만, 사채업자는 박씨가 서류로 제출한 가족, 직장연락처 등 개인정보를 언급하며 “돈 안 받으면 군부대와 지인들에게 불법 사채를 쓴 사실을 폭로해 군복을 벗게 해주겠다. 기대하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사채를 빌린 여성에게 “나체 사진을 보내주면 지급 기한을 연장해주겠다”는 협박 피해도 있었다.


“신고해도 구제 못 받아”


이들처럼 미등록 대부업체로부터 불법 사채를 빌려 쓴 10명의 채무자는 중앙일보에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급한 사정이 있었지만, 후회가 크다”고 입을 모았다. 사업 실패, 코로나 19로 인한 실직, 사기 피해 등으로 신용도가 낮아 기존 금융권에서는 대출을 받을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10명은 모두 포털 사이트에서 ‘대출’을 검색해 대출 사이트를 통해 불법 사채를 이용했다. 이 중 8명은 대출금과 사채 이자를 갚기 위해 추가 대출을 받았다고 했다.
불법 사채 이용자 10명 조사.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합법과 불법, 미등록과 등록 대부업체간 경계가 모호했고, 대출 상담 글을 대출 중개 사이트에 올리면 불법 사채업자들의 연락이 쏟아졌다. 대출 중개 1위라는 광고가 붙은 사이트 관계자는 “대포폰 사용을 막고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사기 번호를 등록하는 등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했다. 해당 플랫폼을 통해 사채를 쓴 뒤 협박을 당하는 이들이 많다고 하자 “해당 업체가 형사처벌 받기 전에는 퇴출시킬 수 없어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는 선에서 노력한다. 우리는 포털 사이트 같은 역할일 뿐”이라고 답했다.

10명 중 6명은 수사기관 또는 공공금융기관에 독촉과 협박에 대한 피해신고를 했지만 모두 구제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기댄 건 개인 유튜버나 한국대부금융협회 등이었다.


이용경험자 추정치 219만명


불법 사채 피해 신고와 단속 건수는 증가하는 추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미등록 대부업 신고는 2015년 1220건, 적발 광고는 509건이었지만, 2020년에는 신고 3369건, 적발 광고 5225건으로 늘었다.
2019 불법사금융 실태 조사.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지난해 금감원이 더불어민주당 송재호 의원실에 제출한 ‘2019 불법사금융실태 조사’(2020년 11월~2021년 1월, 전국 만20세 이상 성인 1만명 대상 조사)에 따르면 등록 대부나 미등록 사채를 한 번이라도 이용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12.6%다. 이중 미등록 사채만 이용해본 경험자는 5.4%로 모수로 추정할 경우 219만명에 이른다. 미등록 사채를 받은 응답자의 총대출 금액은 78억3000만원으로 모수 추정치를 계산하면 약 31조 8000억원이었다. 2017년 추정치는 25조3000억원, 2018년 추정치는 29조5000억원이었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이영근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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