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벽돌집의 매력, 건축가 강석원의 집

이경진 2022. 3. 1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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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 감각이 드러나는 창과 문, 햇빛을 실내로 가득 들이는 '선 룸', 붉은 벽돌로 구성된 아름다움.
모듈화한 창호로 이루어진 ‘선 룸’이 햇빛을 실내로 가득 들인다. 선 룸을 기준으로 둘로 나뉘어 대칭을 이루는 집. 네 개의 큰 장방형 공간을 기능에 따라 분할, 조립해 구성했다.

Q : 오랜 멘티인 서민범 건축가에게 자택 촬영을 부탁했어요. 특별한 애정이 담긴 시선으로 좋은 장면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A : 아니, 그런데 이렇게 오래된 집을 찾아왔네요. 요즘은 오래된 것에 비교적 배타적이지 않은가요?

Q : 오래돼 더 특별한 걸요. 지난해 〈엘르〉에 선생님께서 분당에 설계하신 공동주택의 어느 집이 소개되기도 했어요. 1996년에 입주를 시작했던

A : 거길 가 보셨어요? 한국판 미니 베벌리 힐스를 만들자며 추진된 프로젝트였어요. 저기 보이는 건너편 방에서 설계를 시작했죠. 18명 정도의 건축가들이 사이트를 나눠 일인당 연립주택 하나, 단독주택 하나씩 만들었어요. 그 집은 공공 스페이스가 많아요.

강석원의 예민한 색채 감각이 드러나는 창과 문. 쇠에 색을 칠하고 불에 구워 만든 진카트 새시다.

Q : 진입로가 길고 건물 내 중정도 크게 있고요. 단지 내 주택들 모두 옛모습 그대로인데 깨끗하게 보존이 잘 돼 있었어요. 오래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요

A : 한 번 가보고 싶네요. 나름 이름 있는 건축가들이 모여 지은 주택단지였어요. 저만 빼고(웃음). 제일 연장자가 엄덕문. 세종문화회관 설계하신 분이에요. 개인 주택도 가 봤나요? 그때 설계한 개인 주택은 원을 4등분한 형태의 건물이었어요. 앞에 야산 같은 게 있어서. 그 자연을 안아야 되잖아요? 그런 전망에 일반적인 주거공간처럼 각을 만들면 사람들이 가구를 놓을 것 아니에요. 그럼 자연이 가려지니까.

Q : 지금 이 집도 자연을 두 팔 벌려 안고 있어요. 빛의 향연인 집입니다. 35년 전, 선생님이 이끄신 건축사무소 ‘구룹가’의 사옥이자 자택으로 지으셨죠. 특히 건물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집을 둘로 나누는, 유리 온실같은 공간이 멋집니다. ‘선 룸(Sun Room)’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A : 외부 공간을 최대한 내부로 끌어들이고 내부를 바깥으로 던질 수 있는 집이길 바랐어요. 계절에 따라 집의 모습이 안팎으로 계속 달라져요. 난 겨울을 좋아해요. 여름이나 딴 계절은 변화가 빠르거든. 겨울은 좀 더 천천히 가니까. 눈 올 땐 눈이 그냥 내리는 게 아니라 눈발이 변화무쌍하게 날아다녀요. 하나의 컴포지션으로. 아카시아 꽃이 필 때는 밖이 온통 흰색이에요.

나무 그림자가 일렁이는 서재. 선 룸을 기준으로 2층의 오른쪽 부분은 안방과 침실, 서재 등의 프라이빗한 공간이다.

Q : 무엇보다 중요했던 이 대지의 조건 역시 자연이었던 거군요

A : 그럼요. 자연과 어떻게 어울리는 집을 짓느냐, 그 풍경을 어떻게 만끽할 수 있는가가 중요했어요.

그의 집 전체는 강석원이 애정하는 붉은 벽돌이 다채롭게 사용됐다.

Q : 이 집에서 가장 좋아하시는 자리가 있나요

A : 1층과 2층으로 돼 있는데, 두 개의 층이 선 룸을 기준으로 또 한 번 둘로 나뉩니다. 1층에는 작업실과 응접실이 있어요. 2층은 낮을 위한 공간과 밤을 위한 공간으로 나뉘죠. 밤을 위한 공간이 가장 프라이빗한 장소예요. 안방과 침실 등이 있죠. 나는 지금 이 자리, 1층 작업실이 제일 좋아요. 언제든 뭔가 꺼내서 읽을 수 있고.

Q : 세상 모든 색채가 이 집에 녹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다채로운 색이 아름답게 혼용될 수 있다는 게 놀라워요. ‘에스모드 서울’을 비롯해 설계한 여러 건축물에서도 색을 다채롭게 쓰셨죠

A : 이 집의 색채에는 내 집이니까 마음대로 지을 수 있다는 기쁨이 표현돼 있어요. 정말 마음껏 색을 썼어요. 30년도 더 됐는데 거의 처음 모습 그대로예요. 한국의 건물은 상당히 색에 궁핍한 경우가 많아요. 건축가들도 색에 인색한 이가 많고. 서울 시내 모처에 아파트를 지으면 하얀 벽, 회색 벽만 나와요. 도무지 색을 쓸 줄 몰라요. 언젠가부터 종종 건물 색채에 자문하기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한국 건물에도 색이 많이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미스 반 데어로에의 바르셀로나 체어를 둔 응접실.

Q : 종교 건축물부터 공공 시설, 호텔, 대학, 상업 빌딩까지 다양한 건축물을 설계했어요. 그중 벽돌을 재료로 삼은 프로젝트의 비중이 높았는데, 이 집 역시 애정하는 붉은 벽돌집입니다

A : 재료 중에서 아주 좋아하는 게 벽돌이에요. 땅이잖아요. 흙을 구워서 만든 건데. 변하지 않고 변화무쌍하지 않은 재료예요. 세계 어딜 가나 볼 수 있는데 그 멋이 제각각이죠. 벽돌은 자연과 어우러져 변화하는 재료입니다. 그러면 관록이랄까. 그런 게 생기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지점은 맑은 날과 비가 오는 날의 벽돌 맛이 다르다는 거예요.

건축가의 집이자 건축사무소인 이곳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비계로 만든 난간.

Q : 언젠가 이 집에도 다른 주인이 생기겠지요. 이 집이 어떻게 보존됐으면 하나요

A : 벽과 기둥이 거의 없는 집이거든요. 구조적인 변화가 별로 필요하지 않은 공간이에요. 필요하면 문을 확 열어 쓸 수도 있고 너무 열려 있다 싶으면 간이로 막아 쓸 수도 있죠. 그래서 많은 변화가 있으리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이렇게 원형적인 걸 보존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죠. 자택을 다른 곳으로 옮길 계획이 있어요. 아내와 둘이 사는데 집이 너무 큰 것 같아서.

건축가의 집이자 건축사무소인 이곳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비계로 만든 난간.

Q : 아쉬움이 크겠어요

A : 그렇지도 않아요. 건축가가 다 지은 집을 건축주에게 주고 나오는 것과 똑같지, 뭐(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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