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한국 대선 지켜보던 일본인 2만7천명이 남긴 말 [박철현의 도쿄스캔들]
[박철현 기자]
▲ 제 20대 한국대통령 선거를 맞이해 일본 최대의 유저 참여형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니코니코에서 10시간 동안 라이브 중계를 했다. |
ⓒ 박철현 |
"나도 오늘 < 1987 >이나 <택시운전사>를 봐야겠어. 한국 정치에 대한 생각이 완전 바뀌었어."
제20대 한국대통령 선거를 맞이해 일본 최대의 유저 참여형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니코니코에서 10시간 동안 라이브 중계를 했다(https://sp.live.nicovideo.jp/watch/lv335841142). 총 시청자 2만 7천명, 달린 댓글은 9100개가 넘었다. 니코니코 동영상은 해당 방송을 보고 있는 시청자가 쓴 댓글이 화면 내에 표시되는 것이 특징이다. 시청자 입장에선 자신의 코멘트가 화면에 표시되기 때문에 참여욕구가 좀 더 높아지고, 방송을 진행하는 사람들은 시청자의 코멘트를 안 볼 수가 없어, 필연적으로 댓글을 소개할 수밖에 없다. 쌍방향 소통이 다른 플랫폼들보다 높아지게 된다.
같이 출연했던 중앙학원대학 이헌모 교수 역시 처음엔 이 시스템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이내 적응해, 시청자들이 남기는 질문들을 픽업해 상세한 답변을 했다.
니코니코 공식채널에서 방송하는 건 이번이 세 번째다. 5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시작으로, 2017년 5월에는 한국 더불어민주당 국제국에 부스를 차리고 19대 대통령 선거 중계를 했다. 이번에도 원래는 한국에서 현장 중계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일본에서 진행했다.
일본인들 대상으로 한국 대선을 중계하기
▲ 니코니코 공식채널에서 방송하는 건 이번이 세 번째다. 5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시작으로, 2017년 5월에는 한국 더불어민주당 국제국에 부스를 차리고 19대 대통령 선거 중계를 했다. 이번에도 원래는 한국에서 현장 중계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일본에서 진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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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방송을 기획한 드완고의 오츠카 프로듀서 역시 "한국정치 관련 콘텐츠는 여러 의미로 관심을 모은다"며 "일본 지상파 방송이 한국 대통령선거를 많이 다루기도 할 뿐더러, 기본적으로 한국이라면 무조건 관심을 가지는 유저들도 있고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등을 통해 한국 사회에 흥미를 가진 시청자들도 늘었다"고 한국 콘텐츠의 인기를 분석한다.
드완고는 2005년 설립돼 유저 참여형 동영상 플랫폼 니코니코 동영상으로 큰 인기를 끌었지만, 유튜브에 밀려 약화됐다가 2014년 일본 출판 및 콘텐츠 대기업 가도가와 서점에 합병됐다. 참고로 가도가와의 대주주(7.1% 지분)가 한국 카카오이다.
그가 말한 지상파 방송은 대개 민영방송국의 낮 시간대 와이드쇼를 의미한다. 일본의 민영방송국들은 크게 아침 시간대와 정오를 지난 오후 시간대, 그리고 저녁부터 밤 시간대에 각종 뉴스 및 정보 프로그램을 편성한다. 특히 낮 시간대에 편성되는 방송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뉴스 프로그램이 아니라 세상의 온갖 이슈들을 다루기 때문에 보통 '와이드쇼'라 부른다. 이런 방송들은 편성시간이 짧게는 두 시간, 길게는 세 시간을 넘어가는 경우도 많아 세세한 부분까지, 그것도 며칠 동안 다루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주제들 중 가장 인기 있는 분야가 바로 '한국 발 스캔들'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그러했고, 조국 사태는 정점을 찍었다. 니혼TV의 와이드쇼 <미야네야>는 근 한 달 동안 조국 관련 내용을 하루에 10분에서 20분씩 다뤘다. 조국 전 장관이 35일 만에 법무부 장관을 사퇴했으니 거의 그의 취임부터 퇴임까지 빠짐없이 다뤘다는 말이 된다. 조국 사태가 사그라질 무렵엔 추미애 전 법무장관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대립도 몇 번이나 봤던 기억이 난다.
의도했는지 안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한국의 소식을 다루는 관점도 매우 편향돼 있다. 한국은 시끄럽고 바람 잘 날 없으며 마음에 안 들면 거리로 나가는 미성숙한 민주주의에, 법치가 아닌 인치에 의존하고, 결과적으로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임기가 끝나면 불행한 결말을 맞이한단 식으로 보도한다. 문제는 이런 식의 편향 보도가 계속되면 한국 정치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시민들이 편견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민영방송의 폐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윤석열·이재명을 언급하면 반드시 윤석열은 친일이고 이재명은 반일이니까 윤석열이 되어야 한다거나, 혹은 둘 중 누가 되어도 한일관계는 똑같다는 식의 단정적, 회의적 반응이 주를 이뤘다. 이에 대해 우리는 "한 나라의 외교정책은 그렇게 100% 누가 옳거나 그르다라는 식으로 나눌 수 없고 끊임없이 대화를 지속하면서 타협점을 찾는 게 외교의 기본인데, 아예 처음부터 단정적으로 정하고 가면 아무 것도 안 된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조국 사태가 한창일 때 자주 다니던 이발소의 전담 이발사가 갑자기 조국의 이야기를 꺼내며 한국은 뭐가 그렇게 문제가 많냐는 식으로 나에게 물어온 적이 있다. 2019년 8월 그 때 일본정치는 아베 전 총리의 스캔들로 몸살을 앓고 있던 시기였고, 한국의 법무부에 해당하는 법무성에서도 가와이 가쓰유키 법무상(후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돼 실형 판결, 의원직 제명)과 그의 후임으로 임명된 모리 마사코 법무상의 부적절한 발언 등으로 문제가 꽤 많았는데, 정작 본국의 정치적 스캔들보다 이웃나라 법무부 장관을 열정적으로 거론하는 그의 모습이 얼마나 웃겼는지 모른다. 실제로 마지막에 "그나저나 지금 일본 법무성 장관 이름은 알고 있냐?"는 내 질문에 그는 "누구죠? 그러고 보니 법무상이 누군지 모르겠네..."라며 아무 말도 못했었다.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야?'
하지만 과연 일본 미디어가 한국을 소비하는 방식이 정말 이런지 사실 감이 잘 안 왔다. 내 간단한 경험으로 일반화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대통령 선거 라이브 중계를 하면서 확실히 알게 됐다. 정말 이 사람들은 한국정치에 대해 잘 몰랐다. 먼저 한국의 정치제도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 대통령을 했던 사람이 왜 다시 못 하느냐부터 시작해, 직접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한다는 것 자체를 모르거나, 투표율이 75% 이상을 기록한다는 것에 깜짝 놀라는 이들도 있었다. 아예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란 사실조차 모르는 이들도 있었다.
▲ 중계현장 모습. 필자와 중앙학원대학 이헌모 교수 |
ⓒ 박철현 |
이헌모 교수는 좋은 길잡이 역할을 했다. 그는 어디서부터 설명해야할지 감이 안 온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지난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마치 학생들에게 강의하듯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마침 양당 후보의 표 차이가 매우 적을 것이라는 출구조사가 나와, 즉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승리선언을 하기엔 매우 많은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강의할 시간은 충분했다.
제가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닐 때 한국은 군사독재정권이었고, 그땐 학교 정문에 군인들이 아예 상주해 학생들의 가방을 뒤졌다. 학생증을 제시하고 불온서적이 있나 없나를 체크하고서야 학교 출입이 가능했다. 그랬던 독재정권이 80년대 내내 지속된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무너지고 87년부터 민주화 체제로 이행돼 대통령은 5년 단임제, 직접투표를 통해 선출된다. 그래서 한국의 대통령선거는 한국시민들에게 있어 소중한 승리의 결과이자 권리이기 때문에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잘 이해가 안 된다면 음... 한국영화를 보면 된다. < 1987 >이나 <택시운전사> 같은 것들. 넷플릭스에 있으니 꼭 봤으면 한다.
그러자 댓글란이 빠르게 움직였다. 일본인 시청자들은 "1987 봤는데 그게 실화였구나" 부터 시작해 "넷플릭스에 있다고? 꼭 봐야지" "한국은 민주화 운동을 통해 승리했고 우리는... 음 그런 게 있었나?" 등등. 나 역시 덧붙였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비견할 만한 동아시아 나라들의 시민투쟁을 본다면, 중국은 천안문 사태, 일본은 안보투쟁이 아마 비슷할 건데, 둘 다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났다. 반면 한국은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게 가장 큰데, 권력자들이 시민들의 눈치를 보게 됐다. 보수와 진보 간의 견제와 균형이 5년에 한번 돌아오는 대통령 선거로 절묘하게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정치인은 유권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실제로 정책 등에 반영된다. 유권자들도 그걸 알고 있으니까 75% 이상의 투표율이 나오는 거다. 일종의 선순환이다.
일본인 시청자들은 이러한 설명에 큰 공감을 보였다. 일본의 대통령 선거라 할 수 있는 중의원 총선거(이 선거에서 과반수를 획득한 정당의 대표가 내각총리대신으로 임명됨)의 투표율이 2012년 총선거에서 역대 최저인 52%를 기록한 이래 줄곧 50% 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맞는 말. 우리도 이건 본받아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 방송은 대히트였다. 혹자는 총 시청자 2만 7천명이 무슨 히트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니코니코의 다른 정치 콘텐츠들의 평균 시청 수는 보통 몇 백, 몇 천 수준에 머문다. 특히 일본 정치에 관한 콘텐츠는 천을 못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치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도가 매우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
ⓒ 박철현 |
윤석열 대선 승리의 순간, 일본인들은...
일본 와이드쇼는 친일과 반일의 관점에서 양당 후보를 설명하고, 한일관계가 잘못됐기 때문에 문재인의 외교는 엉망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큰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외교는 일본이 전부가 아니다. 남방외교, 중동외교, 무엇보다 한미관계는 지금 최상의 관계인데, 일본 방송은 그런 부분들은 거의 설명하지 않고 오직 일본과의 관계에만 초점을 맞춘다. 매크로적 관점 없이 세부적인 것들에만 집착한다. 그렇게 중요한 이웃나라이고 다루는 분량도 정말 많은데 전체를 볼 능력도 없고, 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시청자들은 이러한 말에도 큰 공감을 보였다. 그렇게 10시간 동안 방송을 진행했다. 그간 막연하게 몇몇 경험칙으로만 느껴왔던 인상이 일반화 됐다. 평균적인 일본인들은 아마 한국에 대해 잘 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2만 7천여 명에 달하는 시청자들이 봤으니 충분히 일반화시켜도 될 것 같다.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통화를 하고 있다. |
ⓒ 국민의힘 제공 |
아직 일본인들은 한국을 잘 모른다. 하지만 모르기 때문에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설명을 해야 한다. 마침 기시다 총리가 먼저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에게 축하인사말을 전해 왔다고 한다. 이왕 이리 된 거 제로베이스에서 대등한 한일관계를 모색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한국드라마 덕에 일본 시민들의 한국에 대한 문화적 접근도는 이미 매우 높다. 그들은 친밀감도 느낀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닌다. 이런 때 일수록 한국 민주주의와 정치의 역사에 관해 차분히 설명하고 전파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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