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만 구독자를 소유한 [문명특급]의 홍민지 PD가 말하는 유튜브 콘텐츠는? #ONETHEWOMAN

2022. 3. 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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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뉴미디어팀 인턴들이 만든 콘텐츠 <문명특급> 은 어느덧 175만 구독자가 응원하는 골드 버튼 채널이 됐다. 4년 동안 몸을 던져 <문명특급> 을 만들었다는 홍민지 PD가 아무것도 안 해주는 것 같은 회사도 알고 보면 해주고 있으니 뽑아 먹어야 하는 것,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 빌어먹을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꿈꿀 수 있는 무해한 욕심에 대해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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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특급〉(이하 〈문특〉)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인턴들이 만든 콘텐츠였다는 까마득한 탄생 설화가 있죠. 소위 말하는 ‘언론고시’를 거치지 않은 PD들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이 참 낯설었겠다 싶어요.

저희는 PD에게 ‘연반인’ 같은 존재였어요. “쟤네는 작가야, PD야, 기자야? 쟤네는 예능이야, 교양이야, 콩트야?” 하는 식으로요. 뉴미디어팀 자체도 신설된 팀이라 존재 자체가 정체불명이었죠. 줄곧 한국방송대상에서 언젠가는 상 한 번 타자 싶었어요. 그러면 그놈의 ‘방송’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우리가 들어왔다는 의미가 되잖아요. 지난해 한국방송대상에 뉴미디어 분야가 신설됐는데 저희가 최초로 작품상을 받았어요. 재재 언니가 상 받으러 무대에 올라가는데, 통쾌하게 복수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기뻤어요.

이은재 PD(재재)가 플레이어처럼 나서다 보니, 주위에서 〈문특〉의 공이 ‘재재’에게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많이 받는다고요.

그런 질투하기엔 일하기도 바빠요. 재재 언니가 잘됐을 때 단 한 명도 제게 “야, 너 재재 잘돼서 좋겠다” 하는 사람은 없었죠. 꼭 “네가 그래도 연출인데… 너도 PD인데…” 이런 말부터 나오더라고요, 마치 질투하고 시기하라고 부추기는 것처럼요. 우리는 정말 서로 응원하고 있고 더 돈 많이 벌고 더 잘 먹고 잘 살려고 연대하고 있어요. 저는 재재 언니가 〈문특〉의 영업사원이라는 말도 자주 하는데, 용기 있는 사람만 얼굴 내놓고 말할 수 있는 걸 알기에 너무 고마워요.

듣다 보니 아이돌 인터뷰에서 들어본 멘트 같기도 하네요. 아이돌 그룹한테 센터가 잘돼서 멤버들끼리 질투는 안 났냐, 불화는 없었냐고 꼭 물어보잖아요.

그게 바로 낡은 올드 패션 프레임입니다. 너무 지겨워요. 자꾸 프레임을 씌워버리면 ‘내가 이 사람 시기해야 되나’ 싶어 나도 모르게 행할 수 있겠다 싶어요. 옆에 누가 잘되면 너도 되게 기분 좋겠다고 리액션하며 다 같이 응원하는 사이가 되길 바라요. 실제로 〈문특〉팀에는 메인 보컬, 서브 보컬, 리더 다 있거든요? 근데 창피해서 말씀 안 드릴게요(웃음)

자기 차례가 온다는 걸 믿고 서로 연대하는 그룹이 장수하는 법이죠. 〈문특〉은 무언가 유행하면 그 현상 자체보다 그 현상을 만든 사람을 궁금해하는 프로그램이에요. ‘신문물을 전파하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문특〉이 ‘신문물’을 정의하는 기준은 뭔가요?

에펠탑도 처음엔 흉물로 여겨졌다고 하잖아요. 기성 방송은 흉물을 다루기 어려워요. 그걸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고 불편한 시선을 지켜주는 것도 기성 방송의 의무니까요. 웹 예능 콘텐츠는 보고 싶은 사람만 찾아볼 수 있으니 좀 덜 멋있거나 이상한 것들에 집중할 수 있어요. 소재로 염두에 두다가도 공중파에 한두 번 나온다 싶으면 ‘멋있어지고 각이 잡히고 있다’는 이유로 취소한 적도 많고요.

나만 아는 마이너를 추구하는 ‘홍대병’ 같은 건가?

주목하지 않았던 무엇을 다시 물 위로 끌어 올리고 싶어요. 지나가서 다시 안 보이는 것들도 다시 끌어 올려주고 싶고요. 튜브 끼고 편하게 수면 위에 있는 것에게 뭐하러 저희가 튜브를 끼워주겠어요. 수면 밑에서 용기 내지 못하는 사람들과 뭔가를 함께 해보고 싶어요.

제겐 PD님이 물 밑에서 딱 올라올 타이밍만 기다리며 숨 참고 있던 사람 같았어요. PD님 인터뷰는 원래 다음 달 진행할 예정이었는데, 이번 달 인터뷰 내정자가 갑자기 코로나19에 걸려 PD님이 촬영장으로 달려왔죠. 업무 면에서는 누군가의 빈자리를 금세 채우고 일이 차질 없이 진행되는 것에 안도했는데, 한편으로는 씁쓸하더라고요.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겠구나…’ 싶어서요. 회사도 마찬가지고 〈문특〉도 그럴지 모르죠.

누군가 나를 대체할 수 있다는 건 역으로 나도 늘 누군가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는 거라고 여기면 돼요. 제가 대체한 사람도 어딘가에서 또 좋은 사람들을 만날 거고, 그렇게 순환이 돼야 집착하지 않고 제자리에 설 수 있죠. 후배 조연출 PD에게도 나는 언제나 대체될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고 말해요. 출연자는 대체할 수 없지만 연출자는 대체해도 큰 문제가 없을 만큼 시스템이 공고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끌어가도 충분히 재미있는 포맷을 만드는 게 저의 역할이지, 이건 내가 만든 ‘내 거’니까 내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다 보면 사람 인생 진짜 피곤해져요. 욕심만 생기고.

〈문특〉 구독자가 175만 명이 넘다 보니, 제작진이 정당한 인센티브 받고 일하는지 구독자가 걱정하는 분위기예요. 직장 생활 하다 보면, 일은 죽어라 내가 하고 돈은 회사가 버는 구조에 회의감을 느낄 때도 있죠. 그렇지만 조직에 몸담고 있기에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가 많은 것도 사실이고요. PD님에게 조직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회사를 SBS 간판이 붙은 컨테이너 박스라고 생각하거든요. 간판보다는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 너무 중요한데, 지금 회사는 역사가 짧지 않아 배울 수 있는 선배들이 너무 많아요. 큰 인프라 속에서 업계의 노하우가 있는 사람에게 일대일 강연을 들을 수 있는 거죠. 예를 들면 조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는 사내 연락망에서 조명 팀장님을 검색해 찾아가서 물어보는 식으로요. 무대 연출 경험이 없는 우리 팀이 〈문특 콘서트〉를 시도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조직 내에 무대 디자인과 세트팀이 있고, 스튜디오도 빌릴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에요. 무엇보다 저를 내치지 않고 하나라도 더 알려주신 연륜 있는 전문가 선배들이 계신 덕분이고요.

훗날 일하고 싶은 회사를 고를 때 어떤 기준을 세울 건가요?

회사의 껍데기는 중요하지 않아요. 회사 생활은 냉난방 시스템이 잘돼 있고 사양 높은 컴퓨터를 주는 ‘좋은 PC방’에서 일한다고 생각하면 편해요. 제 첫 사수인 하대석 전 기자님이 회사에 애정을 가지고 배우고 싶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남고, 배우고 싶은 사람이 없으면 그때 떠나라는 조언을 해주셨거든요. 저도 떠나겠다는 판단이 서면, 자신의 노하우를 거머리처럼 뽑아 먹혀도 끄떡없는 단단한 사람들이 모인 어딘가를 찾아가지 않을까요?

브런치 글에 “적절한 보상도 받지 못했지만 프로그램에 대한 열정과 노력을 셀프로 강요했다”는 표현을 썼던데요, 변태 같은데 뭔 줄 알겠더라고요. 매거진도 방송국과 비슷한 환경인데, 동료들끼리 이렇게 보수는 적고 노동 강도는 쎈 분야에 자연스레 여초 문화가 형성되는 건 아닐까 하는 물음표를 가져보기도 했어요.

왜 보상 없는 셀프 열정을 강요했는지 스스로 고찰해봤어요. 애초에 사회가 우리한테 케이크를 딱 한 조각만 주고 나눠 먹으라고 한 게 문제더라고요. 스스로가 케이크 한 판 다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거죠. 홀케이크를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요(웃음). 그렇게 케이크 한 조각을 서로 아끼며 잘라 먹다 보니 어찌어찌 버텨지고, 버텨지니까 열정이 생기고 노력을 하는 거예요. 케이크 한 조각 놓고 쪼개 먹는 건 그만하고 홀케이크 굽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많은 업계에 그 연습이 안 돼 있는 것 같아요.

저임금 고노동 환경은 콘텐츠업계 공통의 문제라 생각했는데, 다른 업계 역시 유독 여초 집단에 이런 환경이 많은 것 같기도 해요.

어릴 때부터 ‘(여자니까) 한 조각이면 충분하지 않아?’라는 시선에 익숙해져서, 한 조각 먹고는 배 안 부른데도 이 정도면 배부르지 자위한 경험 다들 있을걸요? 누군가는 홀케이크를 다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뭐? 내가 이걸 다 먹을 수 있었던 거야?’ 싶을 거예요.

이직을 하더라도 케이크 하나 더 주는 수준이고, 홀케이크 주는 회사를 찾기 어려운 게 딜레마죠.

개인이 홀케이크를 만들 수 없으니 비슷한 업계에서 비슷한 생각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논의가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다 같이 모여 하는 컨퍼런스든 뭐든 전체적인 파이를 키울 수 있게 베이킹부터 시작하자는 거죠. 남의 것을 뺏어 먹겠다는 게 아닌, 케이크 하나를 새로 굽겠다는 의지는 사회를 발전시키는 논의잖아요. “너네는 매대에 있는 거 먹어, 우리 건 우리가 구워 먹을게!”

PD는 유명인을 만나 콘텐츠를 제작하고 트렌드를 만든다는 점에서 선망의 직업으로 비치곤 해요. 하지만 이 일을 꿈꾸는 후배들의 환상과 업계의 실상은 많이 다르겠죠.

생각보다 창의적인 일이 아니라는 거? 저는 연출과 영상 편집을 담당하는데, 영상 편집이 뜨개질이랑 비슷하거든요. 한 컷 한 컷 붙여가며 뜨개질하다 꽈배기 한번 넣어보고 색이랑 모양 한번 바꿔보는 정도의 크리에이티브가 들어가는 정도죠. 목도리 다 뜰 때까진 자리에서 움직일 수도 없고요. 끈기 없으면 안 돼요. ‘나는 한 땀 한 땀 창의력을 발현하는 모습을 보여줄 거야!’라는 생각으로 도전하면 많이 힘들죠.

4년 동안 뜨개질하듯 〈문특〉을 만들며 가장 기억에 남은 출연자는 누구예요?

임성훈 진행자님이요. 100회 지나면 프로그램이 계속 간다는 말을 하셨는데, 지금 〈문특〉이 230회가 넘었어요. 그때는 어떤 의미인지 몰랐는데 시청자들이 관성이 붙어 프로그램을 계속 보는 게 아니라, 제작진의 마음에 안정감이 생겨서 오래가는 것 같아요. 100회가 되기 전에는 계속 월세 내고 전세 살면서 언제든 이사 갈 준비를 하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작은 집일지언정 매매한 기분이에요. 내 집이 생기면 좀 더 마음껏 꾸미게 되잖아요. 그 전에는 시청자들 반응이 눈치 보여서 못한 것도 많은데, 지금은 시청자도 저희를 믿고 제작진도 스스로의 선택을 믿게 됐어요.

230회가 넘는 〈문특〉은 어떤 사람들이 만들어왔나요? 연기대상 수상 소감처럼 한 분 한 분 이름을 나열할 수 있는 기회 드리겠습니다.

인턴분들 제외하면 디자인팀 포함해 7명이에요. 이은재·이규희 PD가 구성 쪽을 담당하고 있고요. 저와 오한주, 김혜민 PD가 연출 편집을 담당하고 있어요.

대부분 여성으로 구성된 팀이네요?

촬영·음향팀에는 남자 팀원이 계세요. 연출팀에도 원래 있었는데 다른 직장에 합격했다고 나갔어요.

그래서 그런지 한 가지 일을 끝까지 꾸준하게 하는 사람 중에 여성이 많은 것 같기도 해요.

튈 데가 없으니까요.(웃음) 선택지가 다양하지 않으니 처음 선택한 것에서 웬만하면 방향을 잘 안 틀죠. 근데 연차가 쌓이다 보면 그 점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현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 주어진 선택지가 다양하지 않다고 해서 좌절하지 말고 일단 가봅시다. 다 같이 홀케이크 찾으러!

파이팅이 넘치네요. 홍민지라는 사람의 생각을 독자들이 어떻게 읽어줬으면 해요?

우리는 1인 1홀케이크를 먹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란 걸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저 사람도 하는데 나도 하겠다. 별거 없네’ 하며 거만하게 읽어주면 더 좋겠고요. 그리고 뭘 하든 일단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100번까지 했음 좋겠어요. 하다가 포기하는 건 실패가 아니에요. 다만 100회까지는 꾸준히 해보고 자신과 맞다 안 맞다를 얘기하면 좋겠어요. 별다를 것 없는 저도 〈문특〉을 100회 넘게 만들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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