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 무력감에 수의사 가운 벗었다..그가 만든 '기적의 어플' [별★터뷰]

양수민 입력 2022. 2. 28. 05:00 수정 2022. 3. 21.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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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 주고 제 손으로 씻겼던 아이들을 안락사 시켜야 했어요. 약물을 주사하면 정말 짧은 시간에 생명이 없어져요. 너무 힘들었죠.”
동물을 살리고 싶어 수의사를 꿈꿨는데, 오히려 제 손으로 생명을 죽이고 있었다. 9년 전 이환희(36)씨를 괴롭힌 고민이다. 이씨는 2013년 4월 경기도 가평군에서 군 대체복무를 하며 공중방역수의사로 근무했다. 대학에서 수의학을 전공하고 졸업한 예비 수의사 때였다.
23일 서울 마포구 대흥동 포인핸드 사무실에서 만난 이환희씨. 양수민 기자


입양 안 된 유기동물 기다리는 건 ‘죽음’


지난해 25일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 남양주유기견보호소에서 유기견들이 봉사원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 이날 국경없는수의사회와 로얄캐닌 임직원을 비롯한 봉사원들은 유기견 예방접종, 채혈, 환경 정리 등의 봉사활동을 했다. 뉴스1
이씨의 업무는 ‘동물보호’였다. 보호소에 들어온 유기동물을 씻기고 진료하고 밥을 줬다. 새 가족을 찾을 수 있도록 동물보호관리시스템(APMS)에 등록도 했다. 하지만, 홍보가 덜 된 탓에 입양 문의는 거의 없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동물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죽음이었다.

“더 이상 치료를 할 방법이 없을 때, 고통을 덜어줄 방법이 없을 때 선택해야 하는 게 안락사예요. 그런데 보호소에서는 ‘개체 수 조절’을 위해 건강한 동물도 안락사를 했어요. 수의사가 해야 할 일인가 싶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 고민이 컸습니다.”


수의사이자 개발자로…‘이중생활’의 시작


포인핸드 로고는 사람의 손과 동물의 앞발이 서로 맞잡고 있는 모습이다. 이환희씨 제공
이씨의 ‘이중생활’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낮에는 공중방역수의사로, 밤에는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몰두했다. 사람들이 보다 쉽고 편하게 전국의 유기동물 입양 공고를 확인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마음으로 잠을 쪼갰다. 대학시절 수의학이라는 학문에 흥미가 떨어졌을 때 익혀놨던 코딩 실력이 도움이 됐다.

그해 11월, 이씨는 유기동물 입양애플리케이션 ‘포인핸드’를 세상에 내놨다. 개발에 돌입한 지 약 2개월 만이었다. 포인핸드는 9년이 지난 지금 전국유기동물보호소로 구조된 동물들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국내 최대 유기동물 입양애플리케이션이 됐다. 2013년 11월 어플이 출시되고 포인핸드로 가족을 만난 동물만 10만 마리가 넘는다.

포인핸드라는 독특한 이름도 이씨가 직접 지었다. 대표 사진처럼 동물 앞발(Paw·포)과 사람 손(hand·핸드)이 맞잡는 다는 의미다.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라고 이씨는 설명했다. 동물을 사람처럼 여긴다면 ‘핸드인핸드’(손에 손 잡고)와 같은 의미인 셈이다.


“동물 살리고 싶어”…결국 수의사 가운 벗다


이환희 대표가 공중방역수의사로 군 대체복무를 하던 시절의 모습. 이환희 대표 제공
2016년 4월 대체복무를 마치고 서울의 한 동물병원에서 수의사로 일하던 시절에도 이씨의 이중생활은 계속 됐다. 낮에는 병원에서 진료를 하고, 퇴근하면 집에서 어플을 관리했다. 문제없이 진행되던 이중생활은 포인핸드의 사용자가 늘어나자 고비를 맞았다. 사용자가 10만 명을 넘자 관리에 한계가 왔다. 병원에서 일할 때 서비스가 중단되니 대처할 수도 없었다.

2017년 4월 이씨는 결국 수의사 가운을 벗기로 했다.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와 부모님이 말렸지만, 그의 신념은 확고했다. “그때는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어요. 그만큼 간절했던 거죠. 수의사 마이너스 통장으로 5000만원 빚을 내서 시작했어요”라고 이씨는 설명했다.


“유기견은 상처많다?…편견 없어졌으면”


이환희씨가 대표로 있는 포인핸드는 매거진을 통해 반려동물을 입양한 가족의 이야기를 알린다. 이환희씨 제공
혈혈단신으로 시작했던 사업은 직원이 7명으로 불어났다. 굿즈 판매와 광고 수익, 기업 캠페인 등으로 운영에 문제가 없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이 녹록치 않다”고 이씨는 말한다. 유기동물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은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엔 한 유명 방송인이 “전문가는 유기견을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는 충격이 컸다고 한다. “그 한마디에 유기동물이 부정적으로 규정되고 일반화되는 현실 때문”이다. 이씨는 당시 칼럼으로 유기동물에 대한 편견을 만든 방송인의 말에 반박했는데, 여러 악플이 달려 마음고생을 했다. 동시에 신발끈을 다시 조이는 계기가 됐다. 유기동물은 ‘아프고 상처받았다’는 편견을 더 열심히 깨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은 거다.


“아직 목표의 절반도 안 와…사지 않고 입양하는 날까지”


서울 마포구 대흥동에 위치한 포인핸드 사무실에 '사지 않고 입양하는 문화를 만듭니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양수민 기자
이씨가 대표를 맡고 있는 포인핸드는 그래서 요즘 유기동물에 대한 의식 변화를 이끄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유튜브 등 SNS와 자체 매거진을 통해 입양 가족의 후기를 전하고, 대규모 사진전을 열어 새 가족을 찾은 유기견들의 행복한 얼굴을 알렸다. 유기동물은 새 가족과 잘 지내지 못할 거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서다. “평범한 사람들이 유기동물을 입양해서 잘 지내는 모습을 보는 게 제일 도움이 될 것 같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직 수의사 이환희씨의 별톡.

양수민 기자 yang.su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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