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이 '나쁜 평화라도 전쟁보단 낫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박성우 2022. 2. 2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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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발언은 실제 없었다.. 2016년부터 왜곡돼 유통된 말일 뿐

[박성우 기자]

 권영세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장이 25일 올린 페이스북 게시글.
ⓒ 권 본부장 페이스북 갈무리
 
권영세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장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안보관을 이완용에 빗대 비판했다. 권 본부장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매국노 이완용이 '나쁜 평화라도 전쟁보단 낫다'고 했다고 한다. 이 후보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라면서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는 힘없는 평화, 말뿐인 평화는 결국 전쟁을 불러온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완용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최근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이러한 사진이 돌아다니고 있다.
ⓒ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 갈무리
 
이완용의 발언을 언급하며 이재명 후보를 비판하는 건 비단 권 본부장뿐만이 아니다. 현재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이완용의 발언과 이 후보의 발언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이미지가 돌아다니고 있다.

해당 이미지에는 "아무리 나쁜 평화라도 전쟁보다는 낫다. 이게 다 조선의 평화를 위한 것이다"라는 이완용의 발언과 이 후보가 성남시장 시절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이긴 전쟁보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 아무리 비싸고 더럽고 자존심 상해도 전쟁보다 평화가 낫다"는 문구를 비교해놨다. 두 발언이 유사하다는 맥락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완용이 그러한 발언을 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대신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1905년 11월 16일 오후 4시, 이토 히로부미는 대한제국의 대신들인 이완용, 한규설, 이하영, 이지용, 이근택, 민영기, 권중현을 불러 을사늑약 체결을 압박한다. 이때 이완용은 이렇게 말한다.

"일본은 한국 문제 때문에 두 번이나 큰 전쟁을 치러 이제는 러시아까지 격파했으니 한국에 대해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그런데도 일본 천황과 정부가 타협적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하니 우리 정부도 일본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즉 일본이 마음만 먹으면 한국을 향한 전쟁도 불사할 수 있음에도 무력 사용이 아닌 조약을 통해 일을 처리하려고 하니 조약에 응하는 쪽이 옳다는 이야기다. 이 발언을 '나쁜 평화가 전쟁보다 낫다'는 맥락으로 해석할 수는 있다. 하지만 현재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이미지처럼 정말로 이완용이 '아무리 나쁜 평화라도 전쟁보다는 낫다'는 발언을 직접 한 것처럼 표현한 것은 왜곡에 불과하다.

과거에도 쓰인 적 있는 문구... 2016년 문재인 비판 위해 쓰인 적 있다
 
 이미 2016년에 해당 발언이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해 쓰인 것으로 보인다. 사진의 왼쪽 상단에 <미디어펜>의 로고가 보인다.
ⓒ 트위터 갈무리
 
어쩌다가 이완용이 이런 말을 했다고 알려졌을까. 2022년 현재 인터넷에 떠도는 이미지와 비슷한 이미지가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재명 후보 대신 문재인 대통령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2016년에 시중에 유통된 그 이미지는 "정의로운 전쟁보다 비겁한 평화가 낫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과 함께 이완용의 거짓 발언을 비교해놨다.

그런데 2016년 이미지의 경우, 이완용뿐만 아니라 문 대통령의 발언까지 왜곡하고 있다. 해당 이미지를 자세히 보면 문 대통령 사진 배경에 문 대통령의 페이스북 게시글이 보인다. 해당 게시글은 문 대통령이 2016년 10월 15일 올린 게시글로 "가장 좋은 전쟁보다 가장 나쁜 평화에 가치를 더 부여한다"는 내용이다. 아마 이 내용을 "정의로운 전쟁보다 비겁한 평화가 낫다"는 문장으로 왜곡한 것으로 읽힌다.

그렇다면 이완용은 왜 소환된 것일까. 2016년 제작 이미지의 출처는 위 이미지에도 명기돼 있다시피 인터넷 언론사인 <미디어펜>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 <미디어펜>에서는 검색을 해도 해당 이미지는 찾을 수 없다. 다만 2016년 10월 18일에 트위터에서 해당 이미지가 공유된 흔적이 남아있는 걸로 미루어 보아 그즈음에 만들어진 이미지임을 알 수 있다.

맥락을 조금 더 살펴보자. 위 이미지가 공유되기 전날인 2016년 10월 17일, 하태경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결사항전을 선택한 이순신보다 항복하고 나라를 넘긴 이완용이 더 낫나는 말이 될 수 있다"면서 문 대통령의 해당 페이스북 게시글을 비판했었다. 하지만 하 의원은 '문 대통령의 주장대로라면 이완용이 더 낫다는 것인가'라고 비판했지, 이완용도 문 대통령과 비슷한 발언을 했다고는 비판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일각에서 하 의원의 '문재인 비판'과 흐름을 같이 하기 위해 이완용을 소환해냈고, 이완용의 실제 발언을 '정의로운 전쟁보다 비겁한 평화가 낫다'라는 왜곡 발언과 유사한 형식으로 재왜곡한 결과 '아무리 나쁜 평화라도 전쟁보다는 낫다'는 발언이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이게 다 조선의 평화를 위한 것이다'라는 문구가 덧붙여졌다.

팩트체크 없이 자극적 비판 위해 쓰인 왜곡발언... 이제는 멈춰야 할 때

이후 이런 왜곡은 실제 정치권에 쓰이기 시작한다. 2017년 9월 30일 강효상 당시 자유한국당은 문정인 당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의 "한미동맹이 깨진다 하더라도 전쟁은 안 된다"는 발언을 비판하는 성명을 내면서 "'아무리 나쁜 평화도 전쟁보다는 낫다'는 말은 일제강점기 때 매국노 이완용이 했던 말이다. 문 특보는 이 말에 동의하는 것인가"라고 했다.

또한 일부 언론 역시 해당 왜곡 발언을 사실인 것 마냥 무비판적으로 인용하기도 했다. 가령 <한국경제>의 <與 "나쁜 평화도 전쟁보단 낫다"…野 "이완용 논리와 비슷">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특히 야권에서는 여권의 이 같은 주장이 과거 경술국치(한일합병)을 추진했던 이완용의 논리와 비슷하다며 비판하고 있다. 이완용은 과거 '나쁜 평화라도 전쟁보단 낫다'고 주장했다"면서 이완용이 실제로 그러한 발언을 한 것처럼 보도했다.

이처럼 정치권과 언론이 제대로 된 팩트체크조차 하지 않은 결과 이완용 발언 왜곡은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이재명 후보의 안보관을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굳이 왜곡된 발언까지 끌어와 언급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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