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정부에 대한 분노, 두 번의 경험이 말해주는 교훈 [강인규 리포트]
[강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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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투표를 위해 1천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다녀 올 예정입니다. 사진은 가장 가까운 투표소가 있는 필라델피아입니다. |
ⓒ King of Hearts |
저는 이번 주말, 새 대통령을 뽑기 위해 왕복 1363킬로미터를 운전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미국 이주노동자인 탓에 필라델피아 총영사관 출장소에서 투표를 해야 합니다. 꽤 먼 거리지만, 그나마 제가 사는 도시에서 가장 가까운 투표소입니다.
대선 이야기가 나오니, 한국에서 보낸 지난 여름이 떠오르는군요. 저는 한국에서 석 달을 보내며 많은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전 세계가 여전히 코로나와 씨름 중이지만, 2년 만에 한국을 방문할 수 있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모국에 머무는 동안, 방역 일선에서 비지땀을 흘리고 계신 분들에 대한 경이와 감사로 하루하루를 보냈고, 몇 끼 안 되는 식사나마 지역 식당 여러 곳을 최대한 이용하려 애썼습니다.
요즘 인터넷에 '맛집' 정보가 넘치고, 잘 검색하면 만족스러운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모바일 주문을 하면 집에 앉아 편안히 음식을 받아먹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저는 좀 색다른 맛집 찾기를 시도해 봤습니다. 아무런 정보 없이 제가 다니는 길가에서 눈에 띄는 식당을 무작정 들어가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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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2년만에 한국을 찾아 '나만의 맛집 찾기'를 시도했습니다. |
ⓒ 강인규 |
시간은 빨리도 흘러, 미국에 되돌아온 지 벌써 6개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다시 6개월이 지나면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찾아올까요? 코로나 종식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있고,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판단하지만 확신하기는 어렵겠지요.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때가 되면 새 대통령이 청와대 집무실에 앉아 있으리라는 점입니다. 아, 유력 후보 한 명이 '청와대 해체'를 공언한 만큼, 어쩌면 다른 곳에 앉아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저는 이 글에서 지난 여름 한국에서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낀 몇 가지를 말씀 드릴까 합니다. 제가 거리, 식당, 찻집에서 마주했던 얼굴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친 모습으로 서로 웃어주던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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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한국에서 보낸 행복한 여름은 청년들에게 크게 빚진 시간들이었습니다. |
ⓒ 강인규 |
커피를 받아서 제가 늘 앉던 2층 자리로 가면, 항상 먼저 와서 공부하고 있는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수험서를 밑줄 그으며 읽는 것으로 보아, 취업이나 자격증 준비를 하는 듯 보였습니다. 이들은 새로 도착한 사람과 정중히 목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아래층 매장에서 사 온 음식을 서로 나누기도 했습니다. 절친한 친구들은 아니지만 꽤 오래 얼굴을 익혀온 사이로 보였습니다.
이들은 아침에 도착해서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가며 공부하곤 했는데, 제때 끼니를 챙겨 먹는 이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남자 한 명이 접시를 들고 와, 열심히 문제를 풀고 있는 여성에게 슬며시 내밀었습니다. 그 위에는 탁구공 크기의 동그란 케이크 두 개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는 살짝 놀란 듯했지만 웃으며 접시를 받았고,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뒤로 물러간 뒤에 파스텔 톤의 '탁구공' 하나를 수줍게 입에 넣었습니다.
별 일 아니었는데도, 그 날은 종일 기분이 좋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현재가 암울하다 해도, 서로 배려하는 가운데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따금씩 이들이 나누는 대화가 들려오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대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매우 차분하고 정돈된 언어를 구사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도 대학에서 강의하지만, 공부 많이 했다는 교수들 가운데도 조리 있게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주어와 술어가 따로 놀고, 일관성 없이 횡설수설하기 일쑤이지요.
저는 여기서 한국 사회의 핵심적 문제를 봅니다. 그 어느 세대보다 뛰어난 소통 능력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자질입니다), 그토록 열심히 준비하며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합당한 기회와 보상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뿐인가요. 어렵게 직업을 찾는다 해도, 청년들은 불안정하고 위험한 자리로 내몰리곤 합니다.
중대재해 사망자 중 절대 다수가 하청노동자라는 통계가 있지만, 저는 그 찻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자식 잃은 어머니의 울음 섞인 외침을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쿠팡 노동자로 일하다가 과로사한 20대 청년 장덕진씨의 어머니였습니다. 한국의 현재이며 미래인 청년들의 목숨과 삶을 지켜주지 못하는 사회에 희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평행 우주' 속의 길 잃은 분노
한층 더 우려스러운 점은, 현실 속에서는 일상적으로 발견하는 정중함, 감사, 배려를 인터넷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었습니다. 게시판들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장이었는데, 이들은 학교로 나뉘고, 직업으로 나뉘고, 남녀로 나뉘어 상대에게 좀 더 고통을 줄 언어를 찾기에 여념이 없는 듯했습니다. 가족구조의 변화와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이 더 많은 시간을 인터넷에서 혼자 보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혐오의 언어가 사용자들의 사회적 인식과 판단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을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좌절 속에서 손쉬운 분노의 대상을 찾는 것은 매우 인간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길 잃은 분노는 문제의 해법을 찾아 주기는커녕, 눈앞의 해결책마저 놓치게 만들기 쉽습니다. 정치권은 이들의 분노와 좌절에 귀 기울이는 척하면서 도리어 부추겨 활용하곤 합니다. 정치인들에게 가장 무서운 상대는 연대해서 함께 요구하는 시민들이지, 뿔뿔이 흩어져서 서로 싸우는 국민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현실에서 대다수 청년들은 서로 공통점이 더 많을까요, 아니면 차이점이 더 많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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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는 백인 노동자들의 분노를 이용해 집권했지만, 그의 집권 후 경제 상황은 오히려 더 악화됐습니다. <포춘>지가 말하고 있듯, 퇴임 당시 트럼프의 일자리 성적은 1930년대 경제대공황 이래 최악이었습니다. |
ⓒ Fortune |
결과는 어땠을까요? 경제상황은 더 악화됐고, 그로 인해 트럼프는 단임 대통령으로 물러났지만, 인종 혐오와 차별의 언어는 여전히 미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인들을 포함해, 비백인들을 향한 협박과 폭력은 폭증했고, 며칠 전에도 뉴욕에서 한인 여성이 피살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브렉시트 역시 판박이어서, 유럽연합에 가입한 뒤 외국인 노동자가 밀려와 일자리를 빼앗아 갔으며, 외국 노동자들이 제대로 비용도 지불하지 않으면서 영국 국가의료제도(NHS) 축내고 있다는 주장이 득세했습니다. 물론, 사실이 아니었지요. 한국의 경우도 그렇지만, 영국에서 외국의 노동자들은 보험료는 많이 지불하면서 혜택은 잘 누리지 않아, 오히려 재정을 늘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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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연합 탈퇴에 표를 던진 이들은 막상 브렉시트가 가결되고 나니 인터넷에서 "브렉시트는 무엇인가"와 "유럽연합은 무엇인가?"를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길 잃은 분노가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을 낳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
ⓒ 강인규 |
"유럽연합이 뭔가?"
"브렉시트란 무엇인가?"
"브렉시트 가결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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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렉시트 결정 후에 영국의 여론은 뒤집혔습니다. 탈퇴가 잘 한 결정이었다는 여론이 39%, 잘못된 결정이라고 믿는 사람이 48%에 이릅니다. |
ⓒ Statista |
분노는 길을 비추는 불쏘시개로
때로 분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5년 전 분노 속에서 촛불을 들었듯 말입니다. 하지만 당시 우리는 미래에 대한 뚜렷한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긴 날 동안 그 추위 속에서 촛불을 지켜낼 수 없었겠지요.
지금 시민들이 느끼는 분노는 정당합니다. 정부가 촛불 앞에서 한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이 분노의 화약을 터뜨리기에 앞서 한 번 더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트럼프 당선과 브렉시트 가결이 그러했듯, 우리의 대선 역시 박빙으로 결정될 것입니다. 그만큼 당신의 한 표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현재 지도자가 충분히 나아가지 못했다면 더 나아갈 사람을 뽑아야지, 뒤로 갈 사람을 뽑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제가 한국을 떠나던 작년 8월 초, 저는 짐을 챙겨놓고는 늘 찾던 커피숍으로 갔습니다. 바리스타들에게 늘 하던 대로 커피를 주문하고는, 그동안 정말 감사했다고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늘 웃음 짓던 눈이 이제 깊은 서운함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내년 여름에 다시 오느냐고 묻고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꼭 다시 오세요, 저 여기서 계속 일하고 있을게요."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 얼굴 한 번 제대로 못 본 사람들 사이에, 기껏해야 하루 1-2분 대화한 사람들 사이에 이런 정과 유대감이 생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고개 숙여 인사한 뒤 유리문을 밀고 나오면서 기원했습니다. 그 분들의 일이 매일매일 즐겁기를, 그리고 그 성실함에 걸맞은 충분한 보상을 받기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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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 1주년인 지난 2017년 10월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집회 1주년 집회 '촛불은 계속된다'가 열리고 있다. |
ⓒ 이희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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