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식의 레츠 고 9988] '누가 아이 돌보나' 걱정에 검진 걸렀더니 덜컥 유방암 3기

신성식 2022. 2. 23.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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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질병 발생 지도를 크게 바꿨다. 코로나19를 제외한 감염병이 크게 줄었다. 독감·수두·볼거리·세균성 이질 등이 크게 줄었고, 해외에서 감염돼 오던 홍역·뎅기열·라임병·유비저·치쿤구니야열 등이 제로(0)에 가까워졌다. 그런데 달갑지 않은 감소가 있다. 바로 암 발생과 진료 감소다. 2015년 이후 신규 암 환자는 매년 증가해왔다. 인구구조를 같은 조건으로 맞춰서 따져도 마찬가지다.

검진 14%, 신규 환자 6% 감소

이런 흐름을 코로나19가 뒤바꿨다. 국립암센터 암관리정책부 김영애 박사는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활용해 2014~2020년 코로나19 유행에 따른 암 환자 의료이용 행태를 분석했다. 2020년 신규 암 환자는 27만8493명으로 전년보다 5.9% 감소했다. 주요 암 중에는 위·간·대장·폐·유방암 등이 많이 줄었다. 신규 암 환자를 찾아내는 주요 통로가 암 검진(민간검진 포함)이다. 2020년 국가 암 검진율이 49.2%로, 코로나19 때문에 전년보다 14.2% 떨어졌다. 검진율은 2012년 이래 떨어진 적이 없다. 주요 암 중에서는 유방암 감소율이 가장 높다.

「 암센터, 코로나 이후 암 진료 분석
감염 걱정에 검진·진료 기피 늘어
유방암 환자 가장 타격 많이 받아
감염병 때 암진료 구멍, 대책 절실

국립암센터에서 한 여성이 유방촬영기로 유방을 촬영해 암 검진을 하고 있다. [사진 국립암센터]

암 검진의 목적은 조기 발견이다. 조기 발견은 완치 가능성을 크게 높인다. 늦게 발견하면 치료 방법의 선택 폭을 좁히고 5년 생존율을 낮춘다. 30대 여성 A씨는 20대부터 직장 건강검진을 빠트리지 않았다. 코로나19가 발생하자 2020, 2021년 검진을 피했다. 혹시 병원 갔다가 코로나에 감염될 우려가 있어서 병원 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그러다 지난해 연말 가슴에 뭔가 잡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통증도 느꼈다. 급히 병원을 찾았고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다. 림프절에 이미 암세포가 전이된 상태였다. A씨는 “매년 검진받을 때 이상 없었는데 겨우 2년 만에 유방암이 진행된 상태로 발견되다니,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이런 일이 없을 텐데 원망스럽다”고 말한다.

입원 감소율.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코로나19가 암 환자를 잡아내는 것을 막을뿐더러 치료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김영애 박사는 2014~2019년 암 환자의 의료 이용량을 토대로 2020년 진료 건수 예측치를 산출했다. 이 예측보다 실제 입원 진료가 가장 많이 감소한 암은 유방암(24.6%)이다. 췌장·갑상샘·폐·위·자궁경부·대장암 순으로 줄었다. 코로나 1차 대유행 시기(2020년 2~3월), 강력한 거리두기(3~4월), 2차 대유행(7~8월), 3차 대유행(12월) 때 특히 많이 줄었다. 다만 외래진료 이용 건수는 2019년과 큰 차이가 없었다. 60, 70대 고령층보다 30~50대가 더 많이 줄었다. 소득별로는 기초수급자(의료급여 대상자)를 비롯한 저소득층이 입원을 덜 했다.

코로나19 이후 암 현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유방암 검진을 빼놓지 않던 B(63)씨는 2020년 검진을 건너뛰었다. 당시 예약까지 했으나 코로나19가 불같이 번지자 불안한 마음에 취소했다. 불행은 이듬해 찾아왔다. 2021년 7월 오른쪽 가슴에 멍울이 만져졌다. 유방암 3기였다. 암 크기가 6㎝ 넘었고, 림프절 전이도 확인됐다. 코로나19는 B씨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항암제를 투여해 암세포 크기를 줄인 뒤 수술하려 했다. 하지만 항암치료 중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코로나19 치료에다 합병증 치료까지 받느라 두 달째 수술 날짜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는 “유방암을 빨리 발견하면 항암치료를 안 받고 수술만으로도 완치가 가능하다는데 그걸 놓쳤다. 지금도 한시가 급한데 수술까지 연기돼 절망감이 든다”고 병원 관계자에게 한탄했다고 한다.

유방암은 ‘엄마·아내의 암’

공교롭게도 왜 유방암이 코로나19의 타깃이 됐을까. 유방암은 ‘엄마의 암’ ‘아내의 암’으로 불린다. A씨는 어린 자녀와 남편을 챙겨야 한다. 만약 검진과 치료 과정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되면 돌봄과 양육이 힘들어진다. 김영애 박사는 “유방암은 40, 50대 발병률이 높다. 이들은 아이 양육 책임을 떠안고 있고, 코로나19 이후에는 아이들이 등교하지 않아 돌봄 책임이 더 커졌다”며 “그런 마당에 본인이 코로나19에 걸리면 가족이 타격을 받는다고 판단해 병원 이용 자체를 안 한다. 검진과 진료를 미루다 보면 결국 피해가 커지게 된다”고 말했다.

유방암은 여성 암 발생 1위이다. 발병 연령이 점점 젊어지고 있다. 그런 마당에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아 발병률이 더 올라가고 치료가 어려워지는 상황에 부닥치게 됐다. 2020년 유방암 검진율은 58.5%다. 영국(74.9%, 2018년), 미국(71.6%, 2015년)보다 낮다. 세계보건기구(WHO) 자료를 보면 2020년 주요 국가의 암 치료 서비스가 중단된 비율이 44%, 2021년 32%인데, 이에 비하면 한국이 그나마 상대적으로 나아 보이긴 하다. 김영애 박사는 “앞으로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이 발생할 경우 암 같은 중증질환 관리에 허점이 생기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 암 진단 후 지역에서 첫 진료를 받는 비율이 올랐다. 영남·강원·제주 등이 그랬다. 수도권이 코로나19 위험이 높은 데다 이동과 간병 중 감염될 위험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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