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방송, 중계야 선동이야?..'김보름 마녀사냥'을 기억하라 [성백유가 고발한다]

성백유 입력 2022. 2. 19. 00:02 수정 2022. 2. 21.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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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선수를 뒤로 하고 1500m 결승선으로 들어오는 최민정 선수. 그래픽=김현서

지난 4일 개막한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이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16일 쇼트트랙 마지막 날 최민정이 여자 1500m에서 금메달, 남자 5000m 계주에서 은메달을 추가하며 대미를 장식했다. 빙상을 제외한 종목에서 아직 메달이 없다는 건 아쉽지만 목표로 했던 금메달 2개(쇼트트랙은 1개) 달성에는 성공했다.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 최강 한국 쇼트트랙은 대회 초반 불안한 출발을 했다. 첫날 혼성 계주와 여자 500m에서 잇따라 넘어져 탈락했고, 남자 1000m에 출전한 황대헌과 이준서는 실격되면서 방송이 들썩거렸다. 그러나 이후 황대헌이 남자 15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최민정은 여자 3000m 계주와 1000m에서 각각 은메달을 따냈고, 최종일 금메달로 확실한 마무리까지 했다. 쇼트트랙은 지구력과 순발력에 기술까지 필요한 종목인데 강한 훈련을 마다치 않은 한국 선수들의 실력은 여전히 선두권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초반부터 이런 실력을 인정받지는 못했다. 대회 초반 한동안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일부 스포츠팬은 SNS에 ‘(내부 갈등과 각종 추문으로 얼룩진) 쇼트트랙은 차라리 없애는 것이 낫다’며 흥분했다. 역대 올림픽에서 한국이 늘 최고의 성적을 거둔 이 종목을 우리 스스로 없애자고 주장하는 게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이는 올림픽을 중계하는 국내 지상파 방송들의 무책임한 태도와도 관련돼 있다.


동시 중계하며 '자극적 방송' 경쟁


보편적 시청권을 주장하는 방송 3사는 "전파 낭비"라는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올림픽 인기 종목은 늘 동시에 중계한다. 같은 화면을 놓고 치열한 시청률 경쟁을 벌이다 보니 올림픽 빙상 중계는 유독 허점을 많이 노출한다. 1년에 144개 경기를 중계하는 프로야구와 달리 4년에 한 번 마이크를 잡으니 캐스터는 물론이요, 해설가까지 전문성이 떨어진다. 냉정하고 정확한 중계를 찾기 힘들다. 아나운서와 해설가들이 감정을 섞어 이야기하고, 고함을 질러댄다. 심지어는 일방적 추측만으로 심판을 비판한다. 이쯤 되면 선동과 다를 게 없다.
공교롭게도 이번 올림픽 쇼트트랙 마지막 경기가 벌어진 16일 서울중앙지법은 김보름(강원도청) 선수가 노선영 선수를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서 김보름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김보름이 2억원을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노선영)는 원고(김보름)에게 3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또 “피고(노선영)가 2017년 11∼12월 후배인 원고(김보름)에게 랩타임을 빨리 탄다고 폭언·욕설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게 2018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온 국민이 김보름 마녀사냥에 나섰던 사건의 결말이다.

이른바 ‘노선영 왕따 사건’은 사실 의도된 방송 사고나 마찬가지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팀추월 경기에 출전한 노선영·김보름·박지우는 준준결승에서 7위로 골인했다. 세 선수 중 가장 마지막 주자의 기록으로 순위를 가리는 팀추월 종목에서 두 바퀴를 남기고 김보름과 박지우가 선배인 노선영이 혼자 뒤처진 걸 모른 채 질주한 것이다. 당시 한 방송 중계진은 김보름과 박지우가 일부러 노선영을 '왕따'를 시키는 바람에 한국 팀이 탈락한 것처럼 이야기했다. 심지어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선 “팀추월 경기는 빙상연맹이 버리는 경기였다”는 노선영의 일방적 주장을 확인된 사실인양 내보내기도 했다. 그 뒤 김보름에 대한 마녀사냥이 시작됐다. ‘김보름, 박지우 선수의 자격 박탈과 적폐 빙상연맹의 엄중 처벌을 청원합니다’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무려 61만 명이 동의했다.

평창올림픽 팀추월에서 '노선영 왕따'로 비난받은 김보름이 매스스타트에서 은메달을 딴 뒤 사죄의 큰절을 했다. [ 연합뉴스]

일방적 주장에 불과했지만 빙상계에선 시시비비를 정확히 가리는 이가 없었다. 문제를 야기했던 방송사는 그냥 어물쩍 넘어갔다. 대한빙상경기연맹 역시 집행부 사퇴로 정확한 조사결과를 내지 못했다. 삼성이 빙상연맹 후원을 중단하고, 연맹이 관리단체로 2년여를 지낸 것도 엄밀히 따져보면 이런 지상파 선동 탓에 벌어진 자멸이었다.


안현수를 향한 욕은 정당한가


2014 소치동계올림픽 당시 뜨거운 감자였던 안현수(러시아 이름 빅토르 안)의 러시아 귀화 문제도 한번 짚어 보자. 안현수가 러시아로 간 것은 파벌싸움 탓이라는 주장에 당시 대통령의 ‘엄중 조사’ 지시까지 떨어졌다. 사실 확인 결과 안현수의 러시아행은 소속팀이던 성남시청팀이 해체돼 어쩔 수 없는 행보였던 게 확인됐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안현수를 파벌 다툼 끝에 한국을 떠난 선수로 기억한다.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막 전 중국 쇼트트랙 대표팀 훈련 모습을 지켜보는 안현수 중국 코치(왼쪽)와 김진태 감독. 김경록 기자
안현수가 타의에 의해 러시아로 간 건 맞다. 2014 소치올림픽이 끝난 뒤 그는 한 연예 프로그램에 출연해 “국내에서는 뛸 곳이 없어서 러시아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난 뒤에는 국내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자 중국으로 건너갔다. 중국은 연봉 5억원이 넘는 거액을 주는 것으로 알려진다. 속사정은 모른 채 중국에 갔다는 사실만으로 일부 한국 팬은 ‘매국노’라며 손가락질을 한다. 심지어 이적 행위라는 주장까지 한다. 방송을 포함한 언론도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비난을 부추긴다.

그렇다면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박항서 감독이나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신태용 감독에게는 왜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지 않나.


새로운 체육 정책이 필요하다


최근 인구가 줄면서 선수 감소 현상도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몇몇 종목을 제외하고는 등록 선수 수가 계속 줄고 있다. 경기력 부진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도쿄올림픽 결과가 이를 잘 말해준다. 여자배구의 극적인 4강 진입 덕에 여론이 잠잠해졌지만 2020 도쿄올림픽에서 한국은 금메달 6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0개로 기대에 못 미치는 최종 성적 16위에 그쳤다. 양궁의 금메달 4개를 제외한다면 다른 종목에서 거둔 성적은 그야말로 미미하다. 성적과 상관없이 선수들의 노력은 칭송받아야 하지만 부진한 성적에 대한 따끔한 지적도 분명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감성에 젖어 칭찬 일색으로 흘렀다.

1000만 도시 서울에 빙상경기장이 10개가 채 되지 않는다. 아이스하키, 피겨, 쇼트트랙 등은 실내링크가 꼭 필요한 스포츠다. 알고 보면 빙상인들의 다툼 뒤에 아이스링크 대관 경쟁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부실한 인프라가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는 셈이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인 우리와 달리 1988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캐나다 캘거리는 100만 도시에 실내링크가 50개도 넘는다. 캐나다가 동계스포츠 최강국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우리는 평창올림픽 때 만든 시설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21만 명의 소도시 강릉에 실내링크를 몰아 지은 탓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015년 평창과 도쿄에 올림픽 시설 분산개최를 승인하는 ‘어젠다 2020’을 발표했다. 그러나 당시 청와대가 “분산개최는 없다”고 서둘러 발표하는 바람에 서울과 인천에 각각 아이스하키·컬링 경기장을 지으려던 문체부는 뜻을 접었다.
물리적 인프라 부족에다 최근엔 심리적 압박도 더해졌다. ‘엘리트 체육은 필요 없다’며 선수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이들마저 등장했다. 엘리트 체육이 필요없다면 학교 체육이라도 활성화해야 맞지만 거꾸로 학교 체육이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럼에도 학교 체육을 정상화하자는 이가 없다. 중·고교 체육 시간은 실종되다시피 했다.

내달 대통령 선거에 여야 대선 후보들은 여러 공약을 내놓았다. 누가 되더라도 임기 내에 2024 파리올림픽과 2026 밀라노·코르티나 담페초 동계올림픽을 치러진다. 그때는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성백유 전 대한빙상경기연맹 관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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