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가 '왕비'로 불리길 바라네" 영국 뒤흔든 여왕의 한마디

전수진 2022. 2. 7.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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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왕세자의 부인, 카밀라 파커 볼스. 현재 공식 직함은 콘월 공작부인이다. 사진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하러 가는 모습. AFP=연합뉴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한마디로 왕실이 술렁이고 있다. 지난 6일(현지시간) 재위 70주년인 플래티넘 주빌레를 맞은 여왕은 최근 맏아들 찰스 왕세자의 부인 콘월 공작부인, 혼전 이름 카밀라 파커 볼스에 대해 “찰스가 왕이 된다면 카밀라가 ‘왕비’라는 칭호로 불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왕의 부인이니 왕비라 불리는 게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BBC부터 미국 워싱턴포스트(WP)까지 6일 분석기사부터 칼럼까지 다양한 콘텐트를 쏟아내고 있는 까닭이다.

사연은 찰스 왕세자의 첫 부인, 비운의 왕세자비 다이애너(1961~1997)와도 관련이 깊다. 찰스 왕세자는 다이애너 비와 이혼 전이었던 1994년, “카밀라와 혼외 관계를 갖고 있다”고 인정했다. “다이애너와의 결혼이 돌이킬 수 없을(irretrievably) 깨져버린 뒤에 관계를 시작했다”고 부연했지만 세간의 분노는 카밀라에 쏠렸다. 카밀라는 다이애너의 결혼을 깬 악녀로 비난받았다. 다이애너 왕세자비 역시 BBC와 인터뷰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내 결혼생활엔 항상 (카밀라까지) 세 명이 있었고 그래서 좀 복잡했다(crowded)”고 언급한 적이 있다.

1981년 7월 29일 결혼식 후 런던 버킹엄궁 발코니에서 키스하고 있는 다이애나와 찰스. AP=연합뉴스


엘리자베스 2세가 사용한 ‘왕비(Queen Consort)’는 국왕의 배우자로서 왕실을 대표하는 여성이다. 조선시대로 치면 중전마마, 국모(國母)인 셈. BBC는 “카밀라와 찰스 왕세자가 결혼할 당시 ‘왕비’라는 직함까지는 허락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왕실에 있었다”며 “카밀라에 대해 허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공식 직함은 ‘왕세자비(Princess Consort)’였다”고 보도했다. 여론은 물론,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너의 두 아들,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자를 배려한 분위기이기도 했다.

무엇이 엘리자베스 2세의 마음을 바꿨을까. 지난해 여왕의 배우자인 필립공이 유명을 달리한 것이 영향을 미쳤으리란 분석이 나온다. 공식 직함을 갖고 있는 배우자를 곁에 두고 있는 것이 국왕에게 큰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엘리자베스 2세가 남편의 부재로 인해 절감하게 됐으리라는 논리다. 왕실 역사 전문가인 로버트 레이시는 BBC에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 왕실을 ‘기업(the Firm)’이라고 부른다”며 “기업을 대표하는 이의 배우자에게 적절한 칭호를 찾아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이라는 명칭은 엘리자베스 2세가 왕실 멤버들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단순한 가족 이상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엘리자베스 2세와 함께 이동 중인 콘월 공작부인. 2013년 사진이다. AP=연합뉴스


‘왕비’ 직함에 대해 공식 반응을 내놓은 건 카밀라 본인이 아닌 찰스 왕세자다. 그는 6일, 플래티넘 주빌레 축하연에서 “어머니께 감사의 뜻을 전한다”며 “그 칭호가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저희 부부 모두 숙지하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둘이 웨딩 마치를 올린 건 2005년이다. 다이애너가 파파라치에 쫓기던 중 불의의 사고로 프랑스 파리에서 1997년 급서한 뒤 수 년을 기다려 왕실 예법에선 간소한 예식을 치렀다. 영국뿐 아니라 세계의 여론을 의식해서다.

카밀라에 대해선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이 많다. ‘세기의 연인’이라 불린 다이애너에 비해 외모를 비하하는 맥락의 비난도 많이 받는다. 그러나 카밀라는 찰스 왕세자와 굳건한 관계를 유지해오며 왕실의 일원으로 조용히 자리 잡았다. BBC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카밀라는 이제 왕실의 정식 일원으로 공히 인정받았다”고 전했다. 소탈한 이미지도 어필하고 있다. 2020년 BBC와 이례적 단독 인터뷰에서 카밀라는 “(팬데믹 상황에서) 밖에 못 나가는 건 답답하고 손주들도 보고 싶지만, 솔직히 왕실 행사 예복을 안 입어도 되는 건 너무 좋다”며 “청바지 입고 지내는 게 완전 편하다”고 말했다.

2005년 비교적 약소한 결혼식을 올린 찰스 왕세자와 카밀라. AP=연합뉴스


카밀라와 찰스의 관계는 다이애너와의 약혼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둘은 호감을 느꼈으나 왕실 내의 파워 게임 및 둘 사이의 타이밍이 잘 맞지 않았고, 결국 카밀라가 먼저 다른 이와 결혼했다. 일각에선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자신을 억누르는 것이 미덕인 분위기에서 성장한 찰스 왕세자가 카밀라에게 매력을 느꼈다는 해석도 나온다. 관심사가 비슷하고 대화가 통했기 때문이다. 영국 왕실을 배경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에선 카밀라가 이런 대사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다이애너 생전, 찰스 왕세자와 관계를 끊어야겠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우리 관계를 공식화하면 세간에선 다이애너는 피해자가 되고, 그녀처럼 예쁘지도 젊지도 않은 나는 짓밟고 말겠지. 영원한 왕비는 다이애너이고 나는 그저 바람난 애인일 뿐인거야.”
그러나 올해 94세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70년 이상 이어진 재위를 끝내고 나면, 왕비가 되는 건 다이애너가 아니라 카밀라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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