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에 이미 시작되는 새 생명들 [자연과 가까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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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아 기자]
캐나다 밴쿠버의 이번 겨울은 평소보다 더 추웠다. 평소에도 겨울은 내가 가장 반기지 않는 계절인데, 영하 15도를 찍고 나니 더욱 움츠러들고 즐겁지 않은 기분이었다. 사실, 농사를 짓거나 마당을 가꾸다보면 겨울철에도 은근히 손 갈 데가 많은데, 나는 정말 움츠리고 한 달 간을 보낸 것 같다.
▲ 어느 날 보니 꽃이 잔뜩 달려 나를 깜짝 놀라게 한 고추 |
ⓒ 김정아 |
작년에 고추가 풍작이었길래 그대로 뽑아버리기 아까워서 화분에 옮겨 심고 온실에 넣어뒀다. 그리고 그중 한 그루만 대충 가지치기를 한 후 집안 창가에 두었는데, 새로 잎이 나더니 꽃까지 조롱조롱 맺히는 게 아닌가? 일조량이 적고 온도도 적합하지 않으니 실제로 고추가 달리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살아서 생명력을 보여주는 게 너무나 신기하고 고맙다.
▲ 삽목한 작은 줄기에서 끊임없이 꽃을 피운다 |
ⓒ 김정아 |
그리고 이 이름 모를 꽃은, 걸어놓는 꽃바구니에 있던 것인데, 겨울 들어갈 무렵 부러진 줄기를 흙에 꽂아 들여놓았더니, 이렇게 뿌리를 내리고는 겨울 내내 꽃을 피운다. 줄기 끝에서 꽃이 하나 피고 지면, 새로 그 옆에 다시 봉오리가 맺히고, 그렇게 반복하며 꽃을 선사한다. 생명의 힘이 놀랍다.
▲ 동백꽃 |
ⓒ 김정아 |
동백은 원래 겨울에 피는 꽃이라 해서 더 마음이 끌려서 지난여름에 구매했는데, 드디어 첫 꽃이 피었으니 자리를 잘 잡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 있는 다른 꽃망울들도 필 준비가 된 모습이어서 더욱 마음이 설레었다.
▲ 우리 집 첫 설강화(snowdrop) |
ⓒ 김정아 |
▲ 추운 겨울 싹 죽었던 돌나물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
ⓒ 김정아 |
흙 속의 생명체가 이렇게 우리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니, 우리도 몸이 근질근질할 수밖에 없다. 움츠리고 집안에 있던 시간이 너무 길었던 탓이리라.
남편은 급기야 거름흙을 주문했다. 겨우내 얼었다가 살짝 주저앉은 흙들을 덮어주고, 텃밭 흙도 북돋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4 입방 야드의 흙이 한 트럭 도착하자, 우리 집 현관 앞은 흙으로 덮였고 우리는 결국 팔을 걷어붙이고 나가서 마당과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른 가지들을 잘라내고, 여기저기 남아서 뒹구는 낙엽들도 거두고, 할 일은 넘쳐났다.
▲ 머위 뿌리가 드러나있었고, 그 위로 봉오리가 보였다. |
ⓒ 김정아 |
작년에 얻어다가 키우기 시작한 머위는 그리 잘 자라지 않아서 사실상 제대로 먹어보지도 못했는데, 그게 이렇게 뿌리를 뻗치면서 겨울 동안 씩씩하게 자리를 잡은 것일까? 얼른 사진을 찍어서 밴쿠버 텃밭 동호회에 질문을 올렸더니, 역시나, 머위 꽃봉오리라는 답이 순식간에 올라왔다. 역시 다들 척 보면 아는구나! 이 머위 꽃을 데쳐 초고추장 찍어 먹으면 맛있다는 덧글까지 달렸다. 머위꽃은 머위와 전혀 다르게 생겨서 참으로 신기했다.
▲ 작은 흙의 공간에 예쁜 꽃들을 심을 것이다 |
ⓒ 김정아 |
공을 들여 치우니 길이 말끔해졌다. 조그맣게 흙이 보이는 저곳에는 꽃을 심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도 즐기고, 산책하며 지나가는 사람들도 즐길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물론 맞은편 집의 동의를 얻고 하는 일이다.
뒷마당과 텃밭에도 할 일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우리는 오늘 일단 여기서 후퇴를 했다. 아직 해가 짧은 밴쿠버 지역은 이러고 나서 바로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나는 늘 봄을 좋아하고, 여름을 더 좋아하지만, 가을이 있기에 땅이 비옥해 질 수 있으니 감사하고, 또한 추운 겨울을 지나야 만 다시 힘을 내서 자라는 생명들이 있으니 그 어느 것에도 투덜댈 수가 없다. 자연은 늘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우리네 인생도 이렇게 추운 시기를 잘 활용하고 준비해서, 모퉁이 돌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봄을 멋지게 맞이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으리라.
벌써 입춘도 지났고, 이제 한 달만 있으면 수선화와 크로커스가 가득하게 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튤립과 각종 꽃들이 줄줄이 이어질 생각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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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도 같은 내용이 실립니다. (https://brunch.co.kr/@lachou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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