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 에베레스트마저 점령당했다, 조용히 사람 공격하는 그놈

'20세기 최고의 발명품'. 우리 삶의 모든 것과 연결된 플라스틱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편리함을 무기로 일상에 파고든 발명품이 채 100년도 안 돼 부메랑처럼 돌아오고 있다.
눈에 보일까 말까 한 미세플라스틱(microplastics)이 대표적이다. 5mm 이하 플라스틱 입자인 미세플라스틱은 전 세계 곳곳을 조용히 점령한 데 이어 사람의 몸까지 파고든다.
컵, 그릇, 카드, 옷, 장난감…. 온종일 수많은 플라스틱이 사용된다. 거기선 미세플라스틱이 끊임없이 나온다. 화장품 등에 쓰려고 일부러 작게 만든 1차 미세플라스틱부터 버려진 플라스틱이 이리저리 떠돌면서 쪼개진 2차 미세플라스틱까지 다양하다.
강동구 빗물에서 '플라스틱' 확인

이달 초 환경위생기업 세스코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 빗물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확인됐다. 이른바 '플라스틱 비'가 우리 동네에 내리는 셈이다. 연구팀이 지난해 6~7월 서울 강동구 빗물을 받았더니 100㎖당 미세플라스틱이 40~95개에 달했다. 앞서 호주 캔버라대가 발표한 시드니 남서부 빗물 분석에선 100㎖당 평균 2개였다. 국내 하늘에 훨씬 많은 미세 입자들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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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극지도 플라스틱 점령…'청정지대 없다'
심지어 빙하, 만년설처럼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검출된다. 더는 플라스틱 청정 지대가 없다는 의미다. 2020년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8848m) 꼭대기 주변에서 미세플라스틱이 확인됐다. 눈 표본을 채취했더니 나일론, 아크릴 같은 다양한 성분이 나왔다.
최근엔 더 심각한 사실도 드러났다. 21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그린란드, 남극 대륙 등 극지방에서 나노플라스틱(nanoplastics)이 처음 확인됐다. 일반적인 미세플라스틱보다 더 작은 100㎚ 이하의 초소형 입자다. 종류도 폴리에틸렌(PE), 페트(PET), 폴리프로필렌(PP), 타이어 파편 등으로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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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수만개 이상 섭취…신경독성 가능성도
플라스틱의 가장 큰 무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 흩어진 제품이 수백 년간 썩지 않고 끊임없이 마모되고 나눠진다. 물과 토양, 공기 등을 떠돌다 동물들이 쉽게 섭취한다. 그들을 먹는 인간에게 다시 돌아온다. 바다로 흘러간 미세플라스틱이 물고기, 조개를 거쳐 인간의 소화기에 쌓이는 식이다. 이런 사이클이 무한 반복된다.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다. 미국인이 연간 수만~수십만개의 미세플라스틱을 자연스레 섭취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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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대 건강도 위협…"사용 줄이는 게 답"
해답은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것밖에 없다. 생분해 플라스틱 등 친환경 기술이 개발되고 미세플라스틱 사용 규제도 강화됐지만, 이미 생산된 제품은 돌이킬 수 없다. 몇 세대 뒤 후손의 건강까지 위협한다. 다회용기 등을 쓰면서 플라스틱 생산량을 줄이는 게 미래의 플라스틱 부스러기를 없애는 확실한 방법이다.
한국환경연구원 박정규 선임연구위원팀은 '미세플라스틱의 건강 피해 저감 연구' 보고서를 통해 "미세플라스틱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정책이 수립돼야 한다"면서 "미세섬유, 양식용 플라스틱 부표 등의 관리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이미 배출된 1차 미세플라스틱을 회수하거나 사전 저감하는 데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허승은 녹색연합 녹색사회팀장은 "해변에서 손으로 모래를 쥐었다 놓으면 작은 미세플라스틱이 보일 만큼 흔해졌다"라면서 "단순히 플라스틱 재활용을 늘리기보단 일회용 제품 생산, 사용량을 줄여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시민 개개인의 실천도 중요하지만 정부도 사전 예방, 사후 처리를 포함한 체계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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