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엔지니어링 수상한 속내..현대건설 개미는 어떡하나 [뉴스원샷]

함종선 2022. 1. 30.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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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엔지니어링 사옥. 오른쪽은 현대건설 본사. 네이버지도 캡처

다음 달 주식시장(코스피)에 상장할 예정이던 현대엔지니어링이 지난 28일 공모 철회 신고서를 금융감독원에 제출하고 상장 일정을 연기했습니다.

수요예측(기관투자자들이 공모주 청약에 앞서 매입희망 수량과 가격을 제시하는 것)의 결과가 회사 측 기대에 크게 못 미친 게 상장을 연기한 이유입니다. 수요예측 최종 경쟁률이 50대 1을 밑돌아 최근 상장한 LG에너지솔루션(경쟁률 2023대1)은 물론 지난해 상장한 회사 중 가장 경쟁률이 낮았던 크래프톤(234대 1)보다도 한참 낮았습니다.


수요예측 흥행 실패로 미뤄진 건설업계 대장주의 꿈

기업 공개 과정을 통해 총 1600만주를 주식시장에 팔려던 현대엔지니어링은 1주당 공모 희망가를 5만7900원~7만5700원으로 잡았습니다. 공모 희망가 중 가장 낮은 가격인 5만7900으로 공모가가 결정돼도 현대엔지니어링의 시가총액은 4조6300억원이 됩니다. 지난 27일 종가기준 현대건설의 시가총액이 4조4600억원이었음을 고려할 때, 자회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의 몸값이 모회사보다 높게 되는 셈이었고 건설업계 상장종목 중 시가총액이 가장 큰 '대장주'로의 등극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2월 15일 코스피 상장 예정이었으나 공모 철회로 상장일정이 연기됐다. 신세빈. 앤츠랩

하지만 수요예측 흥행 실패로 이런 상황은 현실화되지 않았습니다. 흥행에 실패한 원인 중 가장 큰 건 공모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구주 매출 비율입니다. 상장으로 조달된 자금이 회사의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자원으로 활용되기보다 기존 대주주 몫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회사 미래가치에 부정적이라는 판단이 많았던 것입니다. 실제 앞서 공모를 한 LG에너지솔루션의 구주 매출 비율은 20%인데 현대엔지니어링은 75%나 됩니다.

현대엔지니어링의 최대주주인 현대건설(지분율 36.7%)은 주식을 한 주도 팔지 않지만 2대 주주인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은 자신이 보유한 주식 중 60%를 팔 예정이었습니다. 정회장은 공모 희망가를 기준으로 할 때 이번 상장으로 3093억~4044억원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건설업계에서는 현대건설의 노골적인 '밀어주기'로 성장한 현대엔지니어링이 현대건설보다 시가총액이 높게 형성되는 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라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2001년 현대건설의 설계 및 감리사업부문이 분리돼 설립된 회사입니다. 이 회사는 2014년 4월 현대엠코와 합병한 이후부터 퀀텀 점프를 했습니다. 2010년대 초반 1~2조 원대였던 매출액은 5~6조 원대로 늘었습니다. 현대엠코의 최대주주(지분 25.06%)였던 정의선 회장은 이 합병으로 현대엔지니어링의 지분 11.7%를 확보했습니다. 정 회장은 그 이전에는 현대엔지니어링 주식이 없었습니다.


현대엠코 합병 이후 '힐스테이트' 브랜드로 영업

현대엔지니어링은 현대엠코와 합병한 후부터 '힐스테이트' 브랜드를 달고 활발하게 주택사업을 했습니다. 기존에 현대엠코가 쓰던 '엠코타운'이라는 브랜드는 버렸습니다. 힐스테이트 브랜드를 쓰는 대가로 현대엔지니어링은 현대건설에 관련 매출의 0.4%를 사용료로 지불합니다. 지난해 브랜드 사용 비용이 60억원이었으니 1조5000억원이 '힐스테이트'로 올린 매출액이란 계산이 나옵니다.

지난해 7월 입주를 시작한 서울 강남구 디에이치자이개포 단지. 강남의 인기 브랜드 아파트인데, 엘리베이터 소음을 호소하는 입주민이 많다. 함종선 기자


현대엔지니어링은 현대건설과 짝을 이뤄 돈이 되는 알짜 사업도 많이 챙겼습니다. 지난해 7월 입주한 서울 강남구 일원동 '디에이치자이개포'단지의 경우 현대엔지니어링은 공사도 하지 않고 투자지분 27%에 대한 수익을 챙겼고, 현대자동차의 신사옥을 짓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글로벌 비즈니스센터 건립 프로젝트에도 현대건설과 함께 참여(현대건설 70%,현대엔지니어링 30%)하고 있습니다.


현대건설 몫인 이란 프로젝트를 왜 현대엔지니어링이

현대건설의 최대 경쟁력인 해외건설 분야에서도 현대건설의 밀어주기는 두드러집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2017년 이란에서 3조8000억원 규모의 사우스파 확장공사 계약을 수주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당시 현대엔지니어링은 2005년 현대건설이 준공한 이란 사우스파 4·5단계 가스처리시설 공사 이후 13년 만에 '기회의 땅'인 이란 재진출에 성공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습니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시공한 투르크메니스탄 에탄크래커 및 PE/PP 생산시설. 현대엔지니어링

2005년 이란 사우스파로 출장을 가 현대건설 임직원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기사를 쓴 기자 입장에서 적잖이 당황스러웠습니다. 당시 현대건설 임직원들은 "62도 이란 황무지에서 대역사를 완수했다"며 "발주처에서 현대건설을 믿고 있고 후속 공사도 꼭 현대건설이 해달라고 한다"고 강조했는데, 13년이 지나 후속 공사를 현대건설이 아닌 현대엔지니어링이 수주했기 때문입니다.


현대엔지니어링으로 이어진 현대엠코의 고배당 전통

현대엠코는 현대엔지니어링에 흡수합병되면서 해산됐지만, 현대엠코의 두드러진 고배당 전통은 현대엔지니어링으로 고스란히 이어졌습니다. 현대엠코는 2010년 당기순이익(673억원)의 74%인 500억원을 현금 배당했습니다. 당시 상장 건설업체들의 평균 배당이 20%를 밑도는 것을 고려할 때 매우 높은 것입니다. 2009년에는 당기순이익(447억원)보다 많은 돈을 배당에 썼습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신성장동력으로 에너지 분야를 주목하고 있다. 김창학 대표이사(오른쪽)와 맥쿼리GIG 비닛 모한 EPC총괄대표가 지난해 말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 공동개발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연합뉴스


현대엔지니어링의 경우 합병되기 바로 직전 해인 2013년에는 현금배당을 실시하지 않았지만 2014년에는 주당 2만3000원을 현금 배당했고, 이후 매년 주당 1만2000을 현금 배당하고 있습니다. 주당 1만2000원 배당일 경우 정의선 회장의 배당금은 128억원입니다.

힐스테이트 브랜드 사용이 '신의 한 수'가 된 현대엔지니어링은 요즘 현대건설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디 에이치'까지 사용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현대건설은 상장기업입니다. 현대건설이 챙길 수 있는 이익을 현대엔지니어링이 대신 챙긴 것이라면 현대건설의 수많은 개인 주주들의 손익 계산은 어떻게 될까요. 현대건설의 현대엔지니어링 밀어주기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해집니다.

함종선 기자 ham.jongs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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