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분단의 역사와 평화 공존'.. 동해 최북단 고성 '대진항'

라영철 2022. 1. 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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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의 땅 고성 DMZ, 금강산 구선봉·해금강 지척
저도어장 대표 특산품 대문어와 자연산 수산물 풍부
'대진 등대' 빈 관사, 지역 작가 전시 공간 활용 계획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대진리 해수욕장

[아시아경제 라영철 기자] 우리나라 동해안 북쪽 끝에 위치한 강원도 고성은 물이 차고 맑기로 유명하다.

동해안을 따라 펼쳐지는 해변은 고성의 명품으로 꼽힌다. 북방 어로한계선인 저도 어장에서 잡아 온 문어로도 유명하다.

누구와도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나 홀로 휴식을 취하기에 이만한 곳도 없을 만큼 고성에는 자연이 전하는 감동스런 이야기가 숨어 있다.

6.25 전쟁 이후 남북으로 나뉘어져 분단 역사의 아픔도 대변하지만, 평화의 상징성도 지닌다.

서울을 출발해 쉬엄쉬엄 달려 4시간여 만에 도착한 곳은 강원도 고성 대진항이다.

강원 고성군 대진항

싸늘한 겨울 바닷바람을 이겨내려는 듯 나란히 묶여 있는 작은 어선들이 물결에 맞춰 쉴 새 없이 출렁인다.

인적이 드문 을씨년스런 작은 어촌 풍경이지만, 물 위를 이리저리 헤엄치는 철새들을 보면 정감이 간다.

때마침 찾아 들어간 음식점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아마추어 화가(畵家)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달홀예술인협동조합' 이사장직을 맡고 있는 문미정(57) 화가는 30여 년째 고성에서 살고 있다.

취미로 서양화를 배워 지금은 매년 동호회원들과 작품 전시회를 열만큼 열정이다.

문미정 화가(달홀예술인협동조합 이사장)가 호랑이 민화를 그리고 있다.

그는 늘 작품 활동을 위한 아이디어를 주변의 아름다운 해변과 산에서 얻는다고 했다. 그래서 고성이 더 좋다고 한다.

요즘 문 화가의 최대 관심사는 지역 작가들에게 작품 전시 공간을 마련해 주는 일이다.

식당 2층, 그의 작업실로 올라갔다. 비스듬히 세워진 민화와 풍경화 작품들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다양한 표정과 무늬의 호랑이 그림이 임인년 새해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거북이 몸통과 용머리를 합친 상상의 동물 그림은 매우 이색적이다.

산과 물, 바위가 어우러진 자연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은 그림 역시 시선을 오래 머물게 한다.

문미정 화가 작품

몇 점의 작품을 소개한 그가 다시 장소를 옮겨 안내한 곳은 대진 등대다.

등탑이 팔각형이고, 불빛은 12초마다 한 번씩 깜빡이면서 약 37km 떨어진 해상까지 비춘다고 한다.

등대는 바다 위의 길잡이로 알려졌지만, 대진 등대는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함께 머금고 있다.

바다와 산이 만나는 이곳 등대 앞에서 바라본 아늑한 대진항구가 고스란히 품 안에 들어온다.

바닷바람이 시리지만, 풍부한 청량감이 느껴진다. 이 정도면 여행객의 발길을 붙잡을 만한 명소임에는 틀림없다.

비로소 등대 옆 빈 관사를 지역 작가들의 작품 전시 공간과 관광객 체험 공간으로 활용하려는 그의 구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대진 등대

문 이사장은 “고성군 주민, 특히 현내면의 문화적 욕구를 가까이서 충족시킬 장소가 부족하다”면서 “지역 예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전시관, 작업공간, 그리고 관광객들에게 문화 체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꾸미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고성군과 해양수산부에 세부 계획들을 내고 추진을 협의 중이다.

문 이사장의 ‘고성 자랑’은 '대문어 자랑'으로 이어졌다.

고성 대문어는 동해안의 중요한 어종이다. 매년 4월부터 12월까지 조업할 수 있고 3월까지는 휴식기를 갖는다고 한다.

다른 어류와 수산물도 잡히지만, 문어가 가장 많이 잡힌다고 강조한다. 무게 50kg이 넘는 ‘대왕문어’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대진항 어판장

매년 5월 저도어장 대문어 축제가 대진항에서 열린다. 대표 특산품인 대문어와 자연산 수산물을 맛볼 수 있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후 70년 가까이 고요 속에 파묻혀 있던 금단의 땅인 고성 DMZ도 빼놓지 않는다.

DMZ와 남방한계선이 만나는 전망대에 서면 금강산 구선봉과 해금강이 지척이다. 맑은 날에는 천하절경의 금강산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고성군은 백두대간의 남한 쪽 북단이다. 대표적인 등산로는 마산봉~신선봉~미시령 코스다.

마산(馬山 1052m)에서는 날씨가 좋으면 진부령에서 향로봉(1296m) 너머 비로봉을 비롯한 금강산 연봉이 어슴푸레하게 보인다고 한다.

대진항 앞바다 철책선

문 이사장은 "여기가 아무래도 군사 지역이다 보니 파도 타는(서핑) 군인 모습을 건빵으로 캐릭터화해서 관광 상품화 할 생각"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대진항 인근 앞바다를 지나면서 겨울 서핑을 즐기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파도를 타고 바다 위를 가로질러보면 서핑 매력에 흠뻑 빠질 것이란 상상을 해본다.

또 수중 지형이 천차만별 이어서 국내 다이버들에게 소문난 곳이다. 비치 다이빙, 보트 다이빙, 방파제 다이빙을 즐길 수 있다.

고성은 암반 지대가 풍부하고 물이 깨끗해 시야가 좋고, 수중 기암절벽과 해초, 산호, 문어, 방어 떼 등 다양한 어류가 나는 곳이다.

대진 등대에서 바라본 대진항 전경

해풍을 맞으며 해안에 줄지어 자리 잡은 수십 년 된 소나무 숲길에선 나무가 간직한 옛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사계절 울긋불긋 옷을 갈아입는 고성의 절경, 시원한 바닷바람 내음, 멀리 항해하고 싶은 항구의 뱃고동 소리.

코로나19 팬데믹을 피해 설밑 동해 최북단 고성에서 느껴보는 국토 여행의 즐거움에서 더 행복한 한 해를 기대해 본다.

취재·사진=라영철 기자

강원=라영철 기자 ktvko258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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