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금융업에 중대재해처벌법이 도입된다면

고세욱 2022. 1. 28.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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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세욱 논설위원


27일 오전 투자자들은 증시 개장 시간을 카운트다운하고 있었다. 9시 되자마자 잠깐 오르던 LG에너지솔루션(엔솔)은 곧바로 고꾸라졌다. 기대했던 따상(공모가 2배로 시초가 형성 후 상한가)은커녕 종가는 시초가보다 15% 이상 급락했다. 주식게시판에는 찰나의 환희와 깊은 탄식이 이어졌다. 공모주 사상 최대어로 불린 LG엔솔의 상장 첫날 풍경이다. 같은 시간 LG엔솔과 한 가족 격인 LG화학 종목토론방에는 엔솔의 고공낙하에 고소해하거나 그룹 경영진을 원망하는 글로 도배가 됐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LG엔솔은 LG화학의 배터리사업본부가 2020년 12월 물적분할돼 탄생했다. 물적분할 이후 알짜배기 자회사가 상장되면 모회사의 기업 가치가 깎이며 주가가 떨어지곤 한다. 물적분할 결정 당시 100만원을 오르내리던 LG화학 주가는 어제 61만원으로 떨어져 40%가량 추락했다. 이러니 LG화학 주주들이 경영진과 LG엔솔에 어찌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겠나. 상황이 이러면 물적분할을 자제해야 하거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물적분할은 유상증자와 달리 모회사 지분을 희석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면서 자회사 상장으로 돈도 벌게 된다. 지배 주주가 큰 노력 들이지 않고 영향력을 유지하는 일종의 요술방망이다. 주주보다 경영권과 잇속이 우선이라는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장치다.

1~2년새 상당수 공모주가 물적분할을 통해 시장에 나왔다. 혁신 빅테크라는 카카오의 경우 자회사인 카카오뱅크·페이·게임즈가 지난해 상장된 데 이어 올해 카카오엔터테인먼트·모빌리티가 대기 중이다. 차포 다 떼는 바람에 카카오가 정작 껍데기가 됐다. 현대엔지니어링은 현대건설에서, SSG닷컴은 이마트에서 분할돼 상장을 앞두고 있다. 외국에서는 이해상충으로 인해 이런 일이 거의 없다. 모회사 주주들의 천문학적인 집단소송을 불러올 게 뻔해서다.

2022년 1월은 동학개미들에게 악몽이다. 물적분할 논란으로도 울화가 치밀 판에 상장사들의 모럴해저드가 줄줄이 터져 나왔다. 오스템임플란트 횡령을 시작으로 HDC현대산업개발 아파트 붕괴, 셀트리온 분식회계 의혹, 코스닥 시총 2위 에코프로비엠 내부자 거래 혐의 등이 쏟아졌다. 하나같이 주식회사로는 있어서는 안 될 관리 부실, 편법 경영 등이 원인이었다. 글로벌 시장 영향도 있지만 이달 코스피가 12% 이상 폭락한 것은 상장사들의 신뢰 상실도 한몫한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일시적 사과와 미봉책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은 붕괴 사고 이후 기업 회장직에선 물러나고 지주사 회장은 유지했다. 진정성이 의심되는 부분이다.

독일의 명차 그룹 폭스바겐은 2015년 미국의 대기오염 물질 배출 검사 통과를 위해 기기를 조작하다 들통났다. 변명과 책임 회피에 이어 회장이 마지못해 퇴진했지만 폭스바겐은 320억 유로(약 43조2422억원)가 넘는 벌금을 내야 했고 각국에서 차량 판매 중단이 잇따랐다. 폭스바겐은 지난해 주주 총회에서 당시 마틴 빈터콘 전 회장이 회사와 주주에 끼친 피해 배상을 위해 1000만 유로(약 135억원)를 물도록 했다. 이처럼 주주와 고객에 피해를 끼치면 상응하는 대가를 치른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아니면 소비자들이 행동에 나서게 된다.

오스템임플란트 주주 22명은 지난 26일 회삿돈 2215억원 횡령사고와 관련해 회사를 상대로 집단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상장 직후 스톡옵션 주식을 대량 매도해 ‘먹튀’ 논란을 일으킨 카카오페이 경영진은 주주들의 분노에 사퇴했다. 합법을 가장한 뒤통수 치기인 물적분할에 대해 소송 움직임도 없지 않다. 제도적 방안은 최후의 수단이 될 수 있다. 27일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작업 현장에서 근로자나 시민이 사망할 경우 최고경영자에게 책임을 물도록 했다. 안전에 소홀한 제조업이 주 대상이다. 그런데 안전 문제는 대부분 기업이 원가절감 등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다 화를 부른다. 그런 맥락으로 보면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도 출현하지 말란 법이 없다. 코로나 사태가 한창이던 2020년 약 1000만 주주들은 70조원에 가까운 국내 주식을 사 모으며 기업의 위기 극복에 도움을 줬다. 기업이 고마움을 모르고 사익만 추구하면 정반대 상황도 벌어질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강력한 법이 나올 때 뒤늦게 아우성쳐봐야 소용없다.

고세욱 논설위원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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