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교정의 의미

2022. 1. 28.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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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


최근 개인적으로 큰 이벤트는 치아 교정 장치를 뗀 것이었다. 며칠 전부터 설레서 잠을 설칠 정도였다. 꼬박 2년4개월 동안 입안에 교정 장치를 달고 지내며 3주에 한 번씩 치과에 갔던 시간이 떠올라 울컥하기도 했다. 면접관이 “인생에서 가장 큰 용기를 냈던 경험이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저는 잇몸이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40대 중반의 나이에 멀쩡한 치아를 4개나 뽑고 치아 교정을 했습니다”라고 말할 것 같다. 다행히 당분간 면접 볼 일은 없다.

어느 날 집에서 가까운 치과를 지나다 ‘교정 할인 이벤트’를 한다는 광고 배너가 눈에 들어왔고, 곧바로 그곳으로 자석처럼 끌려 들어갔다. 수년 동안 갖은 핑계로 치과 출입을 안 했던 사람이 그날 바로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교정 치료를 시작하게 됐다. 살다 보니 20년 넘게 망설이던 일을 홀린 듯 순식간에 해치우게 되는 날도 오는 것이었다.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은 날이었던 것 같다. 습관처럼 입을 가리고 웃었는데, 활짝 웃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치아 교정을 통해 의외의 경험도 하게 됐다. 사람들을 만나면 교정기 때문에 어색한 내 입매만 쳐다보는 것 같아 “제가 얼마 전부터 치아 교정을 하고 있어서…”라며 묻지도 않은 고백을 했다. 그러자 다들 자기 경험담을 들려주며 응원해 주는 것이다. “많이 불편하시죠. 저도 서른 넘어서 교정했어요.” “저는 중학교 때 시작해서 고등학교 때까지 5년이나 교정기를 하고 있었어요.” “우리 딸도 했어요. 시간 금방 지나가요” 등 내가 교정을 하지 않았더라면 생략됐을 사적인 이야기들이 오갔다. 뭐야 나만 빼고 다 했잖아, 싶을 만큼 흔한 일이라는 걸 확인하니 부끄러움도 작아졌다.

그 후로는 정기적으로 치과에 가는 날도 기다려졌다. 치아에 철사와 플라스틱과 고무줄을 달고 사는 건 몹시 추레하고 불편했지만 15년 경험의 교정 전문의가 고심하며 이런저런 시도를 해나가는 게 신뢰가 갔다. “지난번보다 0.2㎜ 정도 이동했네요. 이번엔 고무줄을 좀 더 굵은 걸로 걸어볼게요.” “어금니가 많이 기울어 있는데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한 번 세워봅시다.” 교정은 더 좋은 상황을 위해 아주 조금씩의 변화를 추구하며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일이었다. 매일 거울을 봐도 알 수 없는 변화가 분명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뉴스에서 ‘교정’이라는 단어가 들려왔다. 야당의 젊은 당대표가 ‘교정’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었다. 내용을 살펴보니 치아 교정하는 사람으로서 상당히 거슬렸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기 당과 후보를 위해 선거대책위원회에 영입한 인사들을 향해 “당 방향과 다른 이야기를 하면 교정하겠다”라고 하더니, 같은 당 최고위원과 언성을 높이고 사퇴해 버리면서도 “누구도 (상대 위원을) 교정하지 않았다”라고 원망했다. 교정이란 어떤 사람의 더 나은 상태를 위해 시간과 정성을 들여 전문성을 발휘하는 일이라는 걸 모르는 모양이었다. 최소 2년 정도는 노력해야 함에도 지켜보지도 않고 교정이 안 된다며 화를 내다니. 치과에선 어림없는 일이다.

물론 치아가 고르고 건강한 건 복된 일이니, 치아 교정을 안 해봐서 몰랐다면 할 말이 없다. 그렇다면 원고 교정도 있다. 원고 교정 또한 편집자가 저자의 메시지나 스토리를 해치지 않으면서 원고를 보완하고 저자와 독자를 연결하기 위해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사용하는 일이 아니던가. 어떤 일이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시정을 요구할 수는 있겠지만 ‘교정’이란 단어는 여러 번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다.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을 교정하는 일은 교도소에서 이뤄지는 일인데 법원의 판결 없이 타인을 교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지 않은가.

교정은 치과나 출판사에서나 긍정의 의미를 갖는다. 물론 교정을 끝냈다고 완벽한 상태는 아니다. 최선을 추구했을 뿐이다. 치아 교정은 좋은 경험이었다. 자주 활짝 웃어야겠다.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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