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후 판 뒤집힌 과거 대선..무슨 일?

2022. 1. 28.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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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의 정치 읽기]
(사진 오른쪽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안철수 국민의당·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1월 1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재경 대구경북인 신년교례회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제공)
우리나라 대선에서는 다양한 징크스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추석 전후 여론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한 후보는 필패한다’ ‘신당을 급조한 후보는 반드시 진다’ ‘가족 관련 병역 의혹 혹은 부동산 문제가 불거진 후보는 승리하지 못한다’ 등 다양하다.

징크스는 근거를 통한 분석에 의한 결과물이 아니다. 그저 지난 일을 되짚어보면 그렇더라 정도의 ‘막연한 주장’이다. 더구나 이번 대선은 과거 대선에서 볼 수 없던 특징이 많아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다. 또한 지지율 1위를 두고 두 후보 간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두 후보 모두 자신의 장점을 살리는 후보 고유의 이미지 창출에 성공하지 못했다.

이미지 창출에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거대 담론 창출을 통한 슬로건 성격의 공약 창출 실패라는 의미다. 슬로건 공약 중 대표적인 것은 17대 대선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이다. 당시 샐러리맨 신화를 들고나오면서 경제 살리기 적임자라는 이미지를 얻은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는, 자신의 건설 경험을 상징할 수 있는 토목 사업 공약을 대대적으로 내세우며 일자리 창출을 외쳤다.

그런데 이번 두 후보는 모두 이렇다 할 거시적 이미지 창출에 성공하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기에 작은 공약이 쏟아진다. 작은 공약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선에서는 유권자들이 미래 지향적 가치 투표를 하기 때문에 최소한 비전을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를 보여줘야 한다.

어쨌든 이번 대선은 역대에 볼 수 없던 여러 장면이 연출되고 있어 이른바 징크스라고 여겨졌던 사안이 힘을 쓰지 못할 확률이 높다.

역대 대선은 12월에 있었기 때문에 추석 이후 두 달 정도 있다가 대선을 치렀지만, 이번 대선은 3월 초에 있고, 설은 2월 초다. 불과 대선을 한 달여 앞둔 시점에서 민족 최대 명절이 버티고 있다.

과거 대선에서 추석 민심이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아보면, 이번 대선에서 설 민심의 파급력을 추측할 수 있다. 1997년 15대 대선 당시 추석 직전 한국리서치 여론조사를 보면, 김대중 후보 30.3%, 이인제 후보 25.6%, 이회창 후보 19.3%였다. 이 여론조사에서 김대중 후보는 1위를 했는데, 결국 김대중 후보가 당선됐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당시 선거 초반에는 이른바 이회창 대세론이 형성될 정도로 이회창 후보가 50%를 넘는 지지율을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다 추석 이전에 아들 병역 기피 의혹이 터졌다. 여기에 추석 연휴 직전인 1997년 9월 15일 이인제 후보가 출마 선언을 함으로써, 추석 밥상머리 토크의 주인공은 이인제 후보와 병풍(兵風)이 됐다. 이로써 50%를 넘던 이회창 후보 지지율이 이인제 후보보다도 밀리는 상황이 초래됐다. 추석 민심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던 대선이다.

16대 대선은 조금 다르다. 16대 대선 당시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2002년 9월 22일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이회창 후보 31.3%, 정몽준 후보 30.8%, 노무현 후보 16.8%의 지지율을 각각 기록했다. 야당 이회창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1위를 유지했지만 정몽준, 노무현 후보 지지율의 합은 이회창 후보 지지율을 훌쩍 넘고 있었다. 두 후보가 단일화에 성공하면 이회창 후보를 이길 가능성이 있음을 이미 추석 연휴 직후 여론조사에서 알 수 있었던 셈이다. 16대 대선 승패 열쇠는 단일화였음도 알 수 있다.

18대 대선은 추석 연휴를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안철수 후보가 출마 선언을 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18대 대선은 16대 대선과 유사하다. 물론 차이점도 존재한다. 16대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가 1위를 유지하다 후보 단일화로 대선에서 패했지만, 박근혜 후보는 추석 전후는 물론이고 상당 기간 1위를 놓친 적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의 후보 단일화에도 불구하고 결국 당선됐다.

2012년 추석 직전인 9월 4주 차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박근혜 후보 39%, 안철수 후보 28%, 문재인 후보 21%의 지지율을 각각 기록했다. 연휴가 끝난 10월 1주 차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박근혜 후보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한 40%의 지지율을, 안철수 후보는 2%포인트 하락한 26%의 지지율을, 문재인 후보는 3%포인트 상승한 24%를 기록했다. 오차 범위를 감안하면 추석 연휴가 지지율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종합해보면,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후보가 있을 경우에는 명절 민심이 대선 구도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1위를 유지하는 후보가 있다 해도, 명절을 전후해 민심에 충격을 줄 수 있는 의혹이 터지거나 대선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새로운 후보가 등장하면, 명절 민심이 대선판을 흔들 수 있다.

16대 대선이 보여주는 것은, 1위 후보와 2위 후보 지지율 격차가 근소하면 단일화가 판을 뒤집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18대 대선처럼 지속적으로 1위를 하는 후보가 있고, 후보 단일화 이전까지 2위 후보와의 격차가 오차 범위 밖이라면 단일화를 한다 해도 판을 뒤집기 힘들 수 있다.

이번 대선판은 양대 정당 후보들이 1위를 다투는 양상이다. 한마디로 압도적인 지지율을 확보한 후보도 오차 범위 밖에서 1위를 장기간 지속하는 후보도 없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1위 후보와 2위 후보 지지율 격차가 근소했던 16대 대선과 양상이 유사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작은 실수나 사건이 설 민심에 일정 부분 영향을 줄 수 있고 일종의 ‘나비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그렇기에 각 정당은 설 민심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경쟁이 불가피할 것이다.

야권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설 이전에 후보 단일화 협상을 시작해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16대나 18대 대선 사례를 보면, 후보 단일화를 위한 본격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최소 대선일 기준 40일에서 45일 이전에는 시작해야 한다. 단일화 협상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최소한 공식 선거운동 시작일인 2월 15일 이전까지는 단일 후보를 선출해야 단일화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충분히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단일화 협상 시작에 야권 후보들이 동의할 것인가. 앞서 언급했듯 18대 대선의 경우 박근혜 후보가 장기간 1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야권 후보들 위기감이 컸다. 그래서 후보 단일화가 이뤄졌을 수 있다. 반면 지금은 절대 강자가 없고 1위를 두고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다. 나 혼자서도 이길 수 있다는 ‘불안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야당이 승리를 원한다면 후보 단일화가 더욱 필요하다고 느껴야 한다. 야권이 16대 대선을 상기해야 하는 이유다.

대선 시계는 돌아가고 있는데, 정말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이 판국에 여야는 네거티브 캠페인에 올인하고 있다. 진흙만이 보일 뿐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이 정도로 막 나가는 대선은 처음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44호·설합본호 (2022.01.26~2022.02.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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