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자영업자는 '불가촉천민'인가

2022. 1. 28.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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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훈천 커피루덴스 대표, 광주시민회의 대표

“커피 한 잔 사는데 이름을 적으라고요? 에잇! 더러워서 커피도 못 마시겠네.” 출입명부 작성이 의무화한 코로나19 사태 초창기에 광주광역시와 전남 담양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필자의 마수걸이는 매번 이런 식이었다. 지난해 11월 정부가 단계적 일상회복(위드코로나)을 시작하면서 방역패스가 추가됐다.

출입명부 의무화 초기의 악몽이 떠올랐지만, 정상 영업을 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감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45일 만에 위드코로나가 중단되고 다시 출입 인원과 영업시간을 제한했는데, 방역패스 규제는 더 강화됐다. 정부는 방역패스를 놓고 ‘전 국민 사회적 거리두기를 피하기 위한 국소적 대응조치’라고 설명한다. 거리두기를 피하기 위한 방역패스라면 거리두기 강화 기간에는 방역패스를 면제해야 타당하지 않은가. 그런데 정부는 거리두기를 강화하면서 방역패스도 덩달아 강화했다.

「 거리두기·방역패스로 이중 규제
영업권 존중하는 방역대책 필요

방역패스는 코로나 사태와 경기불황을 온몸으로 견디고 있는 자영업자들에게 고통을 가중할 뿐 아니라, 뉴스와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정보 소외계층에게 수치심을 안긴다. 책상머리에서 방역패스를 결정한 공무원들이 생각해낼 수 없는 혼란이 현장에서 일상이 된다. 반짝 바쁜 시간에 백신 접종 증명서를 누락이나 착오 없이 확인하는 건 고문에 가깝다. 시간이 없어 테이크아웃 하려던 손님들은 발길을 돌린다. 스마트폰 사용이 더딘 이들은 직원 눈치를 살피며 미안해한다.

방역패스가 꼭 필요한 것이라면 얼마든지 정부 지침을 따를 것이다. 그러나 방역패스는 수갑 위에 오라를 채우는 요식행위다. 방역패스는 마스크와 출입 인원수처럼 눈에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다. 경찰이 피의자 신분증 확인하듯 할 수도 없다. 음성확인서나 접종증명서를 제시할 경우 깨알 같이 적힌 검사 일시를 들여다보며 유효기간까지 계산하긴 어렵다. 성인 기준 접종 완료율이 95%가 넘는다는데 방역패스 확인이 꼭 필요한 것인지도 수긍할 수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방역패스 위반에 과태료 등 엄중하게 처분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방역패스가 정말 필요하다면 국민 개개인의 준법정신에 호소해야지 위반 책임을 자영업자에게만 더 가혹하게 묻겠다는 건 자영업자를 평등한 국민이 아니라 ‘불가촉천민(Untouchable)’으로 취급하겠다는 발상 아닌가. 이런 천대에 한이 맺혀 자영업자들이 집단삭발로 울분을 쏟아내는 것이다.

방역패스는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유효기간이 6개월이라 만료된 방역패스는 계속 늘어날 거고, 이를 모른 채 찾아온 손님을 돌려보내야 하는 빈도는 잦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방역패스는 정부가 내세우는 ‘미접종자 보호’보다 백신 3차 접종 유도에 방점이 찍힌 것 같다.

정부가 백신 3차 접종 유도를 위해 방역패스를 강제하는 것이라면, 자영업자에게 그 책임을 떠넘길 게 아니라 지하철·버스 등 대중교통과 모든 공공기관부터 적용해야 한다. 기약 없는 영업제한 조치 아래 빈사 상태에 놓인 자영업자들이 벌금이 무서워 흉내만 내는 방역패스보다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방역패스가 훨씬 강력하고 효과적일 것이다.

지금 자영업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소모적인 방역패스와 과태료 겁박이 아니라 그들을 배려하고 영업권을 존중하는 과학적인 방역대책이다. 공기 전파 감염 위험을 3분의 1로 줄여준다는 환기시설 개선사업이나 공기청정기 지원 사업을 추진한다면 얼마든지 환영할 것이다.

마스크를 벗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고려해 매장 내부 동시 수용인원을 축소하고 테이블 간 거리두기와 개인 방역수칙을 강화하는 등 실제 방역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면 기꺼이 동참할 수 있다. 정부가 손님 될 자격까지 규정해서 자영업자와 고객 모두를 힘들게 하는 방역패스는 이제 그만둬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배훈천 커피루덴스 대표, 광주시민회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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