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프리즘] 5~6일에 1층씩? 속도전에 무너진 아파트

최경호 2022. 1. 27.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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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호 내셔널팀장

지난해 6월 9일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주택재개발 현장에서 철거 중이던 5층짜리 건물이 도로 쪽으로 붕괴됐다. 무너진 건물은 시내버스를 덮쳐 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순식간에 사상자 17명을 낸 광주 학동 재개발 붕괴사고다.

참사 7개월여 뒤인 지난 11일 광주 서구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아파트 공사현장의 외벽이 39층부터 무너져 내렸다. 학동4구역 시공업체인 HDC현대산업개발의 사업장에서 또다시 붕괴사고가 났다. 화정동 사고 현장은 학동 붕괴 현장과 5㎞ 거리다.

사고가 나자 예비입주자와 시민들은 분노했다. 같은 건설사가 광주 도심에서만 두 건의 대형 사고를 잇달아 일으켜서다. 학동 사고는 구청에 제출한 해체계획서와 전혀 딴판으로 건물을 헐어내다 사고를 냈다. 불법 다단계 하도급과 관리·감독 소홀, 날림 공사 흔적도 곳곳에서 발견됐다.

지난 25일 구조대원들이 광주 광역시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 현장에서 실종자를 찾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문가들은 “7개월 새 벌어진 두 건의 사고가 마치 판박이 같다”고 말한다. 한파 속에 이뤄진 콘크리트 양생 및 39층 바닥 타설 과정에서 부실시공 의혹이 쏟아졌다. 경찰 또한 38층 이하 지지대(동바리)의 조기철거와 붕괴층을 떠받들던 수십톤 규모의 구조물을 붕괴 원인으로 꼽았다.

붕괴 사고 이후 황당한 정황도 포착됐다. “현산 측이 거짓말로 입주예정자를 안심시켰다”는 의혹이다. 예비입주자회 관계자는 “11월 말 입주 시기를 맞출 수 있는지 물을 때마다 현산 측은 ‘충분히 입주가 가능하다’고 답했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마무리했어야 할 골조 공사가 계속 늦어지자 현산 측에 입주 가능 여부를 수차례 물었다. 이에 회사 관계자는 “5~6일에 1개 층씩 올라가니 문제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가 불안한 마음에 “콘크리트를 굳히는 양생 기간이 있을 텐데 그게 가능하냐”고 물으니 “기술이 좋아졌다. 괜찮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동절기 때 콘크리트 양생 기간은 최소 2주 이상 필요하다”는 전문가 견해와 다르게 건물을 올린 셈이다. 이런 의혹은 동바리를 무리하게 철거한 게 붕괴를 일으켰다고 본 경찰의 분석과도 일치한다.

이를 지켜본 40년 건축 전문가의 일갈은 큰 울림을 준다. “이번 아파트 붕괴에서 삼풍백화점 참사 당일의 데자뷔를 느꼈다”는 말이다. ‘삼풍백화점 붕괴참사전시관’의 이종관(79) 관장은 삼풍 참사의 교훈을 잊었기 때문에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는 것이라고 했다. “삼풍 사고 후 27년이 지났지만 국내 건설 현장의 안전 불감증 문제는 고쳐진 게 거의 없다”는 얘기다.

경찰은 사고 보름째인 26일부터 현산 관계자들에 대한 본격적인 소환조사에 나선다. 정부와 경찰이 이번 사건을 안전 불감증을 끊는 본보기로 삼을지 지켜볼 일이다.

최경호 내셔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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