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고치로 늘어난 文정부 위원회 수..참여정부보다 많은 622개 달해

김경민 2022. 1. 25.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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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정부 들어 행정기관 위원회 수가 급증하면서 정치권 안팎 논란이 뜨겁다. 복잡한 사회 이슈를 해결하자는 취지와 달리 이해관계자 의견조차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서 위원회 역할이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정부 들어 위원회 수가 급증하면서 정치권 논란이 뜨겁다. 사진은 정부과천청사. (매경DB)
▶文정부 위원회 600개 돌파

▷농어업, 수소 등 각 분야 위원회 급증

행정안전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정부 산하 행정기관 위원회 수는 622개로 사상 처음 600개를 돌파했다. 2020년(585개)과 비교하면 6.3% 증가했다. 정부 주도 국정과제가 많아지고 사회 각 분야 위원회가 잇따라 등장했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 위원회 수는 역대 정부와 비교해도 많은 수준이다. ‘위원회 공화국’이라는 지적을 받았던 참여정부 당시에도 위원회 수가 579개 수준이었다.

구체적으로 보면 대통령 직속 위원회 22개, 국무총리 소속 60개, 부처별 540개 등이다. 일례로 2050탄소중립위원회, 수소경제위원회, 납세자보호위원회, 청년정책조정위원회 등 29개 위원회가 새로 생겼다.

행정기관 위원회만 이 정도일 뿐 지방자치단체로 범위를 넓혀보면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전국 지자체 위원회 수는 2만7000여개로 추산될 뿐 공식 통계조차 없다. 국무조정실은 이 중 기업 활동 관련 위원회만 6000여개인 것으로 추산한다.

위원회 수가 급증한 배경은 뭘까. 위원회는 정부가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전문성을 보완하거나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신설되는 경우가 많다. 해당 분야 전문 인사가 참여해 행정기관이나 지자체가 기업 인허가나 사회적 이슈 등을 결정할 때 전문적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문제는 워낙 다양한 분야의 위원회가 난립하다 보니 위원회 역할 자체가 유명무실한 곳이 수두룩하다는 점이다. 실제 공식적으로 설치됐음에도 회의조차 하지 않아 ‘개점휴업’인 위원회가 숱하다. 지난해 전체 행정기관 위원회의 회의 예산만 373억7400만원이었지만 위원회 중 10%가량은 최근 1년간 회의를 단 한 번도 열지 않았다. 전체 위원회의 절반이 넘는 328개 위원회도 1년간 회의 횟수가 다섯 차례를 넘지 못했다.

물론 회의를 많이 했다고 해서 제 역할을 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지난해 회의 예산으로 3억1000만원을 배정받고 1년간 37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정작 출산율은 떨어져 출산 정책 예산 낭비 우려만 커졌다.

위원회가 이해관계자 의견을 반영하기는커녕 오히려 정부와 갈등을 빚는 사례도 적잖다.

일례로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농특위)는 최근 축산농가 경영 안정화를 위해 적정 사육 두수를 관리해 사실상 가축 수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하지만 농림축산식품부는 곧장 반발하고 나섰다. “정부가 가축사육총량제 개념으로 적정 사육 두수를 관리하는 것은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고 축산업 경쟁력이 약화될 가능성도 있다”는 입장이다. 축산관련단체협의회도 최근 성명서에서 “적정 사육 두수 관리 방안은 결국 사육 두수 감축을 예고하는 것이라 축산농가 생존권이 달린 사안이다. 축산농가 민의를 반영하지 않는 농특위의 불통 운영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농특위는 농민들이 반대하는 농촌 태양광 확대안을 제시해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농특위는 최근 농업진흥구역에서 영농형 태양광발전을 확대하자는 주장을 내비쳤다. 이를 두고 농림축산식품부는 영농형 태양광발전이 농지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공식 반대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농특위 측은 "사육총량제는 환경오염으로 인한 국민 인식을 개선하고자 지속가능 축산 방안으로 논의됐다. 전 축종이 아닌 지속가능 축산 방안에 동의하는 축종 대상으로 연구 용역과정을 거쳐 중장기 과제로 제도 도입 검토를 제안했다. 영농형 태양광 발전은 식량 안보와 탄소 중립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공론장을 마련해 의견을 수렴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지방자치단체 위원회는 사정이 더 심각하다. 업계 실상을 반영하지 못한 무리한 정책을 내놓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지난해 아파트의 난방용 대형 굴뚝이 과거 시민들의 생활,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역사적 보존물이라며 주요 재건축 조합에 굴뚝 존치 방안을 검토하라고 요청해 건설업계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런데도 정부와 지자체 위원회에 속한 위원 수만 무려 3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져 ‘세금 먹는 하마’라는 지적도 나온다.

▶‘개점휴업’ 위원회도 다수

▷위원 전문성 높이고 성과 평가해야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문가들은 물론 정부 부처 내부에서도 ‘위원회 회의론’이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다. 위원회 역할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지만 위원회 덩치가 커지면 그만큼 정부 부처 역할이 축소돼 정책 결정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위원회에 힘이 쏠릴 경우 일종의 ‘옥상옥’ 구조로 전락해 핵심 정책을 결정하는 시간이 길어질 우려가 크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위원회에 힘이 실리면 부처 공무원 입장에서는 위원회 결정 눈치만 볼 수밖에 없어 주요 정책 진행 속도가 느려진다. 그렇다고 위원회가 사회 이슈에 대한 뾰족한 해법을 내놓는 것도 아니라 위원회 구조조정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때”라고 귀띔했다.

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려면 철저히 전문성을 갖춘 위원만 선임하고 이들이 이해관계자 의견을 반영한 정책 발굴에 힘쓰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진다. 한편에서는 정부 부처뿐 아니라 위원회도 국회 국정감사 대상으로 포함시켜 구체적인 성과를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일정 기간 동안 위원회가 뚜렷한 성과를 내는지 평가하고, 성과가 기준에 못 미치면 정리하는 ‘위원회 일몰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형식만 갖춘 위원회가 너무 많다. 예산 낭비 우려가 큰 만큼 위원회 수를 줄이고 심의기능을 강화해 효율성을 높여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정부도 이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 1월 6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행정기관에서는 위원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보면 중복도 있고, 처리 기간도 길고, 요구 자료도 과다하다고 느끼는 등 부담이 많다. 위원회를 합리적으로 정리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정부 정책 자문 역할을 해야 하는데 자문 내용은 사회적 다양성을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원회가 다양성, 전문성에 따른 자문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하면 존재 의미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자칫 정부 행위 정당성만 부여해주는 들러리가 될 수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진단이다.

[김경민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44호·설합본호 (2022.01.26~2022.02.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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