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를 갖어 오시지 마세요" 이제 정말 쉬시나 봅니다 [코로나 베이비 시대 양육 고군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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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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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지를 정리하시던 모습 폐지를 정리하실 때 사진을 찍어 보았다. |
| ⓒ 최원석 |
폐지를 주우러 다니시는 이웃 할머니께 드리기 위해서다. 할머니는 연세가 많으시고 거동도 불편하시다. 이런 할머니가 일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많이 쓰였다.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출퇴근길에 나도 밖에서 폐지를 줍기 시작했다. 집으로 가져와서 일정량이 쌓이면 가져다 드렸다.
택배 상자를 가져다 드릴 때가 아닌 택배를 보낼 때도 할머니를 찾았다. 아이의 물건이 팔렸을 때, 마땅한 크기의 택배 상자가 집에 없으면 할머니께 부탁을 드렸다. 할머니는 그때마다 귀찮은 내색 한번 없이 적당한 상자들을 구해주셨다. 아이를 기르면서 할머니의 큰 도움을 본격적으로 받게 된 거다. 고백하건대 할머니가 도와주시지 않으셨다면 제때 택배를 보내기가 쉽지 않았을 거다.
할머니를 찾아간다고 해서 한 번에 바로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할머니는 1년 365일을 부지런히 길거리를 돌아다니시면서 일을 하시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쉬는 날이 없이 하루 종일 길거리를 누비셨다. 이런 할머니를 보며 조그마한 보탬이라도 되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할머니의 이런 근면 성실하신 모습이 내가 박스를 줍고 모아서 할머니께 가져다 드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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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자보 폐지 줍는 할머니의 집 앞에 붙은 대자보. |
| ⓒ 최원석 |
며칠 전 할머니께 폐지를 드리려고 할머니 집을 찾았다. 두 손에는 언제나처럼 박스가 여러 개 들려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할머니의 집의 풍경이 여느 날과는 많이 달랐다. 박스를 정리하고 계실 할머니의 모습 대신에 이상한 대자보가 붙어있었다.
원래라면 쌓여 있어야 하는 폐지들도 깨끗이 치워진 뒤였다. 할머니께서 사시는 집은 알고 있지만 할머니의 전화번호는 몰랐다.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알 수조차 없는 일이다. 이제 폐지를 줍지 않으신다고 한다. 어쩔 수 없는 일, 다시 박스들을 챙겨서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폐지를 다시 가져와서 집 앞에 두면서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지난번에 폐지를 가져다 드릴 때까지도 그만두신다는 말씀이 없었던 터라 할머니의 근황에 더 의문이 들었다. 이곳에 이사를 온 지 8년째, 할머니께서 쉬시는 날을 본 적이 없었기에 더 의아했다. 명절조차 할머니는 쉬지 않으셨기 때문에 더 의문이 들었다.
"아. 아빠요. 내 말을 잘 들어보소. 연말 연초나 설 명절이 되믄요. 이게 더 바쁜 기라. 왜냐하믄 박스 선물이 많이 들어온다 아닙니꺼. 그라믄 알맹이만 빼고 버린다 아닙니꺼. 이게 또 재질이 좋은 종이 재질이라 대우를 더 쳐 준다 아닙니꺼. 설이나 명절 때는 이래서 더 자주 길을 디비는 겁니더. 다 이유가 있지예."
"다른 할매, 할배들도 이걸 압니더. 그래서 더 전쟁인기라. 이래가 명절에는 더 피가 튀기는 겁니더. 다른 사람들 쉬는 날들 있지예. 그때 더 폐지가 많이 나온다 아닙니꺼. 평일보다 우리는 남들 쉬는 날이 더 바빠예. 아유. 설 연휴는 말할 것도 없지예."
대문 앞에 박스를 놓으며 할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몸이 편찮으실 정도가 될 때까지 추운 날, 궂은 날에도 쉼 없이 일하시던 할머니의 평소 모습도 함께 떠올랐다. 내가 가져다 드린 박스들은 몇십 원, 몇백 원의 가치일 뿐이지만 할머니께는 이 일이 생계이실 텐데라는 걱정이 들었다. 앞으로는 이 조차 못하실 거라고 생각하니 걱정이 더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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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스 할머님께 드리려고 모아 놓은 박스들이다. 대부분 택배로 받은 박스들이다. 할머니를 드리려고 주워온 박스도 있다. |
| ⓒ 최원석 |
오랜만에 폐지를 버리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여기에서 폐지를 수거해가실 다른 분들의 처지도 할머니와 많이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폐지를 버리면서도 할머니와 폐지를 수거하시는 분들이 생각나서 계속 마음이 아렸다.
폐지는 내어 놓기가 무섭게 사라졌다. 할머니께 가져다 드릴 때는 몰랐던 점이다. 버린 지 채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어느 분께서 수거를 해 가셨을 정도다. 할머니께서 일전에 언급하셨던 폐지를 줍는 경쟁이 치열하다는 말씀을 눈으로 확인한 셈이었다. 이렇게 경쟁이 치열하니 할머니께서 주말과 명절에도 일을 하신 거구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한 십 년 넘게 폐지를 주웠소. 딱 먹고 살만큼을 벌대요. 하루에 한 열 시간을 일해야 딱 그만큼을 벌대요. 어디 나가서 할 수 있는 일이 빼족히 없으니 우짭니꺼. 나와야지예. 나와서 폐지 주어야지예. 그래도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더. 일을 할 수 있는 게 어딥니꺼. 아파가 골골되면 이일도 몬하지예. 도와주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감사합니더. 그 사람들이 있어가 그래도 이마이 먹고 사니까예.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그 사람들 봐서라도 해야 안 되겠습니꺼?만약 내가 길에 안 보이면예. 그때는 진짜 몬해서 몬하는 거라예. 그냥 아파서 몬한다... 이래 생각하시면 됩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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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추후 기자의 브런치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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