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법원장 후보 추천제와 대법원장의 제왕적 지위

2022. 1. 24.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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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봉기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공법학 교수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 3일 시무식에서 여느 때와 같이 “국민을 위한 ‘좋은 재판’으로 사법부 신뢰를 제고하겠다”고 외쳤다. 그에 더해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온 방향은 옳다고 확신한다”며 그것이 “국민을 위한 방향이고, 정의를 위한 방향이며, 미래를 위한 방향이었다”고 목에 힘을 주었다. 과연 이 말에 공감할 국민이 몇이나 될까. 수려한 글로써 진실을 은폐하는 현실에서 “은폐가 곧 거짓이야!”라고 했던 이어령 선생의 말이 뇌리를 스쳤다.

김 대법원장은 ‘좋은 재판’ 구현 방법의 하나로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임기 내에 전면 도입하겠다고 한 바 있다. 지난 정권에서 인사 전횡으로 ‘사법농단’을 초래했던 제왕적 대법원장제를 앞장서서 타파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향식 법원장 임명제를 과감히 포기하겠다고 했지만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국민에게 좋은 재판을 제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민주(民主)로 포장된 ‘상향식 임명제’라는 용어에는 추천과 낙점의 2단계를 거쳐야만 법원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은폐돼 있다.

원래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김 대법원장 취임 후 설치한 사법발전위원회 건의와 전국법관대표회의 발의 안건으로 채택된 것이다. 당시 발의자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법원판 지방자치제도’의 핵심이자 사법 관료화 문제의 해소 장치라며, 추천제 법원장은 법관 독립의 수호자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김 대법원장은 즉각 이를 채택해 시행에 들어갔고, 2019년 의정부지법과 대구지법에 시범 실시한 이래 계속 확대해 자신의 임기가 만료되는 내년엔 전국 21곳 모두에 도입할 예정이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도입 당시에도 인기투표가 될 것이라거나 재판 소홀과 사법행정 난맥을 초래할 것이라는 문제점이 제기됐지만 시행을 거듭하며 내외부적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법원판 지방자치제’라면 적어도 법원장 임기제 보장이 선행돼야 함에도 대법관 등 고위직 인사에 따라 수시로 추천 요인이 발생하고, 추천은 사실상 선거로 왜곡돼 법과 원칙을 생명으로 하는 법원이 다수결의 원리가 지배하는 정치판으로 변질될 우려를 해소하지도 못한다. 특히 국제인권법연구회와 같은 응집력 강한 진보 성향 모임의 법관들이 장악하고 있는 우리 사법부 내부의 사정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도입할 바에는 차라리 예측 가능했던 기수별 선임 방식의 기존 시스템이 오히려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로부터 간섭을 적게 받는 구조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사법부의 탈정치화는 자유민주국가의 기본 원리에 속한다. 추천제 임명 법원장이 정권 친화적인 대법원장의 이념에 보조를 맞추면 대법원장은 오히려 제왕적 지위로 회귀하게 된다. 사실상의 선거를 거쳐 ‘은혜로운 낙점’을 기다리는 상위 서열 법관들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처음부터 법원장을 포기하거나 조기 사퇴를 부추겨 재판의 지연이나 불성실을 초래하는 후유증이 법원장 후보 추천제의 부작용으로 이미 곳곳에서 감지된다.

내일 대법원에서 새 법원장 인사를 발표할 것이라는 소식이다. 이재명 상고심 재판에서 이른바 ‘숨 쉴 공간’을 무기로 무죄를 설파했던 권순일 전 대법관에게 힘을 실어준 김 대법원장의 전횡에는 무관심한 채 기존 9명에 더해 누가 추가로 4명의 추천제 법원장이 될 것인가에만 주목하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그럼에도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다음의 이유에서 폐지되는 것이 마땅하다. 첫째, 선거 추천과 낙점의 2단계 법원장 임명 구조는 ‘법관의 전문 직역 특성’상 타당하지 않고 사법부 독립에 오히려 역행한다. 둘째, 추천이 곧 법원장 보임이 아님에도 그 과정에서 내부 고발로 사퇴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셋째, 법령에 근거하지 않는 현재의 법원장 추천제는 김 대법원장 임기를 끝으로 종료될 가능성이 크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 도입 이후 법원장 요건을 충족하는 실력 있는 법관들의 사퇴가 급증하는 현상은 대법원장의 강화된 제왕적 지위, 민주를 앞세운 독단, 특정 이념 집단화 현상 등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천재들만의 집단에서 서서히 권력에 순응해 가는 자신들의 모습을 이제라도 직시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보신을 위해 억지로 눈을 질끈 감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신봉기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공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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