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2035] 진심이 뭐길래

심새롬 2022. 1. 24.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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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새롬 정치팀 기자

초등학교 앞에 ‘대발이네’라는 분식집이 있었다. 가부장제의 화신(이순재 분)과 그의 아들 대발이(최민수 분), 신세대 며느리(하희라 분) 간 갈등·화합을 다룬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1992년 세운 역대 최고 평균 시청률(59.6%) 기록이 아직 굳건하다고 한다. 반면 지난 20년간 한국 사회에서 남녀 성 역할의 고정관념은 점차 해체됐다. 서른 살 여성 3인의 술, 욕, 성생활을 다룬 19금 웹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이 지난해 유튜브 공식 클립 영상 6000만뷰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니’(문재인 대통령), ‘여니’(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열광하던 여초 온라인 커뮤니티에 최근 돌연 ‘여리(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거니(부인 김건희씨)’가 등장한 것 역시 이전보다 걸출한 여성에 환호하는 시대상의 단면으로 볼 수 있다. 지난달 26일 국민의힘 선대위가 김씨를 기자회견장에 세웠을 때 윤 후보 지지율은 별 방어 효과를 보지 못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남편 앞에 저의 허물이 너무나도 부끄럽다”며 눈물을 찍어내는 모습이 어딘가 어색하고 작위적이었다.

지난 16일 민주당 당원게시판에 올라온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부인 김건희씨 일러스트. [게시판 캡처]

그런데 3주 뒤 폭로된 ‘거니 찐음성(진짜 목소리)’이 예상을 뒤엎은 반향에 휩싸였다. 법원 결정 과정에서 김씨가 “우리 남편은 바보다. 내가 다 챙겨줘야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 대목이 공개됐는데, 50대 아줌마의 거침없는 남편 흉에 팬클럽 4만명이 몰려들었다. 가처분까지 신청하며 녹취 방송 필사 저지를 시도했던 국민의힘 선대위가 머쓱할 지경이다. 대발이 시절에나 가능했던 “지상파 시청률 50%, 본방 사수”(정철 선대위 메시지총괄)를 부르짖으며 여론몰이에 앞장서려던 민주당은 할 말을 잃었다.

“말이라도 잘 들으니까 내가 데리고 산다” 등 진위 확인 없이 온라인에 퍼진 김씨의 막말이 여성과 젊은 세대에 반전 쾌감을 선사한 측면이 있다. 앞서 회견장에 ‘이부진룩(이부진 호텔신라 대표 스타일의 의상)’을 입고 나온 김씨의 외모 거론은 주로 5060 남성들 몫이었다. 당시에도 2030은 “남편에게 뭔가 폐가 되었다는 방식을 감정에 호소해 듣기 불편했다”(권지웅 민주당 청년선대위 공동위원장), “아이를 낳아줘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전형적이고 오래된 여성상을 드러냈다”(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고 반응했다.

솔직함, 털털함이 고픈 유권자 마음을 정치가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형수 욕설을 “가족 간 비사(秘事)”(우상호 의원)로 감싸는 전략이 유효할까 의문이 드는 이유다. 지난달 회견 직후 김씨의 한 측근은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 부인 김미경 교수가 김씨의 입장문을 작성, 검수했다”고 귀띔했다. 사실이든 아니든, 꾸며낸 메시지에 민심이 속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심새롬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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