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2900명 전직원 반기에..文, 순방 중 조해주 사표 수리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사표를 반려해 '선거 중립'논란의 중심에 섰던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이 선관위 전직원의 이례적 반발에 부딪힌 끝에 21일 재차 사표를 제출했다.
지난 19일 중앙일보 보도를 통해 문 대통령이 조 위원의 사표를 반려한 사실이 알려진지 이틀만이다. 이집트 순방 중 보고를 받은 문 대통령은 조 위원의 사표를 수리했다.
조 위원은 이날 오전 선관위 내부 게시판에 올린 글을 통해 “오늘 임명권자에게 다시 위원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것으로 저와 관련된 모든 상황이 종료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사표를 제출한 배경에 대해서는 “위원회가 짊어져야 할 편향성 시비와 이로 인해 받을 후배들의 아픔과 호소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며 “위원회의 중립성ㆍ공정성을 의심받게 된 상황에 대해 후배들이 받았을 상처에 대해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적었다.
조 위원은 특히 “오늘의 상황은 제가 원해서가 아니라, 저의 뜻과 상관없이 흘러왔다”고 했다.
야당은 조 위원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부적합한 인사의 임명을 비롯해 모두 청와대와 대통령이 자초한 결과”라고 청와대를 몰아세웠다.
야당의 주장처럼 지난해 7월 이후 조 위원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논란은 그야말로 청와대가 자초한 한편의 희극이었다.
문재인 대선 캠프 특보 출신인 조 위원은 2019년 1월 임명 당시부터 정치 편향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야당이 선거 중립 훼손을 이유로 국회 청문회를 반대하자, 문 대통령이 청문회를 거치지 않은 채 임명을 강행한 것이 논란의 씨앗이었다.
상임위원 임기 내내 정치중립 논란의 중심에 섰던 그는 지난해 7월 일찌감치 사표를 제출했다. 올해 1월까지인 3년간의 임기를 채울 경우 대선 직전에 문 대통령이 후임 상임위원을 지명해야 하고, 그럴 경우 정치적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증폭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그만두는 게 낫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상임위원 임기를 채우라”며 사표를 반려했다.
우여곡절끝에 1월까지의 임기를 채우게 된 그는 재차 사표를 내고 내부적으로는 퇴임식까지 치렀다. 그러나 이번에도 문 대통령이 또다시 사표를 반려했는데, 상임위원의 경우 3년간의 임기를 마치면 선관위원직을 떠나는 관례까지 깨고 비상임 선관위원으로 3년을 더 근무토록 했다. 장관급인 상임위원의 임기는 3년이다. 임기 6년인 선관위원을 겸하지만, 임기 3년을 마친 뒤 선관위원으로 임기를 이어갔던 전례는 한 번도 없다.
후임자로 낙점했던 인사의 검증 과정에서 ‘갑질 의혹’ 등이 불거졌다며 청와대는 "대선을 관리해야할 중앙선관위의 안정성을 고려한 결정"이란 이유를 댔다. 하지만 야당은 “정권의 입맛에 맞는 조 위원을 선관위원으로 옮겨 향후 3년간 사실상 ‘상왕 선관위원’으로 쓰려는 의도”라고 항의했고, 선관위 내부 구성원들의 격한 반발까지 겹치며 청와대의 이같은 결정은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게 됐다.
익명을 원한 선관위 관계자는 “조 위원에 대한 사표 반려 사실이 알려진 뒤 선관위 직원들과 시ㆍ도 선관위 지도부가 20일 긴급회의를 통해 ‘조 위원은 즉각 사퇴하고 선관위를 떠나야 한다’는 데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았다”며 “직원 전원이 사퇴를 촉구하는 ‘후배들이 드리는 글’을 작성해 전달하겠다는 의사를 조 위원에게 직접 전했다”고 전했다.
사실상 2900명 선관위 전 직원이 문 대통령의 결정을 반대하며 조 위원의 연임에 반기를 드는 선관위 60년 역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조 위원에게 전달된 후배들의 글 속엔 “선거관리에 어려움이 가중된다”, “지속된 선거부정 의혹과 편향적이라는 비난 분위기를 쇄신할 전환점을 기대했는데 양대 선거 과정과 결과에 대한 외부의 비난과 불복이 지속될 것”이란 우려가 담겼다.
이런 의견을 이날 오전 전달받은 조 위원은 오전 11시쯤 “사표를 재차 제출했다”는 내용의 '후배들에게 드리는 말씀'이란 글을 내부 게시판에 올렸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조 위원의 사표 제출과 관련 “사전에 청와대와 전혀 조율되지 않았고, 사표도 인편이 아닌 전자결재로 제출된 것으로 보인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않았다. 또 다른 인사는 “순방 중인 대통령도 이번에는 사표를 수리할 수밖에 없어진 상황”이라고 했다.
결국 청와대는 이날 오후 5시 27분 문자 공지를 통해 “문 대통령은 순방 현지에서 조 위원의 사의 표명을 보고받고 수용했다”고 밝혔다. 조 위원이 사의를 표명한 글을 올린지 6시간여 만이다.
조 위원 후임 인선에 대해 청와대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국회 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조 위원 후임 인사와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셔야 정확히 알 수 있지만, 청문회 등 임명 절차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을 고려할 때 대선이 임박한 현 시점에서 임명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또 문 대통령이 지명한 위원 두 명(이승택ㆍ정은숙 선관위원)중에서 장관급 선관위 상임위원이 결정될 것이라는 관측에 대해 이 관계자는 "선관위 상임위원은 위원회에서 호선하는 것"이라면서도 "지금까지 대통령이 지명한 사람이 상임위원이 됐다는 관례를 따를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또다른 고위 인사는 "야당이 대통령이 기존에 지명한 선관위원 중에 호선을 하는 방안에 반대할 경우, 관례대로 상임위원을 염두에 둔 새로운 인물을 추천하면 된다"며 "다만 그럴 경우 청문회 일정 등을 감안해 야당도 상임위원 없는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에 동의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추천한 비상임위원 중 상임위원을 선정하는 꼼수는 반헌법적 행동”이라며 “그런 시도 자체를 아예 꿈도 꾸지 말고, 정상적 절차로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대본부 전주혜 대변인도 “임기말 꼼수 알박기 시도는 애초부터 없었어야 했다”며 “상임위원 후임은 문 대통령이 임명한 친여 비상임위원이 아닌 공정하고 중립적 인사를 새로 임명해야 한다”고 했다.
강찬호ㆍ강태화 기자 stonco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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