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알려진 시네마테크 운동 선구자의 부음

성하훈 2022. 1. 21. 17:27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시네마테크운동의 선구자였던 최정운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대표가 지난 5일 숙환으로 타계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한의사였던 고 최정운 대표는 1990년대 이후 전개된 한국시네마테크 운동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맡은 독립영화계의 보배였다.

최정운 대표는 2002년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이사장을 맡아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를 개관했고, 지난 20여 년간 영화 문화 활성화를 위한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정운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대표, 지난 5일 타계.. 향년 71세

[성하훈 기자]

 최정운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대표
ⓒ 서울아트시네마
 
시네마테크운동의 선구자였던 최정운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대표가 지난 5일 숙환으로 타계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71세.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21일 "최정운 이사장이 지난 1월 5일 병환이 악화되어 입원 치료 중에 소천하셨다"며 "장례는 조용히 가족장으로 치러졌고, 경기도 광주시 소재 봉안묘에 유해를 모셨다"고 밝혔다.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는 "이런 소식을 직접 전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몇 년 전부터 병환으로 치료 중이었고, 지난해 말에 위증증 상태로 입원 중에 증세가 악화되었다고 한다"며 "황망함에 지금은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갑작스러운 소식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최정운 대표는 지난해 2월 운영하던 한의원을 정리하고 치료에 전념해 왔으나 끝내 일어서지 못하고 아끼던 영화와 영화인들의 곁을 조용히 떠났다. 영화인들은 뒤늦은 부음에 마지막 인사도 드리지 못했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한의사였던 고 최정운 대표는 1990년대 이후 전개된 한국시네마테크 운동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맡은 독립영화계의 보배였다. 조영각 인디그라운드 센터장이 표현처럼 "그냥 영화만 좋아했던 갈 곳 없는 저희를 받아주시고 키워주신 대표님"이었다.

경희대 재학시절 아마추어 영화제작단체인 '한국영상작가협회'를 통해 직접 8mm 영화제작을 경험하면서 영화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이 영화 인생의 출발이었다. 당시 유현목 감독이 만든 소형영화작가협회에서 활동했다. 고인은 생전 인터뷰에서 "회원들과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나가거나 시나리오도 쓰고 연출과 연기도 하면서 필름을 들여다보는 일이 재밌었다"고 회고했다.

대학 졸업 후 한의사가 됐으나 영화에 대한 애착이 컸던 최정운은 1991년 '문화학교 서울'을 설립하게 된다. "영화를 보는 것도 좋아했지만 찍는 것이 더 좋았었다"며 "1980년대 말 시나리오를 한번 써보겠다고 시나리오 강좌를 수강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문화학교 서울'은 처음부터 시네마테크를 해보겠다는 명확한 지향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1991년과 1992년에는 주로 영화 스터디 모임을 진행했고, 1993년 첸카이거, 장이모 등 중국 제5세대 감독들의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시네마테크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했다.

그 바탕에는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문화학교 서울' 운영을 전적으로 지원했던 최정운 역할 덕분이었다. 사당동에 있던 '문화학교 서울'은 최정운의 한의원과 같은 건물에 있었다.

하지만 운영과 기획은 곽용수(제작자, 인디스토리 대표), 이주훈(전 미디액트 부소장), 조영각(프로듀서, 인디그라운드 센터장), 김형석(영화평론가, 평창국제평화영화제 프로그래머) 등에게 맡겼고, 최정운은 물심양면 후원하는 역할만 담당했다.

최정운 대표는 2002년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이사장을 맡아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를 개관했고, 지난 20여 년간 영화 문화 활성화를 위한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최정운의 '문화학교 서울'은 전국 각 지역에서 시네마테크 운동이 확산되는데 맏형 역할을 하기도 했다.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최정운 대표님의 후원과 노력이 없었다면 90년대의 영화 운동도, 지금의 시네마테크도 있을 수 없었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뒤늦게 타계 소식이 알려졌지만, 고인이 지금까지 한국 영화운동에 기여한 공로가 크다는 점에서 영화계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고인의 쌓아 놓은 업적에 대한 평가가 필요해 보인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