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해서 막말? 코로나 블루가 온라인 생태계 망친다

오상훈 헬스조선 기자 2022. 1. 2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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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혐오 댓글'로 혼탁.. "지루함이 폭력성 불러" 연구도
지루함이 가학적인 행동의 동기가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코로나19 이후 급증하는 온라인상 혐오 표현 역시 지루함이 원인일 수 있는데 지루함을 건전하게 해소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클립아트코리아

A 씨는 요즘 하루하루가 똑같단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퇴근하고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거나 온라인 쇼핑을 하는 일상이 지루하다. 그러던 어느 날 특별할 것도 없는 콘텐츠에 달린 정치적 댓글에 눈이 갔다. 평소 댓글을 잘 남기지 않는 A 씨지만 그날따라 짜증이 치밀어 혐오스러운 표현까지 동원해 댓글을 썼다. 그랬더니 답댓글로 사람들의 칭찬이 달리기 시작했다. 흥분한 A 씨는 그때부터 댓글의 강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지루함이 폭력적이거나 가학적인 행동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나왔다. 온라인 혐오 표현은 어떨까? 코로나19로 인한 지루함이 온라인 혐오 표현의 급증세도 설명해줄까?

◇아동 학대와 벌레 학살의 이유

최근 지루한 감정이 가학적인 행동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덴마크 오르후스대 연구팀은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낄 때 가학적으로 행동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과거에 가학적인 행동을 분석했던 9건의 연구를 메타분석한 것이다. 먼저 자기보고 기반으로 이뤄진 3개의 연구에서 ▲군대에서의 가혹행위 ▲온라인 게임에서의 트롤링(다른 사람을 화나게 하는 행동을 반복해 상대방의 반응을 끌어내는 것) ▲아동에 대한 언어적, 신체적 학대 등의 가해자들은 지루함을 가학 행위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연구팀은 178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모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매사에 더 많이 지루해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지루할수록 벌레를 더 많이 죽이기도 했다. 연구팀이 분석한 연구에는 129명의 참가자가 몇 가지 종류의 영상을 보면서 커피 그라인더에 구더기를 넣을 수 있도록 설계된 것도 있었다. 분석 결과, 13명의 참가자들이 구더기를 끊임없이 커피 그라인더 속으로 밀어 넣었는데 이들 중 대다수는 20분 간 폭포수가 떨어지는 영상을 봤다. 연구팀은 이 같은 결과에 대해 대안 없는 지루함은 가학적 성향이 낮은 사람들에서도 가학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내향적인 사람이 지루함 느끼면…

모든 사람이 폭력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진 않는다.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배승민 교수는 “지루한 상황에서 새로운 걸 찾는 성향인 노벨티 시킹(Novelty seeking)은 사람마다 기질적으로 다르다”며 “다만 ADHD나 PTSD를 겪는 사람은 특히 지루함에 취약해 폭력과 같은 강렬한 자극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ADHD라고 하면 청소년을 떠올리기 쉽지만 성인 약 150만 명이 앓고 있을 정도로 흔한 질환이다.

내향적인 사람도 지루함을 폭력적으로 해소할 가능성이 높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지루함은 무의미함을 반복하는 것에서 오는 고통인데 맨날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면 자극이 와도 반응을 안 하게 되고 이게 번아웃이나 피로감으로 변해 스트레스를 증가시킨다”며 “물론 개인차가 있지만 외향적인 사람은 운동과 같은 새로운 자극을 끊임없이 찾을 확률이 높은 반면 내향적이거나 수동적인 사람은 지루한 상황이 이어져도 감내하다가 갑자기 분노하거나 폭력적으로 변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ADHD나 PTSD 환자, 내향적인 사람은 지루함을 폭력적으로 해소할 가능성이 높다./ 클립아트코리아

◇코로나 블루가 온라인 혐오 표현의 주범?

코로나19는 혐오 표현을 증가시켰다. 특히 온라인에서 말이다. 코로나 이후 트위터에선 아시아 혐오 발언이 900% 증가했다. 한국이라고 다르진 않았다. 팬데믹 초기, 해외 입국자나 특정 지역에 대한 비난은 집단 혐오에 가까웠다. 국민 3명 중 1명은 코로나19와 관련해 혐오 표현을 한 번 이상 써봤거나 4명 중 3명은 코로나로 인해 이전보다 혐오 표현이 늘었다고 답한 설문 결과도 있다.

지루함이 혐오로 이어지진 않았을까? 코로나 이전과 비교할 때 외부 활동은 줄고, 사람 만날 기회도 사라졌다. 근무부터 교육까지 비대면으로 이뤄지다 보니 대화는 메신저, 댓글로 진행된다. 확실한 건 코로나19가 우울증 유병률을 높였다는 사실이다.

전남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연구팀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19 감염력이 없는 일반인 1492명 중 약 20.9%가 코로나19로 인한 뚜렷한 우울 증세를 보였다. 이는 코로나19 이전보다 5배가량 높은 수치로 코로나가 장기화함에 따라 많은 사람이 정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증거다.

배승민 교수는 “우울증의 유병률 증가가 악플, 온라인 혐오의 증대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전엔 술을 먹는 등 외향적으로 지루함과 스트레스를 풀 기회가 있었지만 그런 기회가 줄어든 지금은 악플과 같은 순간적인 감정 동요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단이 됐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스트레스 풀 노하우 찾고 지루함 인정하는 등 개인이 바뀌어야

혐오 표현을 막기 위해 대형 포털들은 연예, 스포츠 뉴스의 댓글을 폐지하거나 댓글 이력제를 실시했다. 효과가 있기도 했다. 네이버에 따르면 댓글 이력제 실시 이후 악성 댓글 건수는 63.3% 감소했다. 그러나 익명성이 보장된 커뮤니티에선 여전히 혐오 표현이 만연하고 있다. 특정 대상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재치로 받아들여져 많은 공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결국 개인이 바뀌어야 한다. 혐오, 차별 표현은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에게도 독이다. 혐오는 지루함을 원천적으로 해소할 수 없다. 순간의 흥분으로 잠시 지루하지 않을 순 있겠지만 결국 지루함의 원인이 되는 상황은 바뀌진 않는다. 오히려 혐오 표현에 중독되는 수가 있다. 남들 앞에서 자극적인 말로 주목받으면서 평소 충족하지 못했던 욕구가 온라인상에서 충족된다고 느끼면 중독 시스템이 작동한다. 정제되지 않는 언어를 사용하는 습관이 현실에서는 분노, 충동적 행동과 같은 성격 장애 증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지루함을 해소하기 위해 운동이나 새로운 취미를 찾는 것도 필요하다. 배승민 교수는 “최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개인적인 노하우가 없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SNS에 몰두하기보다는 다양한 것을 시도해서 개인만의 노하우를 찾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을 잠시 멀리하는 것도 방법이다. 스마트폰을 오랜 시간 보면 그만큼 접하는 정보도 늘어나고 자극에 무뎌져서 지루함을 자주 느낄 수 있다. 또 지루함이 꼭 불쾌한 감정이 아니라고 여기는 태도도 필요하다. 과도한 자극 속에서 잠깐의 지루함은 오히려 창의성이나 인지 능력 향상을 부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불멍’, ‘물멍’과 같이 지루함을 느끼는 체험이 도움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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