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당한 70대 여성 의심한 경찰들.. 끔찍했던 까닭
[김봉건 기자]
작은 책방 대표 동인(기주봉)과 동거 중인 효정(예수정)은 어느 날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던 도중 간호조무사 이중호(김준경)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사건을 도무지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몰라 고민하던 효정. 동인에게 사실 그대로를 털어놓은 뒤 그와 경찰서에 동행하여 가해자를 고소한다.
▲ 영화 < 69세 >의 한 장면 |
ⓒ (주)엣나인필름 |
영화 < 69세 >는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스스로를 가둬둔 틀을 부수고 세상의 시선에 한없이 움츠러들던 자신을 꼿꼿이 세우는, 올해 69세가 된 한 여성의 이야기다. 세상의 편견과 폭력에 맞서는 여성의 서사를 통해 소외된 노년의 삶을 들여다본다.
효정의 나이는 올해로 69세다. 그에게 성폭행을 저지른 간호조무사의 나이는 29세다. 이 때문에 경찰관들은 해당 사건을 미온적으로 처리하고, 심지어 법원마저도 피의자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한다. 20대 청년과 곧 70대를 바라보는 여성 사이에 성폭행 성립될 여지가 없을 것이라는 시각인 것이다. 고소장을 접수할 당시 담당 경찰관들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수사에 소극적으로 임한 이유가 짐작되는 대목이다.
▲ 영화 < 69세 >의 한 장면 |
ⓒ (주)엣나인필름 |
효정과 비슷한 연령대를 향한 세상의 시선은 몹시 차갑다. 효정은 오랜 기간 수영으로 몸을 단련시키고 건강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그에게 '나이에 비해 몸매가 좋다', '처녀라고 해도 손색이 없겠다' 따위의 문장을 붙인다.
물론 이러한 관심이라도 드러내면 그나마 다행이다. 세상은 노인을 투명인간 취급하기 일쑤이다.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노인이 되면 경제활동인구 통계 산출에서 제외되어 경제적으로는 무쓸모해지고, 여성성과 남성성은 그 경계마저 희미해져 초라하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세상은 이들에게 상당히 가혹하다. 관심조차 없다.
▲ 영화 < 69세 >의 한 장면 |
ⓒ (주)엣나인필름 |
영화 < 69세 >는 무관심과 소외에 익숙해진 69세의 여성이 자신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세상을 향해 일갈함으로써 뒷방 늙은이가 아닌 세상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도전하는 한 사람으로 우뚝 서고자 하는 이야기다. 배우 예수정의 차분한 내면 연기가 인상 깊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효정은 꿈이 많고 다재다능한 인물이다. 비슷한 연령대가 대부분 그러하듯이 현실에 치이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꿈을 하나둘 내려놓게 된 것이다. 이 미완의 꿈을 다시금 희망할 수 있도록 군불을 지핀 건 공교롭게도 그녀를 끔찍한 현실로 몰아넣은 성폭행 사건이었다.
주름이 깊게 패이고 까칠해진 양 손을 피아노 건반 위에 올릴 때 두근거리던 효정의 가슴은 세상에 더 가깝게 다가서려는 의지의 표명이며, 가해자 이중호에게 거칠게 내뱉은 마지막 한 마디는 세상을 향한 포효였다. 누군가는 불쾌감을 호소할지라도 그녀가 "나는 성폭행 당했다"며 떳떳하게 말할 수 있었던 건, 현실이 쌓은 편견과 벽 앞에 주저앉지 않고 세상 밖으로 힘차게 걸어나가겠노라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 영화 < 69세 >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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