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사망에 추도사 쓴 노숙인 "노숙생활, 나태해서가 아니라.."
[신나리 기자]
▲ 정아무개(60대)씨는 세상을 떠난 동료 노숙인을 위해 직접 추도사를 썼다. |
ⓒ 홈리스행동제공 |
▲ 홈리스행동은 지난 14일 조OO이라는 이름을 적고 추모제를 진행했다. |
ⓒ 홈리스행동제공 |
서울의 최저기온이 영하 11도까지 떨어진 지난 12일,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겨울 추위를 피하고자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텐트에서 생활하던 노숙인 조아무개(60대)씨가 사망했단 소식이었다.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따르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1차 소견 결과는 지병으로 인한 사망으로 나타났지만 당시 조씨는 옷을 얇게 입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2일에도 서울역 광장에 거주하던 노숙인 김아무개(50대)씨가 유명을 달리했다. 혹한이 이어진 1월, 서울역 광장에서 두 명의 노숙인이 세상을 등진 것이다.
하지만 홈리스행동은 이들의 이름조차 세상에 제대로 알릴 수 없었다. 이동현 활동가는 20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고인의 이름이라도 알고 추모제를 열고 싶어 서울남대문경찰서 등 관련기관 세 곳에 문의했지만,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모두 거절당했다"라면서 아쉬움을 드러냈다.
결국 홈리스행동은 지난 14일 조OO이라는 이름을 적고 서울역 광장에서 추모제를 진행했다. 이날, 조씨가 머물렀던 텐트와 가까운 곳에서 생활하던 정아무개(60대)씨는 직접 추도사를 썼다. 세상을 떠난 동료를 위해 그는 서울역 광장에서 비교적 깨끗한 박스를 골라 뒷면에 추모의 글을 적어내려갔다.
"조용히 텐트 치고 지내던 얼굴도 모르는 우리 옆의 형제가 갑자기 운명을 달리했다. 마음이 착잡하다"로 시작한 추도사는 "세계 10대 경제국가 선진국으로 나라는 부자이지만, 서민은 가난한 세계 최상위 빈부격차의 양극화 나라다. (하지만) 가난은 나라도 구제못한다는 거짓말은 허구일 뿐"이라는 말로 이어졌다.
이어 그는 "우리 노숙인들은 그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생활하다 부자만을 위한 나라 정책과 제도에 희생양이 되어 지금의 처지에 내몰렸다"라면서 "노숙생활이 결코 우리들이 나태하고 게을러 된 내 탓만이 아니라 나라의 책임이 더 큰 것이기에 비록 구차한 생활이라도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어서 우리들의 권리를 주장해 우리들에게 주어진 복지 지원을 최대한 당당히 받아내야 한다"라고 적었다.
정씨는 또 "우리 각자는 서로 위하지는 못할망정 옆의 사람 물건에 손대는 것만은 절대 삼가해 상호 불신을 없애며 서로간 유대감을 가져야 한다"라면서 "우리들이 광장에 텐트치고 사는 자체가 그 어떤 집회시위보다 더 효과적인 무언의 시위"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삶이) 이 땅의 최저층의 서민을 위한 요원의 불길이 되어 이 나라 최대 당면과제인 빈부격차, 양극화 해소에 일익을 담당하자는 작은 사명감이 있다. 우리 서로 분발하자. 다시금 고인의 명복을 삼갑니다"라고 추도사를 마무리했다.
이동현 활동가는 "정씨는 노태우씨가 민생치안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시행한 '범죄와의 전쟁'때 집이 없다는 이유로 깡패 취급을 받으며 노숙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면서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건 국가가 노숙인들을 대하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이어 "홈리스는 여름과 겨울에 많이 죽는다. 날씨로부터 보호 받지 못하는 삶을 사는 것"이라면서 "지난해에도 거리와 시설, 쪽방, 고시원 등 열악한 거처에서 삶을 마감한 이들이 395명에 달했다. 이들을 위한 독립 주거 지원이 확대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아래는 정 아무개씨가 쓴 추도사 전문.
일주일 전쯤 구 헌혈의 집 한쪽 끝에 조용히 텐트치고 지내던 얼굴도 모르는 우리 옆의 형제가 이번 추위속 몇일 전 갑자기 운명을 달리하여 남의 일 같지 않아 너무도 마음이 착잡할 뿐입니다.
광장에 텐트치고 열악한 환경속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도 이런 상황이 없다 장담할 수 없기에 이분의 운명을 추모하여 우리 각자 서로 마음가짐을 다잡는 계기로 삼읍시다. 세계 10대 경제국가 선진국으로 나라는 부자고 서민은 가난한 세계 최상위 빈부격차 양극화 나라에 가난은 나라도 구제못한다는 거짓말은 허구일 뿐입니다. 우리 노숙인들은 그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생활하다 부자만을 위한 나라 정책과 제도에 희생양이 되어 지금의 처지에 내몰린 것입니다.
노숙생활이 결코 우리들이 나태하고 게을러 된 내탓만이 아니라 나라의 책임이 더 큰 것이기에 비록 구차한 생활이라도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어서 우리들의 권리를 주장해 우리들에게 주어진 복지 지원을 최대한 당당히 받아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각자는 환경에 휘둘려 서로 위하지는 못할망정 옆의 사람 물건에 손대는 것만은 절대 삼가해 상호 불신을 없애며 서로간 유대감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들이 광장에 텐트치고 사는 자체가 그 어떤 집회시위보다 더 효과적인 무언의 시위이기 때문에 우리 노숙인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이 땅의 최저층의 서민을 위한 요원의 불길이 되어 이 나라 최대 당면과제인 빈부격차, 양극화 해소에 일익을 담당하자는 작은 사명감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서로 분발합시다. 다시금 고인의 명복을 삼가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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