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인도 주행 못하는 韓 배달로봇..규제 풀고 기업-고객 매칭 절실
IFR에 따르면 글로벌 로봇 시장은 연평균 32%씩 성장해 2025년 1772억달러(약 211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산업용 로봇 시장의 경우 매년 14%씩 성장하고 있고 올해는 63만여대의 산업용 로봇이 판매될 것으로 보인다. 서비스용 로봇은 더 빠른 성장세가 예상된다. 가정용 서비스 로봇 시장은 2019년 46억달러(약 5조4100억원)에서 올해 115억달러(약 13조5000억원)로 연평균 35.7%, 전문 서비스 로봇은 126억달러(약 14조8300억원)에서 380억달러(약 44조7450억원)로 매년 평균 44.5% 성장할 전망이다.
급성장하는 글로벌 로봇 시장에서 우리나라 위상은 높다. 한국은 제조 현장에서 근로자 1만명당 932대 로봇을 사용해 로봇 밀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자동화된 상위 5개국’에는 싱가포르, 일본, 독일, 스웨덴을 포함해 한국이 매년 이름을 올린다. 밀턴 게리 IFR 회장은 “한국은 일본, 중국, 미국에 이어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로봇 시장”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로봇 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아직 미미한 편이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로봇 기업의 총 매출은 5조4736억원, 생산 규모는 5조280억원으로 같은 해 산업용 로봇 세계 1위 기업 일본 ‘화낙(FANUC)’ 한 곳의 매출(5조5455억원)에도 못 미친다.
로봇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각종 정부 규제가 로봇 산업의 최대 걸림돌이라고 토로한다. 도로교통법, 생활물류법,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가로막힌 자율주행 배달 로봇이 대표적이다. 국내 배달 로봇 시장은 우아한형제들, 뉴빌리티 등 스타트업뿐 아니라 LG전자, KT 등 대기업까지 경쟁에 나선 상태다. 그럼에도 규제 혁신 속도는 늦다.
예컨대 국내에서 배달 로봇은 차도나 인도에서 주행할 수 없다. 도로는 자동차나 말이 아니라 못 가고 인도는 사람이 아니어서 못 달린다. 생활물류법상 배달 로봇은 운송 수단으로도 분류되지 않는다. 그래서 배달 로봇이 야외에서 운행을 하려면 사람이 반드시 동행해야 한다. 자율주행 로봇에 달린 카메라에 행인이 찍히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에 해당한다. 일부 업체는 법망을 피하려고 자동차용 블랙박스를 달아 주행 테스트에 나서는 편법을 쓰기도 한다.
기업들이 어렵게 로봇을 만들더라도 밖에서 달리지도, 데이터 수집을 하지도 못하니 개발에 차질이 생긴다. 김병수 로보티즈 대표는 “행인과 사물을 감지하고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는 기술이 마련돼 있는데도 단지 규제 때문에 상용화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지난해 4월 정부가 부처 합동으로 ‘2021년 로봇 산업 선제적 규제 혁신 로드맵’을 내놓고 2025년까지 배달 로봇의 보도 통행을 허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아직 로봇의 도로 주행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규제 샌드박스 실증특례를 받은 경우에만 일부 가능하다. 국내 기업들이 규제가 풀리기만 기다리는 사이 상용화 시기도 조금씩 미뤄지는 상황이다.
▷규제 완화 시급…대체 일자리 창출
전문가들은 글로벌 로봇 시장에서 국내 업체가 경쟁력을 높이려면 정부가 발 벗고 나서 규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배달 로봇 사례처럼 서비스 로봇 분야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거세다.
정지혜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선임연구원은 “서비스 로봇은 새로운 로봇이 출시될 때마다 법의 영역 밖에 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사용 자체가 불법인 사례가 많다. 매번 일일이 규제 샌드박스 특례를 신청하고 적용받는 데는 한계가 있다. 서비스 로봇 기업이 많이 등장하는 만큼 이 같은 규제를 시장 상황에 맞게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이미 2016년 버지니아주, 워싱턴DC, 펜실베이니아주 등에서 배달 로봇을 운송 수단을 넘어 ‘보행자’로 규정하고 배달 로봇 주행을 허가했다. 최근에는 ‘러시아의 구글’로 불리는 얀덱스가 한국 지사를 설립하며 한국 배달 시장 공략에 나섰다. 업계 관계자는 “얀덱스코리아가 지난해 말 한국 시장에 설립된 이후 쿠팡이츠 등 한국 배달 앱과 접촉 중인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일본 역시 배달 로봇이 도로를 주행할 수 있도록 법 개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시적인 규제 샌드박스 위주로만 논의가 이뤄지는 한국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규제를 완화하는 ‘톱다운’ 과제가 해결됐다면 기업 단위 판로를 개척하는 ‘보텀업’ 지원도 필요하다. 잘 만든 로봇도 실제 현장에서 쓰임새가 알려져 보급돼야 의미가 있다는 것. 하지만 국내 로봇 기업 대부분이 자금력과 영업 노하우가 부족한 스타트업, 중소기업이라 판로 개척이 쉽지 않다.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국내 로봇 기업 2508개 중 96.2%가 중소기업이다. 매출이 10억원 미만인 소규모 사업체도 61.5%로 나타나 절반을 넘는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 관계자는 “로봇은 연구개발(R&D) 부문에서 주로 투자가 이뤄진다. 하지만 좋은 기술을 개발해놓고도 로봇 판매처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수요자와 공급자 사이를 연결하고 지원하는 것도 기술 개발만큼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례로 로봇 스타트업 ‘알피’는 사람 대신 건물 외벽에 벽화를 그리는 로봇을 개발하고도 판로를 개척하지 못해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은 대표 사례다. 화력발전소 굴뚝 등 사고 위험이 높은 현장에서 로봇을 이용해 건물 외벽을 칠하려는 수요가 있었지만 알피 제품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탓이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 등 외부 기관 지원을 받아서야 비로소 판로를 찾을 수 있었고 로봇 쓰임새가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해외 진출까지 성공했다.
A협동 로봇 제조 기업 관계자는 “로봇은 결국 고객사 수요에 맞춰 제작해야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선뜻 막대한 비용을 들여 로봇을 도입하기 쉽지 않다”며 “정부가 주도적으로 로봇 업체와 수요처를 매칭해주는 한편 로봇을 도입하는 기업에 비용을 지원하는 식으로 판로 개척을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봇 보급으로 사라지는 일자리를 대체할 새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 역시 숙제다. 글로벌 경제 전망 업체 옥스퍼드이코노믹스는 2030년까지 전 세계 2000만개 제조업 일자리가 로봇으로 대체될 것으로 봤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뺏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대표 산업으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 자동화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면 정부가 로봇을 비롯한 새로운 고부가가치 산업을 적극적으로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다운 기자, 윤은별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43호 (2022.01.19~2022.01.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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