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배추 한 통으로 이렇게나 근사한 요리라니
비건 음식은 맛이 없고, 만들기 까다롭다? 비건 음식에 대한 편견을 깨주는 다양한 비건 집밥 요리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김소라 기자]
날씨가 추워지면 친구들에게서 비슷한 내용의 안부 연락이 온다. 장을 보다가 알배추를 봤는데, 겨울의 어느 날에 내가 해주었던 배추찜이 생각난다는 것이다.
▲ 배추찜과 배추된장국 나 스스로에게 근사한 끼니를 먹이고 싶을 때에도 배추찜은 단골 손님이다. 알배추 반통은 찜으로 만들고 반통은 된장국에 넣어 끓여서 다채로운 배추 밥상을 만들었다. |
ⓒ 김소라 |
집에 손님을 초대했을 때 가장 즐겨하는 요리 중 하나가 배추찜이다. 겨울 제철 채소는 가성비가 좋다. 무나 배추 같이 김장에 쓰이는 채소는 크기가 큼직한데 보관하기도 쉽고 온갖 요리법으로 음식을 할 수 있다. 국부터 조림, 볶음, 찜, 구이, 전 그리고 김치까지 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만능 채소다.
배추찜은 개인적인 추억이 담긴 음식이다. 옛 애인의 어머니가 맛보여준 요리였는데, 이제는 지나간 인연이 되었지만 그분이 대접해준 요리만큼은 오래도록 나에게 남아 있다. 다른 사람의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별미를 맛보는 것은 레스토랑에서 특별한 음식을 먹어보는 것과는 다른 매력과 즐거움이 있다.
당시에도 나는 비건을 지향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채식을 하는 나를 고려하여 평소에 넣던 고기는 빼고 만들어 보았다고 일러주셨다. "그래도 굴소스는 넣었다. 괜찮지?" 하는 물음에 어색한 미소를 지었던 기억이 난다.
고기는 물론 생선이나 우유, 계란도 먹지 않는 비건은 소스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 굴소스는 말 그대로 굴을 넣어 만든 소스이기 때문에 비건이 아니다. 시판의 걸쭉한 소스 대부분에는 우유가 들어간다(소스를 걸쭉하게 만드는 '루'에 버터가 쓰인다). 간장에도 소고기 조미가 들어가는 경우가 대다수이니, 채식을 하는 사람이 직접 만든 요리가 아니면 일단 의심을 하는 건 슬프게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치킨에는 맥주, 삼겹살에 소주라는 공식이 탄탄한 한국에서 "저는 고기를 먹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것은 여간 멋쩍은 일이 아니다. 특히 처음 보는 사람들과 모임을 한 후 분위기 좋게 뒤풀이 장소로 이동할 때 내가 채식주의자임을 이야기하는 타이밍을 찾기란 쉽지 않다.
서로의 가치관과 생활양식에 관해 충분히 대화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깐깐한 사람'으로 비춰질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조용히 기본 안주로 나오는 싸구려 과자만 집어먹다 나오거나 맨밥에 쌈장을 비벼 먹는 일이 일상인 시절도 있었다.
어려운 사람, 특히 '어른'이 직접 요리를 해서 대접을 해줄 때에는 말 그대로 심란하다. 고기가 귀한 시절을 통과한 세대의 사람들이 나에게 호의를 표현하고자 할 때 내가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는 적절한 리액션은 무엇일지 고민하게 된다.
대접을 받을 때에 덩어리 고기가 들어 있지 않은 음식이라면 상황에 따라 먹는 시늉을 할 때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굴소스로 맛을 낸 배추찜 앞에서 잠시 고민했다. 애인의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이었고, 잘 보이고 싶었다. 훗날 내 비건 생활에 관해 안전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라면서 그날만큼은 감사한 마음으로 접시를 비웠다. 그것이 나의 씁쓸한 최선이었다.
▲ 겨울철 손님 대접용으로 즐겨 하는 비건 배추찜 찌개와 한 두개의 밑반찬 가운데에 배추찜을 놓으니 메인요리로서의 존재감을 톡톡히 발휘한다. 앙념에 붉은 계열의 채소를 다져 넣으면 먹음직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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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서는 배추찜을 비건화 하여 만들어보았다. 비건이 아닌 음식을 먹어야 할 때마다 '비건으로 해도 거뜬하게 만들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배추찜도 다르지 않았다.
굴소스가 들어가는 음식은 대부분 간장과 설탕으로 대체하여 맛을 낼 수 있다. 크림소스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두유와 뉴트리셔널 이스트를 상비하라고 권한다. 우유나 생크림 대신 두유를, 치즈 대신 뉴트리셔널 이스트를 넣으면 꾸덕하고 고소한 맛을 구현할 수 있다.
요즘에는 식물성 조미료가 동네 편의점에도 입점이 되어 있으니 비건요리는 접근성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MSG에 기대어 요리를 하던 사람이었더라도 식물성 조미료를 쓰겠노라고 조금만 마음을 내면 얼마든지 비건으로 요리를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코로나19 방역강화가 길어지면서 소규모로 집에 모여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비건으로 손님 대접하기, 어렵지 않다. 남은 겨울에는 제철 채소 배추로 간단하지만 성의가 느껴지는 배추찜을 만들어 소중한 사람을 대접해보길 바란다. 착취 없는 밥상이 만들어주는 선하고 건강한 기분도 함께 느끼면서 말이다.
참 쉬운 비건배추찜 레시피
준비물 : 알배추, 당근 1/3개, 간장, 소금, 설탕, 다진마늘, 참기름
Tip 1) 당근은 먹음직스러운 비주얼을 위해 넣는 경향이 있다. 붉은 계열의 파프리카를 다져서 넣으면 풍미가 더욱 좋은데, 주머니 사정에 따라 색깔을 내는 채소를 달리하거나 종류를 늘려도 좋다.
1. 알배추 밑둥에 칼집을 낸 후 손으로 찢어 반으로 가른다.
2. 넉넉한 크기의 냄비에 알배추 반통을 5분간 찐다.
3. 배추를 찌는 동안 양념을 만든다 : 당근 1/3개를 다진다. 간장 3큰술, 소금 1/2큰술, 설탕 2큰술, 다진마늘 1/2큰술, 물 4큰술을 넣어 섞은 뒤 다진 당근과 함께 후라이팬에 중불로 끓인다.
4. 당근이 익을 정도로 살짝 끓인 소스에 찐배추를 넣고 앞뒤로 뒤집어가며 소스가 스며들게 한다. 너무 오래 끓여 배추가 푹 익으면 모양이 뭉개질 수 있으므로 약불로 가볍게 끓여준다.
5. 접시에 배추를 먼저 담고, 배춧잎 사이사이에 소스를 부은 후 참기름을 몇방울 떨어뜨린다. 먹기 좋게 가위로 자른다.
Tip 2) 취향에 따라 들깨가루를 추가로 넣으면 색다른 요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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