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와 신뢰조치' 깬다는 김정은..지지율 폭락 바이든 선택지는

박현주 2022. 1. 20.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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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진행 중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EPA=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을 향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중단 등 그간 취해온 모라토리엄을 파기할 수 있다고 위협하며 북‧미 관계도 파고를 맞이하게 됐다. 그간 다른 현안에 우선순위를 두고 북핵 문제를 사실상 방치해온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이 먼저 견제구를 날린 셈이다.


北 “신뢰구축 조치 전면 재고”


북한은 19일 김 위원장 주재로 노동당 중앙위 정치국회의를 열고 “우리가 선결적으로, 주동적으로 취하였던 신뢰구축조치들을 전면 재고하고 잠정중지하였던 모든 활동들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신속히 검토해볼 데 대한 지시를 해당 부문에 포치하였다”고 밝혔다고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이 20일 보도했다. 북한이 언급한 신뢰구축조치는 모라토리엄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바이든 행정부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이벤트성 접근도 아닌 ‘정교한 대북 관여’를 택했다면서도 적극적 행동을 보이지는 않았다. “언제 어디서든 만나 무슨 이야기든 하자”며 조건 없는 대화를 제안했지만, 북한이 이에 응하지 않자 상황은 거기서 멈췄다. 북한이 바이든 대통령 취임 1주년(1월 20일)에 맞춰 대미 대결 메시지를 낸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은 “현 미 행정부는 우리의 자위권을 거세하기 위한 책동에 집요하게 매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의 행동 변화 없이는 제재를 확고히 유지한다’는 원칙에 따라 최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독자 제재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추가 조치 등에 나선 걸 염두에 둔 셈이다.


안보리 회의 직전 나온 美 비난


북한의 발표가 안보리 회의 직전 이뤄진 점도 주목할 만하다. 20일 오후 3시(현지시간, 한국시간 21일 오전 1시) 미국 등의 제안으로 열리는 안보리 비공개회의에서는 북한 탄도미사일 도발 관련 협의를 진행한다. 안보리 차원에서 북한 국적자들을 제재 명단에 추가로 올릴지도 여기서 논의할 전망이다.

21일에는 바이든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의 화상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미‧일은 최근 부쩍 대북 압박을 위한 공조를 강화하는 가운데 북한 문제도 정상회담 의제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든 직접 입장을 표명하게 된다는 뜻이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현재 북한 문제를 외교적 측면에서만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지지율은 폭락했고, 올가을 치러질 중간선거에 명운을 걸어야 한다.


美 중간선거 등 국내정치 변수


우선 북한이 핵실험이나 ICBM 시험발사를 강행할 경우 당장 선거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북한은 이날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인 광명성절(2월 16일, 올해 80주년)과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4월 15일, 올해 110주년)을 ‘성대히 경축’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이런 기념일들을 고강도 도발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이는 또 한국의 대선(3월 9일) 무렵이기도 하다. 북한이 ‘미국의 강경한 대북 정책’을 명분 삼아 고강도 도발을 하고 한국 대선에 ‘북풍’이 부는 것도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난감한 시나리오다. 최근 미 행정부 인사들과 만난 한 소식통은 “미국은 한국의 선거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보일까 극히 조심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렇다고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 관련 입장을 급선회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바이든 행정부 인사들은 대부분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고, 북한이 2012년 2‧29 합의를 어떻게 일방적으로 파기했는지 등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다. “나쁜 행동에 보상하면 안 된다”는 원칙을 직접 체득한 셈이다.

19일 노동당 중앙위 정치국 회의에서 발언 중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뉴스1

게다가 섣불리 대북 유화책으로 전환한다면 선거에서 오히려 상대 진영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비핵화와 관련해 북한이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는데, 모라토리엄 파기 위협에 양보한 게 될 수 있다. 결국 올해 북‧미 관계를 둘러싼 여건은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 양보하는 모습 안 보일 것”


김정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이번 발표는 북한이 실제 고강도 도발 재개를 염두에 두고 한‧미에 ‘보다 과감하게 양보하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지만, 지지율도 떨어지고 중간선거 전망도 낙관할 수 없는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정치적으로도 이에 상응해 양보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을 것”이라며 “조건 없이 대화하자는 기존의 입장을 반복하며 원론적 대응을 계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실제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재개할 경우 바이든 행정부가 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카드는 역시 제재 강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독자 제재는 물론이고 안보리 제재도 가능하다.

특히 2017년 12월 채택된 안보리 결의 2397호는 자동 추가 제재로 이어지는 ‘트리거 조항’을 담고 있다. “북한이 핵실험이나 ICBM 발사를 실시할 경우 안보리가 북한에 대한 유류(petroleum) 수출을 추가적으로 제한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결정한다”고 돼 있다. 현재 북한이 수입할 수 있는 유류는 연간 50만 배럴인데, 여기서 더 줄이거나 아예 전면 금지하는 게 추가 제한 조치가 될 수 있다.


고강도 도발시 유류 조이는 ‘자동 제재’


안보리 결의에서 ‘결정한다(decide)’고 표현한 내용은 구속력을 갖는 의무조항이다. 북한이 추가로 고강도 도발을 할 경우 결의 거부권을 갖고 있는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국이나 러시아도 자동 추가 제재를 막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이밖에 현재 연간 400만 배럴인 북한의 연간 원유 수입량 상한선을 줄이거나 인도주의와 민생을 목적으로 할 경우 제재를 적용하지 않도록 했던 예외 사항들을 축소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과 대립으로 치닫는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 이행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 역시 이런 틈을 간파하고 모라토리엄 파기 위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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