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강에서] 서울시의 소금 뿌리기
“1980년대 어느 날입니다. 청량리 588 사창가를 제자인 최일도 목사님과 함께 거닐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우리 앞에 소금을 뿌리는 아주머니가 나타났습니다. 나는 처음 보고 놀랐습니다만, 최 목사는 자주 당한 일이라며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소금 세례를 받게 되어 무슨 영문인지 알지 못했는데, 최 목사가 설명하기를 포주 아주머니가 다 그렇지는 않지만, 예수쟁이가 지나가면 재수가 없다고 액을 막으려고 하는 수단이라고 했습니다. 숱한 윤락 여성들의 방을 아들 같은 최 목사와 함께 찾아갔고 마음속 깊은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여인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눈물로 기도했던 지난날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최 목사가 용기 있게 헌신적으로 무의탁 노인들과 노숙인들과 직업여성 등 소외된 이웃들을 보살피는 일을 곁에서 오랜 세월 지켜보며 하나님이 보호해 주기만을 30년 넘도록 지금도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백세를 앞둔 주선애 장로회신학대 명예교수가 지난해 출간된 ‘밥퍼목사 최일도의 러브 스토리’에 쓴 추천사다. 한국YWCA연합회 회장을 역임한 1924년생 주 교수는 한국교회 최초의 여성 기독교 교육학 교수로 지금도 북한 이탈 주민과 은퇴 여선교사를 돕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주 교수는 최 목사의 책에 대해 “책을 추천하기보다 삶을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책을 넘어 현장에서 그의 삶을 직접 보길 원한다고도 했다. 주 교수는 “제가 할 일을 제자인 최 목사가 대신 해주어서 항상 기도 제목 1호였다”고 회고했다.
국민일보에 취재기자로 입사하면 수습기자 교육을 받는다. 대학을 졸업하고 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었으니 당장 기사를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기, 과장과 거짓말을 분별하기, 팩트 너머의 진실에 접근하기 등을 배운다. 그 귀한 교육의 시간을 쪼개 수습기자들은 서울 청량리역 인근의 ‘밥퍼나눔운동본부’를 찾아가곤 했다. 새벽부터 정성껏 쌀을 씻고 식재료를 다듬어 배식 준비를 한 뒤, 역시 새벽부터 굶주림 해결을 위해 청량리역 쌍굴다리 아래서부터 긴 줄로 늘어선 거리의 사람들에게 허리를 낮추고 눈을 맞추며 한 끼를 건넨다. 아직도 이 땅에 밥 굶는 이들이 이토록 많다는 현실을 눈으로 보며 앞으로 어떤 기사를 써야 하는지 각자 돌아보는 기회로 삼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세금을 가지고 도대체 뭐 하는 거냐’란 분통 대신, 쌍굴다리 벽에 어떤 이가 남긴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 문구를 되뇌곤 했다.
최 목사가 대표로 있는 다일공동체는 밥퍼뿐만 아니라 거리의 사람들을 대가 없이 치료하는 다일천사병원도 운영한다.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네팔 탄자니아 우간다 미국 캐나다 과테말라 등 해외 10개국 빈민가에서도 밥퍼와 빵퍼를 운영하며 하루 5000명 이상에게 매일 ‘오병이어’의 기적을 나누고 있다.
이런 최 목사에게 서울시는 표창장 대신 고발장을 보냈다. 동대문구가 건축을 허가한 다일공동체 증축 공사에서 서울시는 땅 소유자인 자신들의 사용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절차를 문제 삼았다. 최 목사는 “서울시와 동대문구 사이 공문 한 장만 오가면 된다고 알았는데 그것 없이, 또 서울시가 사전 통보 절차 없이 동대문경찰서에 고발장을 접수했다”고 말했다.
여당 소속 구청장과 야당 소속 시장의 관점이 다를 순 있지만, 밥상 앞에선 여야가 없고 좌우가 없다. 누가 생명을 살리느냐가 중요하다. 서울시가 다일공동체와 협의해 고발을 취하하기로 했다지만, 소외계층을 대하는 공무원들의 고압적 자세는 되돌아봐야 한다. 새벽 영하의 강추위 속에서 오늘도 곱은 손을 불어가며 한 생명이라도 살리고자 하는 봉사자들과 한 끼라도 얻고자 줄을 서는 이들을 찾아가 달라고 말하고 싶다. 소금을 뿌리는 대신에 말이다.
우성규 종교부 차장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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