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대선과 한국사회 지속가능성

2022. 1. 20.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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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성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선거는 축제다. 새로운 지도자를 기다리는, 새로운 정책을 기대하는, 새로운 살림살이를 갈망하는, 새로운 국가 비전을 꿈꾸는 축제다. 선거는 국민과 소통하며 세상에서 벌어진 온갖 현안의 답을 찾아나서는 과정이다. 선거가 민주주의 꽃인 까닭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의 꿈을 갖게 해주고 새롭게 펼쳐질 사회 질서에 대한 희망으로 가슴이 뛰기에 꽃이라 칭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현실은 축제는커녕 숙제로만 내던져진다. 그것도 감당하기 매우 어려운 숙제로 쌓여간다.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상황이다. 국민을 위해 정치가 존재하는 것이지 정치를 위해 국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 텐데 대체 무엇이 잘못됐기에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점점 더 척박한 상황으로 치닫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누가 덜 나쁜지 골라야 하는 씁쓸한 대선’ ‘미래 청사진이 안 보이는 대선’ ‘본질은 사라지고 가십성 공방이 판치는 이상한 대선’…. 이번 대선을 향해 쏟아내는 언론의 사설 제목이다. 대선을 형언하는 형용사가 ‘씁쓸한’ ‘안 보이는’ ‘이상한’ 같은 극히 부정적이고 회피적인 단어들로 이어진다. 표현은 달라도 이번 대선에 대한 언론의 총평은 대체로 이런 문구들의 연속이다. 과거에도 이러했는지 싶어 자료를 더듬어 보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선거에서 선심성 공약 경쟁은 축제의 조건으로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제시하는 공약들은 대부분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정책이 빈곤하다 보니 주장만 있거나, 해법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 마나 한 얘기 수준이다. 이벤트만 요란한 재주꾼들의 경연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어떤 미래 가치를 표방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을 걱정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이번 대선의 최대 화두는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이 돼야 할 것이다. 화두란 사회가 안고 있는 응축된 난제이자 출구 찾기의 의제다. 구조적인 측면에서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은 이미 오래전에 빨간 경고등이 켜져 있는 상태다. 구조적이란 말은 새로운 방향으로 되돌리기 좀처럼 쉽지 않은 고착된 문제가 내재돼 있다는 뜻이다. 출산율로 나타나는 인구 재생산을 비롯해 일자리, 연금, 건강보험으로 대표되는 사회경제적 재생산 구조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당장 연금 개혁을 하지 않으면 1990년생부터 국민연금을 한 푼도 못 받는다는 최근의 조사 결과가 다음을 기약할 수 없음을 극명하게 말해준다.

이런 구조적인 상황에서 이번 대선은 ‘한국사회, 지속가능한가’의 질문을 다급하게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대선 후보들이 내놓는 선거 정책은 돈 퍼주고 선심 쓰겠다는 것 이외에 무엇이 있느냐고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수십조, 수백조원의 공약이 남발된다. 움직이는 곳마다 쏟아내는 개발 공약은 현기증이 날 정도다. 포퓰리즘도 모자라 포퓰리즘의 융단 폭격이라고들 한다. 미래가 암울해 보이는 이유다. 사실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이런 공약을 믿을지도 의심스럽다. 정작 다음 세대를 위한 개혁 공약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번 대선은 더 저급하고 더 혼탁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대선의 과정이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에 절망의 벽을 더 높게 쌓는다.

전에는 시민단체들이 앞장서 후보들의 정책 검증을 했다.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작동하던 정책 검증의 시도가 이번에는 놀랍게도 미미하다. 그동안 시민사회가 과도하게 정치화되면서 국민 신뢰가 떨어진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아무리 엄격한 정책 검증을 한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신뢰를 잃은 검증이 지지를 얻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축제이어야 할 대선이 숙제의 덩어리로 굳어지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틀 안에서 5년마다 치러지는 대선은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생사를 걸고 싸우는 전쟁이나 다름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더 심각해지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질 나쁜 악순환으로 점철된다. 권력 구조를 바꾸는 개헌 논의가 요청되는 까닭이다. 이번 대선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은 권력의 균형적 분산과 협치의 정치를 만드는 개헌 논의를 더 늦추지 말고 시작하라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대한민국, 더 나은 미래를 만들고자 한다면 말이다.

박길성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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