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야 제맛!.. 극한의 겨울을 즐긴다
볼을 에는 동장군의 기세가 매섭다. 뜨끈한 구들장이 생각나지만 이한치한(以寒治寒)이 떠오른다. 이럴 때일수록 매서운 바람을 가르며 이색 겨울 레포츠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얼음 위에서 하룻밤 머물거나 얼어붙은 빙벽을 오르면서 또는 눈길을 걸으면서 추위를 떨칠 수 있다.
강원도 인제군 오지인 A계곡이 백패커들의 발길을 끌어들인다. 추운 계절이어야만 즐길 수 있는 얼음 트레킹과 빙상 백패킹(빙박)을 하려는 이들이다. 등에 거대한 배낭을 짊어진 이들이 얼음왕국으로 향한다. 춥지 않은 계절엔 시원하게 흘러내릴 계곡이 꽁꽁 얼어 있다. 여름철에는 수심이 깊어서 들어갈 엄두도 못 낼 곳을 걸어볼 수 있는 특권도 누린다.
수심이 깊지 않고 얼음이 꽁꽁 얼어붙은 곳이 하루 묵어갈 자리다. 겨울철 계곡에선 해가 일찍 넘어간다. 서둘러 하룻밤 지낼 보금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텐트를 치고 발포매트 등으로 든든하게 ‘바닥 공사’를 한 뒤 침낭을 펼쳐 ‘내 집 마련’을 끝낸다.
해가 넘어가면 기온이 뚝뚝 떨어진다. 계곡에서 불어오는 골바람까지 더해져 수은주는 급강하한다. 조용히 사색하는 시간이 저절로 주어진다.
어둠이 깔리면 맑은 하늘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별이 고개를 내민다. 불을 밝힌 텐트가 얼음에 반영되면서 예술적인 풍경을 빚어낸다. 형형색색 얼음 위 궁전이다. 투명한 얼음 아래 물속에서 물고기가 유영할 것이니 수족관 위에서 자는 듯한 낭만의 밤이다.
눈 쌓인 길을 걷다가 내리막이 나타나면 썰매를 타는 눈썰매 트레킹도 겨울철 인기다.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만항재(1330m)에서 출발하는 운탄고도(運炭古道) 썰매 트레킹이 대표적이다. 운탄고도란 고한읍의 백운산(1426.6m)과 두위봉(1470.8m) 7~8부 능선 해발 1000m 안팎을 따라 이어진 임도로, 중국의 차마고도에 빗댄 이름이다.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석탄을 캐서 운반하던 트럭이 다니던 길이었다.
겨울 운탄고도의 가장 큰 즐거움은 내리막에서 썰매 타기다. 만항재에서 시작해 백운산과 두위봉을 거쳐 새비재(850m)로 연결되는 40㎞ 코스는 1박 2일을 걸어야 하는 긴 코스다. 초입부는 고속도로처럼 뻗어 있는 평평한 눈길이다. 극지탐험가처럼 썰매에 배낭을 올려서 끌고 간다.
내리막을 만나면 썰매 위에 몸을 올린다. 속도감에 처음엔 좀 당황하지만 익숙해지면 스릴을 온몸으로 즐기게 된다. 경사가 다소 완만하면 등산 스틱을 이용해 힘껏 밀어준다.
백운산 주변에 이르면 나무마다 하얀 서리꽃이 장관이다. 시리도록 맑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낙엽송에 달라붙은 상고대가 환상적인 풍경을 펼쳐놓는 설국(雪國)이다.
낙엽송 숲 가운데에 형성된 작은 연못 ‘도롱이못’ 설경도 빼어나다. 지름 50여m 연못은 1970년대 탄광 갱도가 내려앉아 생겼다고 전해진다. 광부 가족들은 연못에 올라 도롱뇽의 생사를 확인했다고 한다. 활발하게 움직이는 도롱뇽을 보면서 가장이 무사할 것이라 믿었다.
바로 옆 낙엽송 아래 텐트를 칠 수 있는 너른 평지는 적설기 야영지로 손꼽힌다. 다음 날 아침 텐트 문을 열면 하얀 설국이 펼쳐진다. 파란 하늘까지 더해져 최고의 풍경을 만든다.
빙벽 등반은 한계를 뛰어넘는 정신적 만족감을 주는 운동으로 각광받고 있다. 얼음을 오르는 묘미, 무언가 해냈다는 뿌듯함, 정복했다는 성취감 등이 생활에 원동력과 활력을 불어넣는다.
영하의 추위가 이어지면서 절벽이 거대한 얼음벽으로 변한 곳이 많다. 겨울등반의 꽃이라 불리는 빙벽등반.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거대한 수직빙벽을 오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빙벽을 외줄에 의지한 채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면 한겨울 추위도 저만치 물러난다.
하지만 빙벽등반은 위험한 레포츠다. 한순간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빙벽 등반 때 발로 얼음을 찍는 키킹 동작에선 일반 산악 등반과 다른 노하우가 필요하다. 빙벽은 완전 결빙 상태를 확인하고 올라야 하며 헬멧 빙벽화 안전벨트 등 보조 장비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 낙빙은 빙벽 등반에서 유념해야 할 사항이다.
글·사진=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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