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학 녹취록' 일부 공개돼.. 50억 클럽·성남시 공무원 상대 로비 정황 담겨

최석진 2022. 1. 19.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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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 천화동인 5호 소유주 정영학 회계사(왼쪽부터).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검찰의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사건 수사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정영학 녹취록' 내용 일부가 19일 공개됐다.

언론을 통해 공개된 녹취록 내용 중에는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한 이른바 '50억 클럽' 멤버들이나 성남시 소속으로 추정되는 공무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인 정황과 분양수익을 로비 자금으로 어떻게 분배할지를 논의한 대화 등이 포함돼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이날 한국일보는 화천대유 자회사인 천화동인 5호 소유주 정영학 회계사가 2019년 12월 23일부터 2020년 7월 27일까지 김씨와 나눈 대화를 녹음한 녹취록을 입수해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김씨는 2020년 4월 4일 정씨와 대화하면서 "병채(곽병채) 아버지(곽상도)는 돈 달라고 그래. 병채 통해서"라며 곽 전 의원이 화천대유에서 근무한 아들 곽병채씨를 통해 금품을 달라고 요구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김씨가 병채씨에게 '아버지가 무엇을 달라느냐'고 묻자 병채씨가 '아버지한테 주기로 했던 돈 어떻게 하실 건지'라고 답했고, 이에 김씨가 '한꺼번에 주면 어떻게 하느냐. 그러면 양 전무보다 많으니 한 서너 차례 잘라서 너를 통해서 줘야지'라고 답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보다 앞선 2020년 3월 24일 녹취록에서 김씨는 성과급 명목으로 줄 돈에 대해 정씨에게 설명하면서 '양 전무에게는 50억원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곽 전 의원에게 줄 돈이 화천대유 임원인 양 전무보다 많다고 언급했다는 점에서 녹취록 내용대로라면 김씨가 곽 전 의원에게 최소 50억원 이상을 전달할 생각이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날 보도와 관련 곽 전 의원의 변호인은 "김만배 녹취록 중 곽 전 의원 관련 부분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은 검찰의 광범위하고 철저한 수사 과정에서 해명되는 중이고, 작년 법원의 영장심사에서도 위 녹취록의 문제점이 확인됐다"며 "앞으로도 곽 전 의원의 무고함을 밝히도록 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날 공개된 녹취록 내용에는 이른바 '50억 클럽'을 상대로 한 김씨의 로비 정황도 비교적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김씨가 최재경·박영수·곽상도·김수남·홍선근·권순일 등 6명의 실명을 거론하며 '50개가 몇 개냐 쳐볼게'라고 정씨에게 얘기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또 김씨는 성남시의회 쪽 인사 2명에게 각 15억원과 5억원씩을 주겠다는 취지의 발언과, 밤마다 성남시 공무원들을 만나고 주말에는 시청 사람들과 골프를 하는 등 성남시 관계자들을 접대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녹취록에는 약 420억원 정도로 예상되는 A12 블록 분양수익을 '50억 클럽' 인사들과 성남시의회 관계자, 박 전 특검의 인척 등에게 어떻게 분배할지에 대한 계획을 비교적 상세하게 정씨에게 얘기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김씨는 자신이 공무원들을 상대로 벌인 로비의 효과가 있는지, 즉 공무원들이 실제 대장동 사업에 협조하고 있는지를 곽 전 의원의 아들 병채씨를 통해 보고받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양철한) 심리로 진행되고 있는 대장동 사건 재판에서도 '정영학 녹취록'은 뜨거운 감자다.

공판준비기일 때부터 김씨를 비롯한 피고인 측은 녹취록의 등사는 물론, 녹음파일 원본에 대한 복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녹취파일에 다른 사람의 대화 내용이나 공소사실과 관련이 없는 내용들까지 함께 담겨 있어서 유출될 경우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며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녹취파일 분량이 상당한 상황에서 열람을 허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녹취록의 열람·등사에 검찰이 적극 협조해줄 것을 당부했고, 결국 원본 녹음파일에 대한 복사에 응할 것을 명했다.

검찰은 피고인들의 공소사실을 뒷받침할 핵심증거로 녹취록을 제시한 상태지만 김씨나 함께 재판을 받고 있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남욱 변호사, 정민용 변호사 등은 모두 배임이나 뇌물 관련 혐의를 부인하면서 '정영학 녹취록'에 담긴 대화 내용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난 17일 진행된 공판기일에서 재판부도 '정영학 녹취록'만으로는 공소사실도 피고인들의 결백도 입증되기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재판부는 "공소사실과 여러 쟁점을 고려해볼 때 녹취록이나 여러 관계자의 대화만 갖고 공소사실이 입증되거나 피고인의 결백이 입증된다고 하긴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객관적인 증거에 대한 변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검찰은 녹취록 내용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것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서울중앙지검은 기자단에 보낸 입장문을 통해 "대장동 개발의혹 사건의 재판에서 검찰이 피고인 측에 증거기록 열람·등사를 해준 후 증거기록의 구체적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는 상황이 발생하여 이와 관련한 우려를 전달드린다"고 밝혔다.

중앙지검은 "형사사건의 조서, 녹취록, 녹음파일 등이 그 맥락과 사실관계에 대한 정확한 확인없이 외부로 유출될 경우, 관련 재판과 진행 중인 수사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고, 사건관계인의 명예와 사생활에 대한 침해 우려도 있다"며 "그와 같은 점 때문에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열람등사한 자료를 재판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유출'하는 경우 형사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검찰은 기소 이후 법에 따라 증거기록을 피고인측에 열람·등사 해주고 있으며, 법원의 결정에 따라 녹음파일도 제공됐다"며 "앞으로도 검찰은 언론에 알려진 국민적 의혹과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의혹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치우침 없이 수사를 계속 진행하겠다"고 덧붙였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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