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도 청소하는 환경미화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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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린 기자]
▲ 금 시인이 떠오르는 시상을 정리하고 있다. |
ⓒ 김예린 |
'비움', 금동건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의 제목이다. 그동안 채우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던 삶을 돌아보고, 비움을 통해 마음에 여유를 주자는 의미에서 그렇게 지었다. 이는 음식물 쓰레기를 청소하는 그의 일과도 닮았다. 새 쓰레기를 담기 위해서는 가득 찬 쓰레기통을 비워야 하듯, 인생에 새로운 의미를 담기 위해 한차례 비우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금동건 시인을 지난해 11월 만났다.
금동건 시인은 25년 차 환경미화원이다. 그는 매일 오후 1시 30분부터 밤 11시까지 김해 전역의 병원, 학교, 상가 등을 돌며 음식물 쓰레기통을 비운다. 직접 운전을 해 담당 구역을 돌며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 힘들 법도 하지만, 그는 '환경미화원 일이 천직'이라며 웃는다.
"이 일을 하면서 제가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본인이 집에서 만든 음식물 쓰레기도 더럽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일하러 가서 쓰레기통을 딱 열었을 때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나면 거기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껴요."
그가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기 시작한 건 1996년 12월 27일이다.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할 만큼 그의 인생에선 천직을 만난 특별한 날이다. 당시 그는 구안와사를 겪고 45kg까지 몸무게가 줄어든 상태였다. 다행히 병은 나았지만, 몸은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상태였다.
"그래도 먹고살아야 하니 일을 해야 했죠.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실제 여러 일을 하기도 했지만, 잘 맞지 않았어요. 그러던 중 아내가 환경미화원 일을 권했습니다. 지금 떠올려보면 새벽 2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일을 했으니 노동 강도가 약한 편이 아니었는데, 힘들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청소 일을 한 지 20년이 넘었죠. 이제는 단순히 쓰레기통을 비우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요양병원 쓰레기통에 음식물이 평소보다 적으면 어르신들이 적게 드셨나, 하는 걱정을 할 정도가 됐습니다."
▲ 금 시인이 매일 떠오르는 시를 써놓은 습작노트. |
ⓒ 김예린 |
"시 쓰기는 청소만큼이나 제겐 자연스러운 일과입니다. 하루하루 일하면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다 주제가 될 수 있고, 그때의 느낌을 기록합니다. 원래 일기를 쓰던 습관에서 시 쓰기가 시작되어서 날마다 쓰는 게 당연한 일상이 된 것 같아요. 습작 노트에 날짜를 적는 것도 일기 쓰던 습관이 남아 있는 거죠."
금 시인이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건 10살 때였다. 경북 안동 출신이었던 그는 형과 함께 부산으로 유학했다. 그때 이사하면서 헤어졌던 친구에게 안부를 묻기 위해 쓴 편지가 금 시인의 첫 글이었던 셈이다.
"급하게 전학하는 바람에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인사를 못 했습니다. 그게 너무 아쉬워서 편지를 쓰기 시작해, 3년 정도 보냈어요. 단 한 번도 답장을 받지 못하다가 답장이 한 통 왔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열어 보니 여자애 오빠가 편지 그만 보내라고 적어 보낸 것이었죠. 그 뒤 그 친구에게 편지 쓰는 것은 멈추고, 대신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 일기를 압축하고 함축해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중 6편의 시를 월간 '시사문단'에 보내 2006년 등단했다. 이어 2007년 그동안 적어둔 수백 편의 시 중 고르고 고른 작품들로 첫 시집 '자갈치의 아침'을 냈다. 환경미화원이라는 직업 옆에 시인이라는 두 글자가 더해진 것이다.
"시를 쓰고 있으면 반성할 수 있습니다. 그날 하루를 돌이켜보고 저도 함께 돌아볼 수 있어요. 그러다 보면 배우는 것도 많습니다. 그게 시 쓰기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처음에 시집을 냈을 땐, 주변에서 '저러다 말겠지' 하는 말도 들었어요. 무슨 청소부가 시를 쓰냐, 하는 의미였죠."
▲ 금 시인이 그동안 발표한 시집들. |
ⓒ 김예린 |
환경미화원이자 시인인 특별한 사연 덕에 금 시인은 다양한 지역방송은 물론, 2020년 12월에는 tvN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청소부 시인'으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일하다 보면 알아보시는 분들이 계세요. 일부러 오셔서 커피나 껌 같은 것도 주고 가십니다. 마음이 정말 고맙죠. 그렇게 받은 것들은 먹기 아까워서 그냥 보관해두고 있어요."
금 시인은 그런 관심이 그저 반갑다. 2007년 부산일보에서 처음 인터뷰 요청이 왔을 때만 해도 '나 같은 사람 이야기가 무슨 기사가 될까'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주민이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에 나선다. 또, 얼마 전에는 금 시인의 이야기를 담은 독립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환경미화원이자 시인으로서의 자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힘이 된다면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그뿐만 아니라 2020년부터는 김해문인협회 부회장으로서 '찾아가는 백일장', '구지가 문학제' 등 김해의 지역 문학 행사 운영에 참여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김해문인협회에서는 매년 김해를 주제로 한 문집도 발간하고 있습니다. 저와 시인부터 소설가, 수필가 등이 김해의 풍경을 문학으로 담아내고 있죠. 이런 글들도 모이면 일기가 한 사람의 역사가 되듯, 나중에 지금의 김해를 담은 역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앞으로도 금 시인은 매일 음식쓰레기를 수거하며 시를 쓸 생각이다. 그는 "지금까지 그랬듯 욕심을 비워내고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여섯 번째 시집도 곧 만날 수 있을 거예요"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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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내용은 문화체육관광부와 경상남도, 김해시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김해도시문화센터 블로그에 중복 게재됩니다. https://blog.naver.com/ghcc_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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