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낳으면 바보' 히트친 그 영상..구독자 18만 유튜버 최재천

이지영 2022. 1. 19.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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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를 12일 서울 이화여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 동영상을 촬영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김상선 기자


“눈앞에 이익이 안 보이더라도 미친 척하고 꾸준히 한 힘인가 보다.”
‘유튜버 최재천’은 설레는 표정이었다. “구독자가 최근 두 달 새 10배 넘게 늘었다”며 “나도 놀랄 정도”라고 말했다.

동물학자인 최재천(68)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가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을 개설한 건 2020년 10월이다. 1년 넘도록 1만6000명에 머물렀던 구독자 수는 19일 현재 18만8000명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11월 23일 올린 동영상 ‘한국에서 애 낳으면 바보죠’가 화제가 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그동안 매주 한 개씩 꼬박꼬박 올렸던 70여 개 동영상까지 덩달아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지난 12일 서울 이화여대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유튜브 동영상에서 늘 배경으로 나오는 그 곳이다.

저출생 문제를 진화의 당연한 과정으로 해석해 화제를 일으킨 '최재천의 아마존' 동영상. [유튜브 캡처]


-유튜브는 왜 시작했나.
“2013년 제인 구달 박사와 함께 만든 생명다양성재단 운영을 위해서다. 연간 2억원 정도 운영비가 드는데, 1억씩 대기도 힘들었다. 이제 월급 받는 직원이 한 명밖에 안 남은 상황이다. 누군가 유튜브를 해서 그 수익으로 한번 운영해보라고 하더라. 곧 문 닫게 생겼는데 뭐를 못하겠나 싶어 시작했다.”

유튜브 제작은 콘텐트 기획ㆍ컨설팅 업체인 ‘휴먼밸류’의 도움을 받았다. ‘동물 얘기 좀 하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그걸로 될 일이 아니었다. 조회수ㆍ구독자 수가 몇천 수준을 좀처럼 넘지 못했다. 이후 네이버 지식인에 직접 답변을 다는 ‘내공왕 도전’ 등 갖가지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겼지만, 수익은 “아직 1원 한장 들어온 게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뭔가.
“뭐를 시작하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계속하는 성격이다. 개미 연구, 까치 연구도 수십 년씩 했고, 인도네시아 긴팔원숭이 연구도 16년째다. 어렸을 땐 아버지에게 ‘진득하지 못하다’는 꾸지람을 많이 들었는데, 학자로서의 삶은 꾸준히 버티는 삶이었다.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기 전에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기어코 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하는 데까지 하자는 마음이다.”

히트작인 ‘한국에서 애 낳으면 바보죠’는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의 조언을 듣고 만든 동영상이다. 그보다 먼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장 박사는 지난 8월 ‘지금까지 과학으로 밝혀낸 죽음에 관한 충격적인 사실들’ 동영상으로 ‘조회수 폭발’을 경험했다. 재미 위주의 가벼운 주제를 다뤘을 땐 없던 반응이었다. “진지한 구독자들이 제법 있는 것 같다”는 장 박사의 말을 듣고 그도 심각한 주제를 건드려보기로 했다. 그가 2005년부터 줄곧 주장해왔던 ‘저출생’ 문제였다. 합계출산율이 0.84명(2020년 통계)까지 추락한 현실을 그는 해결해야 할 문제 상황으로 보지 않는다. “지극히 당연한 진화적 적응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머릿수가 많아지면 환경 파괴 등의 문제도 심각해진다. 선진국들이 내 나라 사람 줄어든다고 각자 출생률 올리면 공멸하는 수밖에 없다. 답은 국경을 여는 거다. 많이 태어나는 곳에서 사람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최근 그가 유튜브에서 다루는 주제는 줄곧 무겁고 민감한 이야기다. ‘한국 정치가 답답한 이유’ ‘사교육과 공교육의 싸움’ ‘종교를 믿는 과학적인 이유’ 등 우리 사회 고질적인 갈등 요소를 그는 동물의 생태에 빗대 독창적으로 풀어낸다. “침팬지ㆍ하이에나ㆍ사슴 등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 사회를 보면 가장 큰 권력을 쥔 으뜸 수컷이 모든 걸 다 거머쥐지 않는다. 진화의 역사를 통해 적절하게 나눌 줄 아는 리더가 살아남는다”고 설명하는 식이다.

갈등 상황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철저히 동물학자스럽다. “갈등을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바로 사회성의 진화로 이어진다”면서 앞으로 한국 사회가 맞닥뜨릴 가장 큰 갈등으로 세대 갈등을 꼽았다.

-표면적으론 젠더 갈등이 심각해 보이는데.
“남녀는 그래도 자식을 낳고 살아야 된다는 점에서 언젠가는 어우러지게 돼있다. 세대 갈등은 훨씬 조정하기 힘든 갈등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진화의 과정에서 작정하고 고령화를 선택했다. 육아를 대신해줄 수 있는 조부모 세대의 존재는 젊은 세대들이 문명을 일으킬 수 있게 만들었다. 번식을 끝내고도 사는 동물은 사람이 유일하다. 그래서 세대 갈등 해법은 다른 동물에게 힌트를 얻을 수 없다.”

'최재천의 아마존' 구독자 10만명 돌파를 기념해 구독자 명칭을 정하는 모습. '재천이네 개미들'란 뜻에서 '재미들'로 결정됐다. [유튜브 캡처]


서울대ㆍ하버드대 등을 거치고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국립생태원 원장 등을 지낸 화려한 경력답게 삶에서 끄집어낸 이야기도 풍성하다. 1984∼1990년 하버드대 기숙사 사감을 지낸 그는 지난달 하버드생과 서울대생을 비교하는 동영상에서 20년간 하버드대의 비밀 입학사정관으로 활동했던 사실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가 다양한 직책을 소화해낼 수 있는 비법도 유튜브에서 공개했다. “해야할 일을 마감 1주일 전에 미리 끝내면 된다. 하버드 사감 시절 어느 학생에게 배운 방법이다. 미리 하는 리듬이 몸에 익은 뒤론 늘 여유가 있고 마음이 평안하다.”

그는 현재 민관 합동 ‘코로나19 일상회복지원위원회’ 공동위원장도 김부겸 총리와 함께 맡고 있다. 내친김에 도대체 언제 코로나19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물었다. 그는 “올해 안에는 가라앉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레 전망하면서 “진화생물학자로서 볼 때…”라며 말을 이었다. “병원체라는 건 전파력과 치명력을 함께 키울 수 없다. 오미크론의 감염력이 강하다는 건 굉장히 반가운 얘기다. 오미크론 다음에 나올 변이종의 전파력이 더 강하면 ‘아, 이제 끝나가는구나’ 생각해도 된다.”
하지만 그는 “바이러스를 100% 섬멸ㆍ박멸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 우리 정부의 방역 정책에 대해 “사망률 측면에서 굉장히 잘하고 있지만, 악착같이 막겠다는 지난해 초반의 프레임에 갇혀 못 나오고 있다”며 “바이러스가 있어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점을 찾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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