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독서율 50% 이하 충격, 독서공동체가 길이다
대한민국 국민 두 사람 중 하나는 책을 전혀 읽지 않는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2021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9월부터 2021년 8월까지 한 해 동안 한 권이라도 일반도서를 읽은 사람들의 비율은 47.5%로, 2019년에 비해 무려 8.2% 포인트나 떨어졌다. 충격이었다.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도서 판매 매출액이 증가한 상황이라 독서 관계자들 마음은 더 쓰라렸다. 주변에선 ‘집콕’ 생활에 책 읽을 시간이 늘었다는 반응도 흔했으나 전체 조사 결과는 반대였다. 성인의 평균 독서량도 4.5권으로, 2019년에 비해 3권이나 줄어 독서 격차가 현실이 됐다. 읽는 사람은 자주 사고 많이 읽는데, 읽지 않는 사람은 책에서 이탈하는 현상이 확연해졌다. 지식경제사회에서 독서 격차는 곧 부의 격차로 이어지므로 양극화의 장기 원인을 제공한다.
책을 읽지 않는 이유로는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26.5%)가 많았다. 그러나 책은 일부러 시간을 내서 읽는 것이다. 시간 없을 때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대부분 여가가 생겨도 책을 읽지 않는다. 독서 능력을 잃기 때문이다. ‘책 이외의 매체·콘텐츠 이용’(26.1%)이 두 번째 이유인데 이쪽이 차라리 솔직하다. 유튜브, 텔레비전, 소셜미디어 등을 주로 즐기는 것이다.
책을 읽는 비율은 줄었으나 문자는 더 많이 읽는다는 주장도 있다. 컴퓨터나 휴대전화 기기를 통한 비접촉 생활이 대부분 문서로 이뤄짐을 고려하면 납득은 된다. 이메일은 물론이고 카카오톡 메시지,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최근 유행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는 대부분 ‘읽기’를 바탕으로 한다. 하루 내내 이것들만 훑어도 우리는 충분히 읽는다.
그러나 문서 읽기로는 충분하지 않다. 독서율 저하는 사람들이 무차별·무작위적으로 정보를 읽는 시간은 늘었으나 주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지식을 쌓는 시간이 줄었음을 뜻한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인간은 산만해지고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정보의 심층을 이해하는 힘이 약해진다. 인간 지혜의 정수는 피상적 정보 이면을 꿰뚫어 보는 깊이, 파편적 현상 전체를 조망하는 높이와 관련 있다. 자기보다 거대한 것을 살피는 눈이 없을 때 인간은 어리석어진다. 예수와 그 제자들의 경우에서 보듯, 이런 눈은 좋은 스승이 오랫동안 이끌어줄 때 생겨난다. 하지만 현실에서 좋은 스승은 쉽게 만나기 어렵고, 필요할 때 항상 곁에 있지도 않다.
약간의 시간만 들이면 책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스승들을 곁으로 데려다준다. 더욱이 책에는 짧은 글로는 전할 수 없는 특유의 지혜가 담겨 있다. 어떤 현상을 전체 속에서 바라보는 눈, 한 사람 일생을 함께 꾸준히 체험했을 때 얻는 눈, 하나의 주장을 반대 주장과 함께 들여다보는 눈 등은 넉넉한 서사적 길이를 갖출 때만 잘 전달할 수 있다. 이런 눈이 있을 때 인간은 더 멀리 보면서 타자와 공존을 꿈꿀 수 있다. 독서의 붕괴는 민주주의의 붕괴다. 현재 한국 사회가 겪는 극단의 분열은 독서의 소실과 맥락을 같이한다.
억지로 책을 읽히진 못하므로 성인 독서율을 끌어올릴 획기적 대책은 없다. 다만 적은 독서 예산으로 꾸준히 늘릴 수 있는 건 함께 책을 읽는 독서공동체뿐이다. 10만 독서공동체 양성만이 독서 재난에 맞서는 거의 유일한 길이다. 스스로 책을 읽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 책은 누군가 권해서 같이 읽자고 할 때만 읽는다.
2015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던 독서공동체는 코로나19 탓에 큰 타격을 입었다. 도서관, 장서 등 독서의 토대를 놓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건물이 있고 책이 있다고 사람들이 책을 읽지는 않는다. 함께 책을 읽자고 권하고, 꾸준히 모여 같이 읽는 힘을 기르는 공동체 없이는 백약이 무효다. 정부와 도서관, 출판계는 독서공동체 복원과 양성에 온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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