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덴만 여명작전' 조명탄은 지휘관의 간절한 기도였다

백상현 2022. 1. 1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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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부대 최영함 함장으로 구조작전 이끈 조영주 예비역 제독의 간증
조영주 예비역 해군제독이 18일 서울 송파구 한 카페에서 ‘아덴만 여명작전 현장 전투 실화’ 책을 들고 11년 전 현장 지휘관으로 아덴만에서 펼친 긴박했던 작전을 설명하고 있다. 신석현 인턴기자


삼호주얼리호는 2011년 1월 15일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됐다. 해적은 기고만장해 있었다. 1년 전 한국 국적의 초대형 유조선 삼호드림호를 납치해 950만 달러라는 사상 최대의 석방금을 뜯어내 자신감에 차 있었다. 당시 급파됐던 충무공 이순신함은 작전 한 번 펼쳐보지 못하고 해적 소굴로 한국 배가 속절없이 끌려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국민 5명의 머리에 총구멍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호주얼리호도 마찬가지였다. 21명이 인질로 잡혀있었다. 해군 링스헬기가 접근하면 해적은 곧바로 선원을 방패막이로 세웠다. 그대로 뒀다간 반나절이면 배가 해적 소굴에 도달할 상황이었다.

“탕탕탕.” 1월 21일 오전 5시 42분. 아덴만에 총성이 울려 퍼졌다. 해적들은 당황했다. 만만하게 봤던 대한민국 해군이 기습작전을 펼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호주얼리호를 장악했던 해적들은 맥없이 쓰러졌다. 8명은 사살됐고 5명은 생포됐다. 한국인 8명을 포함해 21명의 선원은 아무런 희생 없이 모두 구출됐다. 세계 최초의 해상 인질 완벽 구출 작전, ‘아덴만 여명작전’이다.

아덴만의 영웅이라고 하면 다들 석해균 선장을 떠올린다. 하지만 대전차 로켓포와 AK-47 소총, PKM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해적의 총탄을 뚫고 석 선장과 선원을 구출해 낸 진짜 영웅은 300명의 해군이었다. 그 정점에 조영주(58) 예비역 제독이 있었다.

18일 서울 송파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 제독은 “인질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무릎 꿇는 것이었다”면서 “평소 신조대로 ‘근심 걱정 염려는 하나님께 내려놓고 기도로 바꿔라’를 기억하며 함장 책상 앞에서 털썩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했다”고 회고했다.

청해부대 현장지휘관이었던 조 제독은 1982년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면서 친구의 권유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졸업 후 홍은혜 여사가 운영하던 다락방 생활을 했다. 이곳은 술·담배를 하지 않고 성경공부에 힘쓰고 새벽기도를 드리는 크리스천 장교의 보금자리였다.

그는 작전 일주일 내내 눈을 붙이지 못했다. 1차 구출 작전을 벌이다 해적이 기관총을 난사해 장병 3명이 총상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결정에 따라 인질과 장병의 생사가 오가는 절체절명의 상황 속 초긴장 상태가 계속됐다.

조 제독은 “국가적 위신과 해군의 명예가 달린 작전의 현장 지휘관으로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해 온몸이 천근 같고 극한 상황의 연속이었다”면서 “그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시편 27편이었다”고 설명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 ‘그렇다!’ 성경 말씀에 온몸에 전기가 통하듯 전율이 느껴졌다. “영주야, 네가 위험을 무릅쓰도록 해라.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다.” 분명 주님의 음성이었다.

조 제독은 곧바로 핵심 참모를 소집해 작전을 짰다. UDT 요원의 안전한 승선을 위해 최영함이 21세기 거북선이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적을 성나게 하여 흔들어 놓고 나를 낮춰 적을 교만하게 만든다’는 전략을 세웠다. 조 전 제독은 링스헬기와 UDT 고속보트를 수시로 삼호주얼리호에 접근시켰다. 그리고 과거 삼호드림호 대처 때처럼 유사한 상황을 만들었다.

해적은 해군이 접근하면 과민 반응을 보이다가 (해군이) 작전을 펼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자, 어느 순간부터는 무시하기 시작했다. 마치 북한이 미사일을 수시로 쏴서 경계심을 낮추고 익숙하게 하는 전략과 유사했다.

운명의 시간을 앞두고 조 제독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는 “평소 외우던 고린도전서 10장 13절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는 말씀을 떠올렸다”면서 “그때 몸과 마음이 이상하리만큼 안정되고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했다.

새벽 4시 공격 개시를 앞두고 그는 전투지휘소에서 함장실로 잠깐 나왔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들어 전능하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도와주소서. 이 환란에서 건져주옵소서.” 다시 전투지휘소로 돌아온 그는 명령을 내렸다. “작전 개시!”

청해부대가 2011년 1월 21일 새벽 개시한 ‘아덴만의 여명작전’ 모습. 국민일보DB


링스헬기와 최영함에서 기관총을 쏟아붓는 사이 UDT 고속보트가 삼호주얼리호 선미 갑판에 특수작전용 사다리를 걸었다. 최영함 돛대에 배치된 저격수가 열감지 카메라로 해적을 하나씩 저격했다. 곧바로 UDT 공격팀이 선상 장악에 나섰고 오전 9시56분 작전이 종료됐다. 총 5시간 10분, 작전의 시작도 끝도 기도였다.

조 제독은 “한국으로 작전 결과를 보고하고 곧바로 함장실로 이동해 문을 잠그고 꺼억꺼억 소리 내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면서 “총탄이 오가는 역사적 현장에서 승리를 주신 하나님과 기드온 300용사처럼 자신의 위치에서 묵묵히 소임을 다해준 청해부대원 300명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탁월한 리더십과 과감한 결단으로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한 명의 인명피해 없이 인질을 구출한 조 제독은 2013년 해군 준장으로 진급한 후 한미연합사 인사참모부장을 끝으로 2018년 전역했다. 현재 충남대 국가안보융합학부 초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조 제독은 “32년 6개월간 함정 병과 장교로서 해·육상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면서 “특히 극도의 중압감 속 특수작전을 전개할 수 있었던 리더십의 비결은 새벽 기도를 드릴 때 주셨던 레마의 말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잠언 3장 6절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는 말씀대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했다”면서 “금그릇이든 은그릇이든 나무그릇이든 겸손하게 깨끗한 ‘그릇’으로 쓰임 받으려고 힘썼더니 주님께서 모든 기도제목에 응답해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함정에 군종장교가 없지만 대한민국 해군은 신앙 훈련을 받은 장교들이 고속정 초계함 호위함 군수지원함 상륙함 잠수함 등 함정을 믿음의 성전으로 여기고 장병의 영혼을 섬기고 있다”고 귀띔했다. 조 제독은 최근 세계 최초의 해상 인질 완벽 구출 작전을 그린 ‘아덴만 여명작전 현장 전투 실화’(익투스)를 출간했다. 수익금은 전액 후유증을 겪고 있는 천안함 생존 장병에게 기부한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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