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통신을 검문하는 나라
독재정권 시절 위법한 공권력 행사, 즉 국가 폭력의 대표적인 사례가 불심 검문과 불법 연행·체포·구금 등이다. 이젠 현행범을 제외하고 법원 영장 없이 국민을 연행·체포·구금하면 거꾸로 해당 공무원이 불법체포감금죄로 처벌받는다. 이 중 유일하게 남은 게 경찰관직무집행법상 불심 검문이다. 다만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 제공 요구나 임의 동행을 거부하더라도 공무집행방해로 처벌받지 않는다. 불심 검문은 법률상 강제 수사가 아니라 경찰의 범죄 예방 등 행정활동(임의 조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헌법 17조 국민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18조 통신의 자유 기본권의 본질을 침해하는 검찰·경찰·공수처의 ‘통신 불심 검문’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휴대전화 통화뿐만 아니라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는 카카오톡 등 소셜미디어(SNS) 대화에 대한 불심 검문이 무시로 자행되고 있다. 전기통신사업법 83조 “사업자는 법원·검사·수사기관장이 재판·수사·형집행·국가안보 정보수집을 위해 이용자 성명·주민등록번호·주소·전화번호·아이디 등 통신자료 제공을 ‘요청하면 따를 수 있다’”는 임의 조치 조항을 근거로 한다.
노상 불심 검문과 달리 통신 불심 검문은 우리 각자의 통신 신상정보를 털었는지, 누가, 왜, 무슨 이유로 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물론 이용자 거부권조차 없다. 겹겹이 위헌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에만 전화번호수 기준 경찰 187만7582건, 검찰 59만7454건, 국정원 1만4617건, 공수처 135건 등 약 260만 건의 통신 불심 검문이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공수처가 이성윤 서울고검장의 공소장 범죄 사실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중앙일보 편집국 카카오톡 단체대화방 참여자 정보와 로그기록(대화 시간 등)을 들여다보고, 수십여 개인의 신상정보를 터는 등 언론 사찰을 벌인 건 하반기에 집중돼 이번 통계에서 빠져 있다. 중앙일보 사회1팀은 언론 사찰과 통신자유 침해로부터 취재원(공익 신고자) 보호를 위해 단톡방을 해외 메신저로 옮기는 ‘망명’까지 해야 했다.
이 고검장 공소장 유출이 공직자 범죄라면 범죄사실에 등장한 수십 명의 이해 당사자(전현직 고위공직자)부터 의심하고 유포자를 찾아야 한다. 거꾸로 언론 보도에 대한 9개월 보복 수사·사찰을 벌인 게 정상적 수사기관이 할 일인가. 게다가 공수처는 이 고검장 측근의 공소장 열람, 워드파일 편집·작성 정황이 발견된 대검찰청 감찰 결과에는 눈을 감았다. 이런 고위공직자 특권 비호처를, 국민을 감시하는 통신 검문을 어떻게 할지 대선 후보들도 입을 닫고 있다.
정효식 사회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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