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주택 공급 늘려도 집값 못 잡는 이유

2022. 1. 1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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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용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 전 SH공사 사장

문재인 정부는 취임 이후 주택을 전국에 월평균 4만여만 호, 수도권에 2만여 호씩 꾸준히 공급해왔다. 준공 기준 주택 공급 물량은 역대 어느 정부보다 많다. 인허가 물량도 박근혜 정부 다음으로 많다. 그런데도 주택 가격을 못 잡았다. 특히 수도권 주택 가격 상승률은 역대 어느 정부보다 심각했다.

공급을 많이 하고도 왜 가격을 못 잡았는가에 대해서는 유동성과 저금리, 수급 불균형, 불안 심리 등 해석이 분분하다. ‘벼락 거지’ 등 불안 심리로 인한 ‘영끌 매수’는 집값이 폭등한 뒤에 나타난 현상이라 근본 원인은 아니다. 유동성 확대는 이번 정부에서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역대급 저금리가 근본 원인인가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지만, 금리 인상 후에도 가격이 제대로 안 잡히는 걸 보면 의문이 있다.

「 젊은층은 신도시보다 도심 선호
1~2인가구 요구에 맞게 공급해야

1~2인 가구 분화가 예상보다 빨라서 공급이 못 따라갔다는 설명도 있었지만, 1~2인 가구 분화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급속히 진행돼온 터라 답으로는 약간 부족하다. 그럼 공급을 어느 정부보다도 많이 했고, 3기 신도시는 사전 청약까지 하는 데도 왜 가격이 안 잡히는가. 이 의문을 풀려면 며칠 전 미달한 경기도 과천 신혼희망타운을 눈여겨봐야 한다.

4인 가구가 표준이던 시절이 있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1기 신도시는 4인 가구를 겨냥한 것이다. 가족에게 좀 더 좋은 주거 환경을 제공하려고 가장들은 매일 2~3시간씩 걸리는 통근의 고충을 감내했다. 세월이 흘러 2012년에는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절반이 1~2인 가구가 됐다. 그 비율이 60%를 돌파하는 데는 6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지난해 기준 4인 가구는 20%가 채 안 된다. 1~2인 가구가 대세이고, 2~3인 가구도 대부분 맞벌이인 지금 서울 외곽에 짓는 신도시는 예고된 빈집이다. 1~2인 가구는 교외보다 직장 인근을, 결혼해서 자식을 희망하는 신혼부부는 처가나 친가 인근을 선호한다.

출퇴근에 시간을 허비하면서 넓은 집에 살기보다 집이 좁더라도 직주근접형 도심 주택을 선호한다. 1~2인 가구는 동네에서 편의점 등 일상생활의 많은 것을 해결하려 한다. 슬리퍼 끌고 다니는 ‘슬세권’과 동네에서 모든 걸 해결한다는 ‘올인 빌(All in ville)’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크게 변한 게 또 있다. 대표적인 베이비붐 세대인 1961년생들이 태어났을 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93달러였고 중학교에 들어간 1974년에는 500달러 정도였다. 30세가 됐을 때 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 입주가 시작됐다.

3기 신도시는 2025년쯤 입주가 시작된다. 그때 30세가 되는 1995년생들이 태어났을 때 1인당 GDP는 1만2000달러였다. 이들이 중학교 입학할 때는 2만 달러를 넘고 있었다.

베이비붐 세대와는 다른 환경에서 성장해온 MZ세대는 주택에 대한 요구가 다를 수밖에 없다. 베이비부머들에게 선풍기는 에어컨의 대체재이지만, MZ세대는 이런 생각 자체를 의아해한다. 이런 다름을 이해 못 하고, 주택 공급 호수만 채우려 드니 문제가 생긴다. 신혼 때는 원래 작은 집에서 출발하는 거라고 설득하려 드니 문제가 꼬인다. 신혼희망타운 청약 미달 같은 일은 또 생길 것이다.

주택 공급은 올림픽경기가 아니다. ‘더 많이, 더 빨리’로 해결될 일이 아니고, 수요자 요구에 맞춰 핀셋 공급을 해야 한다. 젊은이들은 도심에 살고 싶어하는데, 교외에 신도시를 자꾸 짓는 것은 결국 ‘토건족’만 좋은 일 시키는 것이다. 인구구조도 소득도 급변했고, 주거에 대한 요구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물량은 채워가고 있으니 할 일 했다고 현황판 체크만 해서는 오산이다. 이쯤 되면 제대로 공급 대책을 쓰고 있는지 심각하게 돌아봐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세용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 전 SH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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