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예술] 버려진 것들의 진실

2022. 1. 19.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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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미술사학자·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장

21세기 지구화 시대를 맞아 중국 현대미술은 비엔날레와 미술시장을 휩쓸며 국제미술계에 안착한 듯하다. 작품에 대한 중국 정부의 검열은 여전하지만, 허용된 만큼의 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수 억원을 호가하는 작품들 앞에서 우리는 진정한 전위정신을 기대하지 않는다. 드물지만, 정부의 자장에 포섭되기를 거부한 채 거대한 섬처럼 국제미술계를 떠도는 작가도 있으니 그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 1957~)다. 미술가 이외에 건축가, 사회운동가, 파워블로거 등 다양한 문화 신분을 가진 그를 영국의 ‘아트 리뷰’지는 2011년 ‘영향력 있는 세계 미술인 1위’로 선정한 바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아이웨이웨이-인간미래’전에는 설치, 사진을 비롯해 난민 모티브의 청화백자, 2015년 이후 제작된 기록 영상 등 총 120여 점이 전시돼 작가의 최근 예술세계를 보여준다.

반우파 투쟁시기 지식분자로 분류되어 신장에 하방된 부친 아이칭(艾靑, 시인)을 따라 20년간을 위구르 지역에서 성장한 아이웨이웨이는 1976년 북경으로 가 영화학교를 다니다 1981년 뉴욕으로 향한다. 파슨스디자인 스쿨을 1년만에 자퇴하고 사실상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13년간 머물며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혼재한 뉴욕을 사진과 비디오로 담았다.

「 아이웨이웨이 설치 작품 ‘나무’
시간의 흔적 대하는 삶의 태도
인간과 미래에 던지는 화두

그가 체제비판적 작가로 세계에 이름을 알린 것은 2008년 쓰촨 대지진 현장을 조사하면서부터였다. 초등학교의 피해가 특히 컸는데 정부가 사망자를 은폐하려 하자 그는 시민조사단과 함께 관영 언론에는 잡히지 않은 아비규환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학부모·주민과의 인터뷰를 통해 5385명의 초등생이 사망했음을 밝혀냈다. 당시 중국 시나닷컴 블로그와 트위터를 통해 중국의 사형제도와 티베트 탄압 등을 국외로 전하던 그는 부실공사 의혹을 제기하며 몰살당한 아이들의 이름을 낱낱이 블로그에 올렸다. 2009년 블로그는 폐쇄됐고 호텔을 급습한 경찰에 아이웨이웨이가 구타당해 병원으로 이송되는 급박한 상황이 그가 지녔던 카메라에 찍히면서, 사진 작품 ‘조명’과 다큐멘터리 영상 ‘Circa 20:20’의 일부로 편집돼 전시장에 걸렸다.

중국 반체제 작가 아이웨이웨이의 ‘구명조끼 뱀(Life Vest Snake)’, 2019, 구명조끼 140벌.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아이웨이웨이는 버려진 것들, 주목하지 않으면 사라질 것들을 작품으로 복원한다. 설치작품 ‘기억하며’는 지진 현장에서 수습한 9000개의 학생 가방을 이어붙여 ‘이 아이는 이 세상에서 7년 동안 행복하게 살았다(부모의 인터뷰)’라는 글자로 재구성한 것이다. ‘유해(2015)’는 부친이 일했던 신장의 노동수용소에서 발견된 두개골과 뼛조각들을 입수해 이를 도자기로 복제함으로써 강제노동과 굶주림으로 죽어간 이들의 삶을 기억하고자 했다.

아이웨이웨이는 2011년 탈세 죄목으로 체포돼 81일간 구금됐고 240만 달러의 벌금이 선고됐다. 석방을 촉구하는 국제 여론이 비등한 가운데 100만 달러가 SNS를 통해 모금되자, 작가는 3만명의 후원자들에게 차용증을 써 주었고, 이를 전시장에 붙임으로써 작품 ‘당신에게 빚졌습니다(I.O.U)’를 완성했다.

2015년 정부로부터 여권을 돌려받은 아이웨이웨이는 독일과 영국에 체류하며 ‘세계시민’으로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난민문제에 천착한다. 필사의 탈출을 시도했던 시리아 난민들이 그리스 레스보스 섬에 착륙하기까지 착용했던 140개의 구명조끼를 이어붙여 작품 ‘뱀’을 만들었으며, 2016년 5월에는 강제 해산되는 그리스 이도메니 난민촌에 들어가 이들과 함께 물을 건너고 산을 넘으며 일거수 일투족을 가감 없이 영상으로 기록했다. 작가는 난민들이 챙겨가지 못한 32켤레 신발과 579벌 의류를 베를린으로 가져와 흙을 털고 꿰매어 정갈하게 세탁했다. 의식처럼 엄숙하게 진행된 전 과정은 영상으로 기록됐으며, 옷가지들은 설치작품 ‘빨래방’이 되었다.

서울관 앞마당에는 ‘나무’가 설치돼 있다. 죽은 은행나무 뿌리, 삼나무 껍질 등을 작게 조각내서 재조립한 ‘나무’는 살아있는 어떤 나무보다 든든히 땅 위에 서 있다. SNS상의 거대 지지층을 가진 그를 또 다른 문화권력으로, 혹은 서구자본을 등에 업은 독점예술가로 보는 부정적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크고 거대한 껍질 안에 깃든 것은, 작고 버려진 것에 배어 있는 시간의 흔적을 귀히 여기는 작가의 태도와 삶의 방식일 것이다. 파괴되고 조각난 과거를 기록하고 이어붙여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 잊힐 물건들을 발굴해 그 속에 숨은 진실들을 드러내는 것, 이것이 예술가로서 아이웨이웨이가 ‘인간과 미래’에 던지는 화두일 것이다.

이주현 미술사학자·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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