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 지키는 진묘수의 다리가 부러진 이유, 이런 배경이
[조성래 기자]
짧은 다리와 통통한 엉덩이의 치명적인 매력, 진묘수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어느 누구의 발길도 허락하지 않았던 무령왕릉이 열린 것은 1971년입니다. 무령왕릉은 공주의 송산리고분군의 배수로 공사를 하던 중 우연히 발견되었습니다. 발굴을 위해 들어갔던 사람들이 제일 처음 만난 것은 무덤을 지키고 있던 진묘수입니다.
▲ 중국의 진묘수 |
ⓒ 국립중앙박물관 |
▲ 중국의 진묘수 |
ⓒ 국립중앙박물관 |
무령왕릉 진묘수의 얼굴을 먼저 볼까요? 눈이 올망졸망하고 입을 헤벌레 벌리고 있는 것이 마치 맛있는 음식을 먹고 기분이 좋아 노래를 흥얼거리는 듯합니다. 기분이 좋아 콧대는 잔뜩 올라가 있고, 앞다리는 노래에 맞추어 박자를 맞추며 춤을 추는 것 같네요. 나쁜 귀신을 쫓는 의미로 입술 주변을 붉게 색칠하였는데 얼핏 바라보면 엄마의 립스틱을 몰래 바른 듯한 장난스러운 모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탐스러운 엉덩이를 볼까요? 자신의 노래에 맞추어 씰룩씰룩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네요. 머리에는 철로 만든 뿔이 달려있습니다. 중국에서 진묘수의 뿔은 죽은 영혼을 하늘로 데려가는 역할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진묘수의 등에 있는 털은 사자의 갈기처럼 보이는 것이, 말의 안장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영혼을 모시고 하늘로 갈 때 영혼이 힘들어하면 자신의 등에 내어줘 편안하게 모실 것 같습니다.
▲ 무령왕릉 진묘수 |
ⓒ 국립공주박물관 |
▲ 무령왕릉 진묘수 |
ⓒ 국립공주박물관 |
무령왕릉 진묘수가 지켰던 것
우리나라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던 시기에 일본에서 건너온 가루베 지온이라는 일본인이 있었습니다. 가루베는 와세다 대학 문학부를 졸업한 사람으로 역사학자나 고고학자는 아니었습니다. 그가 우리나라에 와서 처음 간 곳은 평양이었습니다. 낙랑 및 고구려의 유적으로 조사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너무나 많은 전문가들이 발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끼어들 틈이 없었습니다.
가루베는 당시 많은 관심을 많이 받지 못했던 백제의 옛 도읍지였던 공주로 내려와 공주고보에 일본어 교사로 근무하게 됩니다. 그리고 공주지역의 백제 고분을 1000 여 기를 조사했으며, 182기를 실측 조사했다고 합니다. 가루베의 실측조사는 모두 불법이었으며, 발굴에 아마추어였던 그에 의해 백제의 고분은 마구 파헤쳐져 훼손되었습니다. 더구나 그렇게 발굴한 유물들을 몰래 빼돌려 자신의 소유로 하였으며, 일본에 보내 판매도 하였습니다.
▲ 무령왕릉을 지키고 있던 진묘수 |
ⓒ 국립문화재연구소 |
진묘수가 지키지 못했던 것
진묘수도 지쳤던 것일까요? 진묘수가 천년을 넘게 지켰던 무령왕릉의 발굴은 우리나라 최악의 발굴로 꼽힙니다. 지금이라면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1차 발굴은 하룻밤 만에 이루어집니다. 심지어 몰려든 기자들 중 한 명은 가까이서 촬영하기 위해 허락을 받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가 청동숟가락을 밟아 부러 뜨러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발굴을 담당했던 당시 공주박물관 관장은 유물 20여 점을 들고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여줍니다.
▲ 무령왕비 은팔찌 |
ⓒ 국립공주박물관 |
이어야 할 것과 끊어야 할 것
무령왕릉의 진묘수가 발견되었을 때 뒷다리 하나가 부러져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그 이유로 '진묘수가 도망가지 않고 무덤을 잘 지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중국에서 진묘수를 제작해 넣을 때 으레 하는 전통이라는 것입니다.
다리를 부러뜨려 놓으면 무덤을 잘 지킬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당시 지배층의 특권 의식을 잘 보여줍니다. 신분사회에서 지배층의 생각을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의 관점으로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또한 문화의 전래와 계승에서 '상징'이 가지는 힘은 무척 큰 것입니다. 하지만, 무덤을 지키는 진묘수에 대한 지배층의 생각은 백성들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아쉬움이 남습니다.
한번 상상해봅니다. 진묘수를 만든 후 다리를 부러뜨려 넣으려고 하자 어떤 왕족 또는 귀족이 이야기합니다. "다리를 부러뜨려 억지로 지키게 한다면 과연 이 진묘수가 무덤을 잘 지킬 수 있겠는가? 오히려 날개를 달아주어 훨씬 자유롭게 움직이게 했을 때 더 무덤을 잘 지킬 수 있지 않을까? 백성들을 힘으로 눌러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정책을 펼쳐 스스로 나라에 충성하게 하는 것과 같은 것 아니겠는가?"
다시 바라본 진묘수는 즐겁게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다리를 부러뜨리려고 하는 사람을 피해 뒷걸음치는 것 같고, 얼굴은 잔뜩 겁에 질린 듯합니다. 개인으로 볼 때 '습관'은 어떤 행위를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익혀진 행동 방식을 말하며, 사회적으로 볼 때 '전통'이나 '관습'은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오랜 시간을 통해 전해오는 생각, 행동 등을 말합니다.
개인이 발전하려면 좋은 습관을 가져야 하며, 좋은 습관을 가진다는 것은 가지고 있던 좋은 습관을 잘 유지하고 나쁜 습관을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사회나 국가가 발전하려면 좋은 전통은 이어나가고 나쁜 전통은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좋은지 나쁜지 판단을 하는 힘입니다.
판단을 하지 않고 무조건 따르거나 버리는 행동은 개인이든 사회든 발전할 수 없도록 만듭니다. 무령왕릉 진묘수의 부러진 다리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지혜는 올바른 생각을 위한 노력과 그것을 실천하는 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국힘 "건진법사 관여 안했다"면서 네트워크본부 해산
- 이재명 "유승민 공약 수용... 일자리 300만개 만들 것"
- [단독] 김건희 의혹 국민대 특감, 내주 공개... 수사의뢰 임박
- 6년 전 녹색 돌풍 국민의당, 대선 D-50 어디서 뭘하나
- 코로나 와중에 40명 파티, 총리의 어설픈 변명
- "조국 적은 유시민"이란 김건희... 유시민이 어땠길래
- 보수·진보 상관없이 '엄지척'... 후보들만 결단하면 된다
- 윤호중 "주술의힘... 윤핵관은 무당, '왕' 윤핵관은 김건희"
- 영국 <인디펜던트>, 김건희 '미투 폄훼 발언' 보도
- [오마이포토2022] 민주당, JTBC 이정헌·YTN 안귀령 앵커 영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