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난 김두관 맨, 남명 조식 15대손이오" .. 조영진 남부공항서비스대표, 구청장 출사표

영남취재본부 김용우 2022. 1. 18.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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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진 남부공항서비스 대표이사.

[아시아경제 영남취재본부 김용우 기자] 그는 처음부터 ‘김두관 맨’이라고 했다. 또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15대손이라고 소개했다.

조영진 남부공항서비스 대표이사이다. 이 회사는 국내 공항들을 운영하는 한국공항공사의 자회사로, 공항시설에서 근무하는 서비스 인력을 관리하는 곳이다.

‘회퇴변척’ 상소를 올려 퇴계의 성리학과 문묘에 오를 성현마저 깡그리 바꿔놓으려 했던 조선조 ‘광해군의 남자’ 정인홍이 목숨까지 걸고 모신 스승 조식의 먼 후손이 여기 사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물론 더불어민주당원 활동을 하며 정치적 멘토 김두관 의원을 모신 공으로 공기업 산하기관의 자회사 대표 자리를 꿰찬 것이 맞다.

다시, 광해가 쫓겨나면서 결국 정인홍은 90세 가까운 나이에 참수되지만 그가 스승 조식을 공자의 반열에 올리기 위해 전 생애를 투쟁하며 절개와 지조의 삶을 살았다는 것은 역사이다.

사제가 너무 닮았다는 역사의 기록에서 조선 성리학 영남학파의 한 축을 완성한 조식 선생의 기품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현대 정치인의 사상과 철학의 궤를 ‘남명학파’로 이어보려 애써봐야 도로이지만 김두관이나 그의 남자 조영진이 풍기는 정치·사회적 고집은 무척 닮아있다고 보면 된다. 옳다는 신념을 절대 굽히지 않는 강직함과 추진력 같은 것이다.

1966년생인 조 대표는 “지금도 조상인 조식 어르신을 모시고 있다”며 “아버지 윗대는 손이 귀해 고향인 산청 사람들은 대가 끊어질까 조마조마해 했었다는 얘길 들었다”고 했다.

조 대표의 친할아버지도 일찍 세상을 떠났다. 6.25전쟁 때 토호 지식인으로 몰려 빨치산에게 끌려가 죽임을 당했다.

조 대표는 기업인이자 정치인이다. 돈 잘버는 사업가이면서 2004년부터 정당활동을 해왔으니 18년째 정가에 발을 담그고 와신상담하며 산다.

그가 올해 6월 치르는 전국동시지방선거 기초단체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주소를 두고 사는 곳인 부산진구 구청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현직은 역시 같은 당인 더불어민주당 서은숙 구청장이고 그 자리를 노리고 있다. 2018년 선거 때는 당내 경선에서 서 구청장에게 석패해 지자체장 명함을 놓쳤다.

그는 당내 경선에선 현직의 프리미엄까지 상대해야 하지만 이번에는 ‘여성 초년’ 가점 혜택을 받지 못하는 서 구청장을 이길 것이라고 장담했다. 물론 본선에서 국민의힘 후보도 꺾을 ‘자산’이 아주 많다고 힘있게 말했다.

그의 정치적 정신적 스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빼닮았다는 ‘리틀 노무현’ 김두관이다.

“김두관 의원을 한번 만나보면 몇 분 안에 이 사람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됩니다. 나는 남해군수 하던 이 분을 1997년에 처음 만났습니다.”

조 대표는 “땀난다고 속옷 차림으로 남해군 기자실을 마구잡이로 쓰는 기자들을 보고 ‘언론탄압’이라며 저항하는 뉴스에 귀를 닫아버리고 기자실을 아예 없애고 그 자리를 민원실로 늘리는 추진력을 보고 그를 찾아가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비좁았던 민원실이 사라진 기자실 때문에 넓어지고, 군수가 쓰던 관사도 밀어버리고 민원인주차장으로 바뀌었다. 주민들은 환호했다.

이런 사람을 만나보고 싶어 그는 ‘김두관 군수’를 찾아가 면담했다. 정치인 멘토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런데 김두관 의원은 그 첫날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고 조 대표는 웃으며 말했다.

그는 산청 덕산고를 졸업하고 금성사에 취직했다. 금성사는 뒤에 LG전자가 된다. LG카드를 거쳐 2004년 대기업에서 나오면서 개인 투자사를 설립해 그는 제법 돈벌이를 누린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정국이 시작될 무렵 그는 정당활동에 뛰어들었다. 정치인 조영진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정치적 멘토 김두관을 뿌리로 해서 박재율, 정동영, 이덕욱, 김정길 등 중앙정치 무대와 지역 정가의 리더들을 두루 당신시키기 위해 일꾼을 자처했던 그는 마침내 구청장과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 정당 후보로 공천될 만큼 내공을 쌓게 됐다.

그는 백양산 터널 통행료를 무료화 시키기 위해 수년째 싸우고 있다. 백양산 터널은 2025년쯤 통행료가 무료로 바뀐다.

그런데 최소운영수입보장(MRG)이라는 민간투자 유치를 위한 유인책을 악용하는 ‘나쁜’ 운영방식을 짚어낸 그가 가만히 계약만료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리 없었다. 흑자가 났는데도 왜 시민 세금이 민간 운영사에 보조금으로 계속 들어가야 하느냐는 것이다.

하루빨리 시민의 도로로 가져와야겠다는 뜻을 품고 오랜기간 1인시위 등 피켓을 들고 백양터널에 나선 그를 기억하는 시민은 적지않다.

조 대표는 정치적 기술과 역학관계를 잘 활용하는 ‘의정활동형’보다는 미래 행정을 창출하고 계획해 과감하게 추진하는 지자체장이 맞는다고 자신의 리더십을 분류했다.

부산진구청장에 도전하는 뜻을 크게 2가지로 요약했다. 출마의 변이다.

첫째는 ‘미래’ 때문이다.

“부산진구는 과거 신발산업으로 50년을 먹고살았다. 미래 50년 먹거리는 지금 없다. 철도공작창 자리를 항노화 산업 기지로 만들어야 한다. 국내외 의료관광으로 이름난 서면 메디컬 스트리트의 배후단지로 항노화 건강산업단지를 조성해야 한다.”

둘째는 ‘현실’ 때문이다.

“중장년과 시니어 일자리가 넘쳐나는 자치구로 만들어야 한다. 지자체가 일자리를 책임지는 시대가 왔다. 일자리 창출의 핵심은 직업 교육에 있다. 훈련된 사람은 어디서든 찾기 마련이다. 주민 직업 교육을 공공의 영역으로 올리는 것, 먹고사는 문제를 구청이 주도하는 것이 지자체 수장의 역할이고 힘이다.”

조영진 대표는 정부 투자 산하기관의 자회사 대표이사로 있으면서 정당정치 활동을 해도 되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했다.

“공공기업의 자회사 대표는 정치적 중립 의무가 없다”며 “당내 경선이든 본 선거든 구청장 선거에 떨어지면 올해말 임기를 마칠 때까지 여기 일도 마무리 잘할 생각”이라고 숨김없이 ‘쿨’하게 말했다.

조 대표는 ‘당신의 이념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나의 이념은 ‘부산진구’라고 말하겠소”라고 했다.

“김두관 의원의 노선이 흔히 이념적으로 ‘좌’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는 좌든 우든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며 “나의 기본도 같아 정파와 파벌을 가리지 않고 부산진구를 문화 중심과 더불어 잘사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 정치 지향점”이라고 말했다.

영남취재본부 김용우 기자 kimpro77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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